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만난 미국 여인
(2018.7.)
저녁 식사를 담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어.
“너 한국에서 왔어?”
처음 보는 사람이었어.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녀는 표정이 환해지면서 한국을 좋아한다고 말했어. 심지어 ‘진짜 가고 싶어요.’라는 말을 한국어로 하는 거야. 나는 너무 놀랐어. 영국에서 한국말을 하는 미국 여인을 만나다니! 게다가 그녀는 영어를 가르치러 한국에 가고 싶다고 했어.
“나 한국에서 선생님이었어!”
기쁜 마음에 말했지.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온 B는 교회에서 함께 캠프를 하러 이 베이스에 왔어. 같이 온 친구들은 10대~20대 초반의 학생들이었어. 그녀의 아버지가 그 교회의 목사님이었고, 여기서 일주일간 프로그램을 하고 알베니아로 짧은 전도여행을 떠난다고 하더라고.
나는 영어 이름을 만들지 않았어. 개인적으로 이름에는 그 사람의 정체성이 담겨있다고 생각하는데 편의를 위해서 영어로 이름을 짓고 그 이름으로 불리고 싶지가 않더라고. 내 진짜 이름이 아닌 거잖아. 친구들에게 발음하기 쉬우라고 한국 이름과 비슷한 걸 만들어 닉네임처럼 부르는 것은 상관없지만, 갑자기 ‘바이올렛’이나 ‘엘리자베스’ 같은 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지. 그러다 보니 이 곳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 내 이름을 듣고는 ‘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하는 눈빛을 보이며 ‘오케이’라고 말하며 그냥 넘어가는 사람들이 꽤 있었어. 이건 내 편견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름을 다시 말해달라는 사람은 실제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경우가 많았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좀 이상하더라도 이름을 잘 불러주더라고. 내가 B를 만난 날은 영국에 온 지 딱 한 달째 되는 날이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에 인종차별이라고 까지는 말하지 못하더라도 묘하게 기분이 언짢은 그런 일들이 있었거든.
일례로, 몇몇이 모여서 재채기와 관련된 얘기를 하게 되었어. 영어권 국가에서는 누군가 재채기를 하면 주변에서 “Bless you.”라고 말해주거든. 그때 누군가 물었어.
“한국에서는 재채기하면 주변에서 뭐라고 해?”
“우리는 아무 말도 안 하는데?”
내가 대답했어. 그게 사실이잖아. 우린 그런 문화가 없으니까.
그때 한 브라질 애가 그러더라.
“So rude.(정말 예의가 없네.)”
미친, 그렇게 말하는 니가 더 무례하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원래 기가 막히게 반박할 수 있는 말은 나중에 생각이 나잖아. 당시에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지나갔는데 생각할수록 열이 좀 받는 거야. 어디서 무식해가지고 ‘Bless you’라고 말하게 된 어원도 모르면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걸 보니 문화적 다양성과 존중에 대한 교육이라도 해주고 싶었어. 원래 그 말이 유럽에서 흑사병이 돌 때 생기게 된 말이니까 당연히 아시아권에서는 그런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거지. 어쨌든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별 관심 없어하던 한국 여자를 만나 행복해하는 B를 만났으니 나는 그날 마치 선물을 받은 것 같았어.
그녀는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했어. 혼자 4년 동안 한국 드라마, 노래를 들으며 한국어를 공부했다고 했어. 작년에는 부산과 제주도를 6주 동안 여행했고 삼겹살, 떡볶이 심지어 오겹살이 너무 맛있다고 하는 그녀는 정말 한국의 Big Fan이었어.
“어렸을 때부터 왜 인지는 모르지만 아시아에 관심이 많았어. 내 사촌 중에 한국에 영어를 가르치러 간 애가 있거든? 정말 정말 부러웠고 나도 너무 가고 싶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그녀가 말했어.
“한국 드라마랑 노래도 좋지만 나는 북한에도 관심이 있어. 나중에 북한이 열리게 되면 거기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복음도 전하는 게 내 꿈이야.”
한국 사람인 나도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인데 펜실베이니아에서 온 그녀는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어.
길진 않았지만 1주일 동안 오며 가며 한국과 관련된 얘기를 주고받다가 그 교회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마치고 떠났어.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주고받으며 한국에 영어를 가르치러 오면 꼭 보자고 했지. 그게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어. 내가 1년 반 뒤에 미국 로드트립을 하면서 필라델피아에서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