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과학시간, 지구의 모습 단원에서 지구 표면에 대해 공부하는 부분이 있었다. 여러 가지 표면의 모습을 소개하는 중에 바다와 계곡의 사진을 보여줬다. 그 순간 아이들의 머리에 물음표가 뜬 것이 보였다.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말한다.
"선생님, 계곡이 뭐예요?"
순간, 사고가 멈춘 느낌이었다.
'잉? 계곡을 모른다고?'
몇 초 뒤, 깨달았다. 제주도 사람들은 여름에 여기저기 널려있는 드넓은 바다로 놀러 가지 굳이 계곡을 찾아가지 않는구나. 순간 내 머릿속에도 유명한 돈내코 계곡 외에 다른 이름은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른 선생님께 어떤 계곡이 유명한지 물어보니 돈내코와 용연계곡 정도가 유명하다고 하셨다.
-제주도 현지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투리를 듣게 된다. 대화 도중에 '뭉쓰다'라는 말을 내가 못 알아듣자, 현지인이 오히려 놀랐다.
"뭉쓰다가 사투리였어?"
그러더니 못 믿겠는지 사전을 찾아보았다.
새로운 사투리를 배워 즐거워하던 나는 수업 시간에 6학년 아이들에게 말했다.
"선생님이 '뭉쓰다'를 못 알아들었어."
아이들 머리 위로 또 물음표가 뜬다.
"어라, 뭉쓰다 아는 사람 손들어볼래?"
두 명이 손든다.
"어깨가 뭉치는 거 아니에요?"
하하하. 너도 모르는구나. 나머지 한 명만 뜻을 알고 있었다. 한 반 28명의 아이들 중 오로지 한 명만 뜻을 알고 있었다. 거의 모든 20대 이상이 알고 있는 단어를 초등학생들은 모르고 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 이렇게 사투리가 사라져 가는구나.'
-제주도에서 간판을 보면 '마씸'이라는 단어가 자주 보인다. 스시마씸, 고기마씸, 흑돼지마씸, 제주마씸 등등
학기의 첫 달 3월, 교무실에서 부장님이 전화를 하실 때 직접 그 단어를 들었다.
"어떻게 할까마씸?"
진짜로 내 옆자리에서 '마씸'을 듣게 될 줄이야. 나중에 정확한 뜻을 여쭤보니 높임말 '-요'와 비슷하다고 하셨다. 높임말이다 보니 어른들에게 말할 때만 '마씸'을 쓴다.
-육지에서 이주해온지 10년 된 지인이 말해주었다. 제주도에서는 장례식장에서 국수를 준다고. 육지인들은 흔히 국수는 결혼식에서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충격적이었다.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제주와 서귀포가 문화가 다르다고 한다. 제주시에서는 주로 흰살생선 미역국이나 성게 미역국 또는 일반적으로 육개장을 주는 반면 서귀포에서는 정말 멸치국수와 돼지고기를 준다고 한다.
-물론 육지도 초등학교에서 우유급식을 한다. 하지만 희망자만 우유를 신청하고 먹는다. 전체 우유급식이 언제부터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90년대에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전체 우유급식을 했었고, 2009년에 발령을 받고 보니 우유급식이 희망제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2021년 제주도 초등학교에서는 아직 전체 우유급식을 한다. 물론, 무상급식으로 바뀌면서 제주도에서는 이 우유값까지 지원이 나가기 때문에(육지에서는 희망 우유급식이므로 돈을 낸다) 아이들이 돈을 내지는 않는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교사의 급식비에 그 우유급식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유가 싫으면 두유를 준다. 취소는 하지 못한다. '육지 것'이(제주도민이 육지인들을 놀릴 때 쓰는 말) 내려와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기에 일단 조용히 하라는 대로 하고 있지만, 지인에게 물어보니 이전 학교에서는 한 선생님이 우유급식을 하지 않기 위해서 영양교사와 대판 싸웠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왜 제주도는 아직도 이런 체제인 것일까?
우유 패키지를 보고 답을 찾았다. 육지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우유 브랜드이다. 제주도에서 소비가 되지 않으면 이 우유회사는 망할 것이다. 혼자만의 결론을 내리고 다른 선생님과 대화를 해보았다. 정확하다고 했다. 10년 전에 우유급식을 없애려고 했지만(우유 자체 장단점에 대한 논란도 많고, 교사들은 알겠지만 아이들이 우유를 먹지 않아서 매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고민이다) 제주 낙농업계의 반대에 부딪혀 없애지 못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우유 소비가 급감하면 그 회사와 관련된 일자리가 대폭 줄을 테니 비단 회사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결국 중학교부터는 희망 우유급식, 힘없는 초등학교는 강제 우유 급식으로 남았다.
-나에게 고기국수란 제주도 여행 와서 찾아가야지만 먹을 수 있었던 메뉴이다. 그런데 그게 학교 급식으로 나온다. 심지어 맛도 좋다. 신나서 급식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린다. 좋아라 하며 고기국수를 먹으니 옆자리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베지근하게 잘 끓였네요."
고기국수 같은 국물을 베지근하다고 표현한다는 것을 알았다. 재미있는 것은 베지근하다라는 표현을 내가 이해하는 데 오래 걸렸다는 것이다. 사전적 정의는 '고기 따위를 푹 끓인 국물이 구미가 당길 정도로 맛이 있다.'인데 내 입장에서는 마치 설렁탕 같은 국물을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설렁탕은 배지근하다고 표현하지 않는단다. 오직 '고기'를 끓여서 기름지게 감칠맛이 도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성게 미역국이 나왔다. 급식 맛집 우리 학교 만세!
-이것은 문화충격이었다. 마치 대학교에 들어가서 경상도 사람들이 순대를 쌈장에 찍어먹고 전라도 사람들이 콩국수에 설탕을 넣어 먹는다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의 문화충격 정도의 수준이었다. 급식에 뭇국이 나왔는데 된장 맛이 났다. 놀란 나를 보고 옆의 선생님은 더 놀랐다. 뭇국뿐만 아니라 콩나물국, 오이냉국 등에도 된장을 넣는다고 했다.
"뭇국은 간장으로 간을 하고, 콩나물국은 고춧가루가 좀 들어가는 것만 먹어봤어요. 된장이 들어간 뭇국이나 콩나물국은 처음 들어요."
박학다식하신 교감선생님과 이와 관련해 대화를 나누었고, 우리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제주도의 음식에 많은 곳에 된장이 베이스로 들어가는데 예전에 고기나 생선을 넣지 못할 때 맛을 내기 위해 많이 쓰였던 것이지 않을까.
-물론 모든 도민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지역이나 지인의 유무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아는 제주도민들은 이렇게 말한다. 귤을 돈 주고 사 먹지 않는다고.
왜냐하면 그들의 부모님이나 친척, 또는 지인 중 누군가는 귤농사를 짓고 있고 귤을 수확하는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귤을 주거나 파치를 얻어온다고 했다.
"그럼 저는요?"
"선생님은 마트에서 사 먹어야지."
아, 네.
-학교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의 성씨를 보고 신기했던 점은 육지에서 자주 보지 못했던 성씨가 많다는 것이다. 고씨나 양 씨는 많지는 않아도 쉽게 볼 수 있었던 반면, 부 씨나 좌 씨는 정말 간혹 한 번씩 볼 수 있는 성씨였다. 제주도의 삼성혈과 관련된 전설인데, 고을라,양을라,부을라 세명의 신인(神人)이 삼성혈이 태어났고 제주를 대표하는 삼대 성씨가 된 것이다.
좌 씨는 절대적으로 많은 성씨는 아니지만 육지에 비해서는 그 비율이 현저히 높다. 좌 씨는 고려시대 때 원나라와 고려의 연합군이 제주에서 삼별초를 평정하고 일본 정벌을 위해 명마를 기르면서 파견된 관리인이 그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코로나 시기에 정말 제주도가 '섬'이구나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2020년 학교에서 근무를 할 때도 코로나 시기였지만 다른 지역을 갔다 와서 코로나 검사를 받거나 하는 권고는 없었다. 나는 육지사람이고 본가를 방문하기 위해 종종 비행기를 타는데, 제주도에서 교사는 타 시도를 방문할 때 관리자에게 보고해야 하며 돌아올 때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 나의 자유는 어디 있는가. 올 한 해 육지를 들락날락하며 내 코는 벌써 5-6번 후벼졌다. 이제 코로나 검사받기 싫어서 육지에 가기 꺼려진다.
(개인적인 경험과 지인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모든 제주도민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