What a small world!
(2018.7.)
우리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곳에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서 오는 자유로움일 거야.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더라고. 한국에서는 혼밥이 좀 꺼려져도 해외에서는 괜찮아. 타인과 대화를 할 때도 한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빙빙 돌리지 않고 좀 더 직설적으로 내 생각을 표현할 수도 있고. 한국에서의 신분과 위치가 전혀 중요하지 않고 모두가 똑같이 여행자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지. 그래서 나는 여행지에서 진정한 ‘프리덤’을 느끼곤 해. 그런데 그런 자유를 만끽하다가 갑자기 나에 대해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적잖이 당황스러워. 반가움과 동시에 지금의 내 상태가 이 사람이 ‘알고 있는 나’에 부합하는지 생각하게 되지. 다시 나라는 상자 안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야.
그 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어.
7월의 어느 토요일, 영국의 여름을 즐기러 K와 나는 런던으로 향했어. 영국에서 유명한 푸드마켓인 버로우 마켓에 가기로 했지. 날씨도 너무 좋았고 무엇보다 시골틱한 하펜든에만 있다가 대도시에 나가니 그냥 에너지가 넘치고 신이 났었던 것 같아.
마켓 안에는 다양한 나라의 관광객들, 활기찬 상인들, 다양한 식재료들, 먹음직스러운 음식과 동시에 생전 처음 보는 음식들로 가득했어. 우리는 먼저 스카치 에그(Scotch egg)를 사봤어. 스카치 에그는 영국의 소풍 음식 같은 건데 반숙 계란을 소시지나 다진 고기를 입혀 튀긴 음식이야. 얼핏 듣기만 했던 음식을 직접 먹으니까 맛도 있고 신기했어. 생과일, 생채소 주스도 많이 팔았어. 그 자리에서 즙을 내서 주더라고. 내가 원하는 과일과 채소를 커스텀할 수도 있었어. 그리고 소고기 샐러드 볼도 사 먹어봤어. 맛은 괜찮았는데 이 사람들은 소스를 좋아하는지 완전 소스 범벅 샐러드였어. 우리는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것이 목표였기에 거의 먹방을 찍는 것처럼 계속 음식을 사 먹었어.
K가 이번엔 핫도그 냄새에 홀려서 그걸 사려고 줄을 서 있었어. 나는 핫도그를 받는 순간을 포착하려고 좀 떨어져서 사진을 찍을 준비를 하고 있었지. 그러는 와중에 어떤 아이와 눈이 마주쳤어. 순간 서로 놀라서 2초 정도 아무 말이 없었어. 내가 바로 두 달 전까지 학교에서 가르쳤던 5학년 아이인 거야. 나보다 그 아이가 더 놀란 것 같았어.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사라지더라고. 나도 약간 벙쪄서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했지.
“언니, 왜 그래요?”
핫도그를 손에 든 K가 물었어.
“어? 어. 방금 내가 가르쳤던 아이를 만났어.”
“헐. 진짜요?”
“응. 와.. 진짜 대박. 대박이야. 어떻게 여기서 만나지?”
이런 생각들을 하며 우리는 핫도그를 클리어하고 마지막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어. 좀 고급져 보이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면 나는 항상 피스타치오를 시키는데 이 날 먹었던 피스타치오는 인생 아이스크림이었어. 우리는 너무 행복하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사진을 찍고 즐기고 있었지.
“어? 나 쟤 아는 것 같은데!”
K가 소리쳤어. 그리고는 누군가에게로 다가가서 말을 걸었어. 이번에는 K가 같은 중학교를 나온 친구를 버로우 마켓에서 만난 거야. 둘은 서로 굉장히 신기해하며 약간은 흥분해서 대화를 나누었어. 나는 자리를 비켜 조금 떨어져서 생각했지.
‘나는 여기서 제자를 만나고 K는 중학교 동창을 만나다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버로우 마켓에 뭔가 있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던 찰나, 아까 만났던 그 제자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났어.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까와는 달리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인사하더라구. 내 생각에는 아까 너무 당황해서 인사도 제대로 못 한 것 같아서 다시 날 보고 찾아온 것 같았어.
“응, 그래 안녕? C는 부모님이랑 같이 놀러 온 거야?”
“네, 부모님은 저쪽에 계세요.”
이렇게 말하며 C는 아이스크림 가게 건너편 쪽을 가리켰고 나는 그 아이의 부모님과 눈이 마주쳐서 서로 목례를 했어.
“그래, 그럼 가족과 영국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고 가렴.”
“네, 안녕히 계세요.”
그렇게 우리는 인사를 마치고 헤어졌어. K도 나에게로 돌아와서 친구를 만난 게 너무 신기하다며 재잘거렸어. 나는 학생의 부모님과 인사까지 했다며 약간 호들갑 떨며 말했어.
“K야, 나 옷 괜찮아? 보기에 좀 그래?”
민소매 옷을 입고 있었던 나는 약간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봤어.
“완전 괜찮고 아무렇지 않은데. 그리고 이게 뭐 어때서요. 언니 이제 선생님도 아니잖아요.”
“아 그렇지? 그래도 괜히 신경 쓰이네. 하긴 뭐 내가 야하게 입고 있는 것도 아니고, 너 말대로 이제 선생님도 아니네.”
나도 모르게 나를 다시 상자 안으로 넣고 있었어. 선생님은 이래야 한다는 틀 같은 것 말이야.
그날 저녁, 남자 친구에게 카톡을 했어.
‘어떻게 영국에서 그 시간에 같은 장소에 있었는지 너무 신기해.’
남자 친구는 나와 같은 학교에 있었고 그 아이도 가르쳤었거든.
그리고는 며칠 뒤, 남자 친구가 사진을 보냈어. 환하게 웃고 있는 C의 얼굴이었어.
‘얘는 이렇게 한국에 돌아왔는데 너는 어디에 있니? ㅠㅠ’
다시 한번, 그날의 신기한 기분이 떠오르며 입가엔 웃음이 번졌어.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인생 정말 잘 살아야 될 것 같아.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날지 아무도 모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