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이사 가기 일주일 전, 부모님과 오빠네 가족이랑 샤브샤브를 먹으러 갔다.
"엄마, 은서가 벌써 둘째를 낳았어. 너무 신기하지?"
나는 친구의 근황을 이야기한 것뿐인데 돌아온 엄마의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야, 이제 너가 뒤쳐졌네. 호호호"
대학 졸업 후, 세 번 만에 임용시험에 합격한 내 친구가 그 시절 엄마 눈에는 한 번에 합격해서 일찍 선생님이 된 나보다 뒤처져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미 결혼하고 아이도 낳은 그 친구에 비해 애는커녕 결혼도 안 한 나는 얼마나 뒤처져 보였던 걸까. 사실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 엄마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적잖은 충격을 받고 대답을 못하는 나 대신 오빠가 대답을 해줬다.
"엄마, 이제 그런 건 선택이에요."
극보수의 성향을 가진 오빠가 나를 두둔하는 말을 해주어서 그 순간 어찌나 고맙던지.
한국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인생의 단계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1단계 : 좋은 대학을 간다
2단계 : 좋은 직장을 가진다
3단계 : 좋은 배우자를 만난다
4단계 : 아이를 낳는다
5단계 :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낸다
4번과 5번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수많은 단계들이 있다. 가령 '좋은 차를 산다.' 또는 '좋은 집을 산다.' 등이다. 물론 '좋은 집을 산다.'는 문장에는 당연히 인서울(안되면 서울 근교)에 있는 아파트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삶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좋은 점들이 많다. 그런데 문제는 누구나 그걸 할 수 있느냐, 원하느냐, 또는 이루어야 하는 결정적 시기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단계에 비추어보았을 때, 나는 우리 엄마에게 결혼이라는 단계를 10년이 넘게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부진아 같은 딸로 보이는 걸까. 교대에 척하니 붙고, 임용시험에 떡하니 붙어 엄마의 자랑거리였던 딸이 이제는 심지어 정규직도 아니고 30대 중반에 제주도로 이주해 혼자 살겠다고 하니 겉으로 표현은 안 하셨지만 꽤나 속이 쓰리셨을 수도 있다.
학교를 퇴직할 때, 또래 선생님들이 궁금해했던 것 중에 하나가 '어떻게 부모님을 설득했냐.' 하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질문 자체가 굉장히 신선했다. 물론 중대한 결정이니 만큼 부모님께 알려야 하고 그 과정을 공유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내 인생의 결정이 부모님의 허락 여부에 달려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당시에는 '제 인생이니까요.'라고 대답하고 넘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년한 딸이 이제 와서 안정된 직장을 때려치우고 모험을 하겠다는 말에, '네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야지 뭐. 엄마도 네가 억지로 하는 건 원하지 않아.'라고 말해준 부모님도 참 탐탁지는 않으셨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중에 의원면직 서류까지 마무리하고 왔을 때, 엄마는 '진짜 할 건가 싶었는데 진짜구나.'라고 체념하듯 말씀하시긴 했다.
그리고 가끔은 결혼에 관한 듣기 싫은 잔소리에 나도 조금은 쓴소리로 대응한다.
"엄마는 결혼해서 행복했어? 여태까지 힘들게 살았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결혼하라고 말해. 결혼하면 여자가 손해야. 지금도 봐봐. 아빠는 손가락 까닥 안 하잖아."
"아니 안 행복했어. 그래도 너네를 낳아서 키우는 기쁨이 있잖아. 나중에 나이 들어서 혼자여 봐. 얼마나 외롭겠어."
"엄마, 미래에 내 외로움을 염려해서 지금 억지로 무언가를 하며 내 삶을 놓치고 싶지는 않아. 정말 평생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결혼할 거니까 걱정 마. 그런데 못 만나면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외로움 때문에 혼자 살기도 버거운 세상을 지지고 볶으며 살고 싶지 않아. 엄마도 이해하지? "
맞다. 나는 논리 정연하게 팩트로 엄마가 아무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나쁜 딸이다. 그래도 이제는 제주에서 즐겁게 사는 나를 보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 거기 정착해 살아."
"왜, 언제는 내가 독립하는 거 싫다며."
"아니, 네가 제주도 사는 거 좋아하니까 엄마도 좋아. 그리고 네 덕에 엄마 제주도 자주 놀러 가게."
이번에 오시면 지난번에 맛있게 드셨던 전복물회를 다시 먹으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