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다시 만난 피부염(2)]

영국에서 병원가기

by 현이진

(2018.7.)


나 홀로 런던.

구글 지도의 힘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어. 해외에 혼자 있어도 구글 지도만 있으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단점은 핸드폰만 쳐다보느라 주변 풍경은 하나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거야. 주말에는 주로 K와 함께 런던을 나오거나 했기 때문에 나 혼자 런던에 나오는 것은 처음이어서 더욱 구글 지도를 뚫어지게 보면서 병원을 찾아갔지. 배정받은 병원은 베이커 스트릿 역(Baker Street Station) 부근의 루들레인 메디컬(Roodlane Medical)이었어. 찾아보니까 셜록홈즈 박물관이랑 가까운 곳이더라구. 진료를 마치고 갈까 해서 잠시 마음이 들떴지만 입장료가 너무 비싸길래 바로 마음을 접었어. 백수가 무슨.


여의도 증권가 같은 빌딩 사이를 지나다니는 간지 나는 회사원들을 관심 없는 척 바라보면서 병원의 문을 열고 들어갔어. 해외에서 처음 병원을 가는 나의 마음이 콩닥콩닥하더라고. 한국에서도 병원을 가게 되면 잊어버리고 말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봐 생각하고 가는데, 여긴 심지어 영어로 말해야 하잖아. 병원은 생각했던 것보다 안락한 분위기였고 사람은 거의 없었어. 예약한 시간에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지.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밑밥을 깔았어.

“저는 제가 잘 설명할 수 있을지 걱정돼요. 영어는 제 모국어가 아니라서요.”

“괜찮아요. 당신은 지금 영어로 잘 말하고 있는걸요.”

다정한 웃음을 띤 의사 선생님이 말했어.

“피부가 간지러워서 왔어요. 영국에 온 지 한 달 정도 됐는데 열흘 전부터 간지럽기 시작했어요. 모기 물린 것처럼 빨갛게 일어나고 밤에는 자다가 간지러워서 깰 정도예요.”

대충 이런 식으로 내 상황을 설명했지. 물론 런던에 오는 동안 어느 정도 내가 할 말을 머릿속으로 영작해서 간 거야.

친절한 의사 선생님은 현재의 피부 증상과 내가 찍어뒀던 사진을 보더니 습진(eczema)이라고 진단했어. 아마 한국과 다른 물 때문에 발병했을 확률이 크다며 약을 처방해주셨지.

내가 방문했던 런던의 루들래인 병원

병원 문을 나서는데 왠지 모를 성취감이 들었어. 약간 ‘미션 썩세스’ 같은 느낌이랄까? 처방전을 가지고 근처 약국에 들어갔어. 인도인 약사 선생님이 사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큰 눈으로 나에게 인사를 하더라고.

“이 약은 스테로이드이기 때문에 2주 이상 바르면 안 돼요.”

누가 봐도 스마트한 인도 사람 같은 표정으로 나에게 주의사항을 말해주는데 나는 좀 감동받았어. 내가 한국에서 지루성 피부염을 앓았다고 했잖아. 그 원인 중의 큰 한 가지는 얼굴에 스테로이드 약을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도 모르고 장기 도포했었거든. 피부과와 약국을 들락날락거리면서 한 번도 나에게 스테로이드는 몇 주 이상 쓰면 안 된다, 주의해야 한다, 알려준 의사나 약사가 없었던 거야. 이 분에 대한 신뢰도가 급상승했어. 그래서 아까는 긴장해서 의사 선생님한테 물어보지 못한 질문들과 약간의 푸념도 했던 것 같아.

“의사 선생님은 습진이라고 하셨어요. 증상은 제가 더울 때 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은 영국보다 여름에 더 더운데 한 번도 이런 증상은 없었어요.”

“습진일 수도 있지만 알레르기 반응일 수도 있어요. 알레르기는 도처에 존재하죠. 이 약을 하루 3번 증상이 있는 곳에 바르세요. 그리고 보습도 철저히 신경 쓰고요.”

뭔가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말들을 많이 해주셨어. 그리고 마지막엔 이러더라고.

“약을 바른 후 2-3주 후에 증상이 어떤지 나에게도 알려줘요.”

“네 그렇게 할게요. 고마워요.”

라고 말은 했지만 내가 경과를 말해주러 다시 런던의 이 약국까지 나오긴 힘들잖아. 환자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건지 아니면 임상실험처럼 자료를 수집하려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마운 마음이 들더라고.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


정말 스테로이드 약을 바르기 싫었는데 얼굴이 아니라 몸에 바르는 거니까 일단은 바르면서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어. 달리 방법도 없었고 말이야. 드라마틱하게 증상이 좋아진 건 아니었지만 약은 꽤 도움이 되었어. 그렇게 악화와 호전의 업 앤 다운을 반복하다가 결국 몇 주 뒤에는 더 이상 발진과 가려움이 발생하지 않았지. 그동안 나의 마음도 왔다 갔다 했어. 모든 일이 그렇듯이 끝이 언제인가를 알면 훨씬 견디기 쉽잖아. 가령 이 피부염이 2개월 뒤에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기간을 불안하게 마음 졸이며 보내진 않았겠지. 하지만 우리가 부채도사도 아니고 언제 문제가 해결될지 어떻게 알겠어? 그냥 매 순간을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는 거지.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갖고서.

진료를 마치고 먹었던 엄청 비싸고 맛있었던 마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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