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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이진 Oct 22. 2021

빌라에 산다는 것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어디 아파트 살아요?'

모든 사람이 왜 아파트에 산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 세상에 집이 이렇게나 다양한데.

상황에 따라서 나는 그냥 '아파트 안 살아요.'라고 말하고 만다. 굳이 '빌라 살아요.'라고 말하진 않는다.


학교에서 일하다 보면 선생님들이 묘사하는 좋고 나쁜 학군의 정의는 이렇다.

그 주변이 임대 아파트인지, 빌라 및 주택 단지인지, 아파트인지, 몇 평 대의 아파트인지.

마치 임대아파트나 빌라에 살면 다 문제아와 문제 부모만 있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반감이 든다. 왜냐면 나는 한 번도 그들이 말하는 아파트에서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어린 시절 나의 선생님들은 나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았을까?


새로운 친구와 서로 어디 사는지를 얘기하거나 썸을 타는 사람이 생겨 데이트를 하게 된다면 우리 집을 알려주기 싫다. 그들이 우리 집을 알고 스토커처럼 행동할까 봐가 아니라 그냥 주변 환경이 그리 좋지 못한 '빌라'에 산다는 것이 솔직히 말해서 창피해서이다. 만약 '아파트에 살았다면' 누군가 나를 집에 데려다준다고 할 때 싫지 만은 않을 것이다.


나도 안다. 나는 지금 굉장히 모순적이다.

집으로 사람들의 수준을 판단하는 기준에 반감이 들면서도 나 또한 내가 사는 집을 창피해하고 있다.


우리 집은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가난했다.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했고 졸업 후 바로 돈을 벌 수 있었다.  여기저기를 전전하던 우리 가족은 신용등급이 좋은 나의 직업을 등에 업고 내 명의로 빌라를 샀다. 물론 엇계약까지 써가며 대출을 많이 받아서. 20대 때는 오히려 스스로가 대견했고 도울 수 있음에 감사했다.

부모님은 종교인이었고, 나는 돈은 없지만 믿음의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이 지금도 변하지는 않았고, 부모님을 원망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30대 중반인 지금 나는 빌라에 사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돈을 더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아파트에 사는 걸까.


내 삶에 부끄러운 적은 한 번도 없는데, 내 가난은 부끄럽다.


이런 내 마음을 친구와 나눈 적이 있다. 한 명은 충분히 공감하며 이해한다고 했고, 한 명은 넌 열심히 살아왔으니 그건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둘 다 맞는 말이지만 나도 모르게 후자의 말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도 이런 곳에서 산다면 그렇게 교과서처럼 말하지 못할 거야.’


오래된 우리 집을 고쳐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가 스스로 발품 팔아 견적을 알아보고 페인트칠을 하고, 시트지를 붙이고 싱크대며, 문짝, 문고리 등 하나씩 다 신경 써야 했던 일련의 힘든 일들이 고작 돈 몇 푼 아끼기 위해서라는 것에 갑자기 현타가 왔다. 업체에 맡겼을 때보다 100-150만 원 정도를 아꼈다. 어떻게 보면 많이 아꼈지만 그만큼 내 시간과 돈, 그리고 정신을 투자했다. 왜 나는 돈 백만 원을 아끼려고 추운 겨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가. 왜 고작 백만 원에 벌벌 떠는 사고를 가지게 되었는가.


물론 우리 집의 경제적인 수준으로 내 주변인들이 나를 판단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리고 경제적인 이유로 무시당한 적도 없다. 그냥 사회의 잣대를 거부하면서도 그것을 초월하지 못하는 나의 괜한 자격지심인 것이다.


제주에 내려와서 구한 집에 나는 혼자 감동을 받았다. 물론 내 집이 아닌 연세로 빌린 집이었지만 내가 이런 곳에 산다는 게 감사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우리 집에 주차장도 있고, 엘리베이터도 있어. 공동현관문도 있고 베란다도 넓어. 나 이런데 처음 살아봐. 진짜 감동이야."


문명특급의 MC 재재가 유퀴즈에 나와서 그랬다. 성공이란 자차와 자가, 그리고 확보된 주차공간이라고. 살아보니 알겠다. 왜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내 집 마련에 목을 매는지.

내가 제주에 사는 게 좋은 이유가 단지 아름다운 자연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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