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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이진 Oct 24. 2021

브런치 공모전에 임하는 나의 자세

나를 돌볼 겨를이 없어져서 결국 탈이 났다. 새벽까지 울렁거림과 토하기를 반복하다가 잠이 들었고, 겨우 수업을 마치고 조퇴하고 병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타지에서 아프면 서럽고 엄마 생각이 절로 난다. 30대 중반 딸이 환갑 넘은 엄마에게 징징거리자 엄마가 한마디 했다.


"느리게 좀 살어."


아.


맞다.

 

내가 제주에 왜 왔는가. 


전혀 느리게 살지 못하고 있다.

계속 무언가를 하고자 계획을 세우고 나를 채찍질한다.


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다. 제주도에 있을 때 실컷 즐겨야지, 라는 생각으로 놀러 다니고 연수도 이것저것 신청했다. 내가 스케줄을 너무 꽉꽉 채우니 주변 선생님들이 말릴 정도였다. 

6-7월에는 아이엘츠를 공부한다고 무리를 했다. 시험을 신청한 것도 영어공부를 너무 놓고 있어서였다. 아이엘츠는 토플처럼 영국이나 호주의 대학에 입학할 때나 이민 갈 때 필요한 점수이다. 그렇지만 나는 어디에 제출할 것도 아니고, 이걸로 특정 시험을 통과할 것도 아니었다. 동기부여가 필요해서 시험을 신청했을 뿐이고, 공부는 하게 되었지만 역으로 그 시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목디스크가 재발했다. 

아이엘츠 시험이 끝나자마자 신청해놓은 방학 중 연수들이 연달아 있었고 새로 만난 사람들과 관계를 다지다 보니 브런치 공모전이 떴다. 이것을 개인적 목표로 삼고 작년부터 시작했던 글쓰기에 다시 한번 박차를 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제주 바다 앞에서 공모전에 임하는 나의 자세를 얘기하는데 친구가 말했다.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누가 쫓아오는 거 같아? 뭘 자꾸 하려고 하는 모습이 짠해. 여태까지 정말 열심히 살아왔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무엇보다 네가 스트레스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에게 글쓰기는 사명과도 같은 것이고, 브런치 공모전이 또한 동기부여가 되어줄 것 같아서 나의 포부를 밝힌 것인데 이런 얘기를 들을 줄은 몰랐다. 

순간 당황해서,


"아니,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예전부터 글을 쓰고 싶었던 거라서 그래. 이왕이면 열심히 하는 게 좋잖아."


내가 쫓긴다는 느낌도, 뭔가 이루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왜 친구가 나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오히려 의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루 이틀이 지나자 그 친구의 말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왔다. 


나는 치열하게 살아왔던 사람이고, 열심히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 맞았다.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의원면직을 한 뒤, 내가 하고 싶었던 경험들을 했지만 결국 나는 다시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돈은 돈대로 썼다.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고는 하지만 학교를 내 발로 박차고 나왔기에 시시해지기 싫었다. 멋있게 살고 싶었다. 무엇인가로 성공해서 다른 사람들과 나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내 삶과 선택들이 부정당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가만히 있지 못했다. 계속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며 마냥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으려 했다.


내 마음의 민낯을 마주하고 보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래, 좀 흘러가는 데로 냅두자.'


작년 브런치 수상작들을 보며 어떻게 해야 상을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어떤 내용이 사람들에게 유익하면서도 트렌디하게 다가갈까 생각하며 머리를 쥐어짜던 나를 내려놓았다.


첫 번째 이유는, 그 수상작들을 보니 내가 죽기 살기로 해도 될동말동이었다. 세상에는 글을 맛깔나게 쓰는 사람들이 참 많다. 나는 능력도 부족한데 지금 죽기 살기로 덤빌 마음도 에너지도 없다. 여유를 찾아 제주까지 내려왔는데 왜 서울 사는 사람처럼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가. 


둘째는, 열심히 달려온 나에게 쉼을 주고 싶었다. 친구의 말처럼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나를 이제는 좀 천천히 걷게 해 줘도 되지 않을까. 제주도는 가을이 예쁘다는 데 나의 제주살이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서 예쁜 제주 가을을 즐기며 천천히 글에 담아내고 싶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처음의 마음처럼, 단 한 명이라도 내 글을 공감하고 이것을 통해 힘을 얻는다면 그것으로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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