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만난 사람들
(2018.10.)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
'이야기는 힘이 있다.'
아이들도 재밌는 이야기를 시작하면 쥐죽은 듯이 조용해지잖아. 그것이 진짜 누군가의 인생이야기라면 더욱 더 흥미롭지. 영화가 끝나고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을 알게되면 더 관심이 가는 것처럼.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라도 각자의 성향과 만나는 사람들에 의해 그 이야기는 철저히 달라지기 때문에 때로는 그 이야기가 굉장히 감격스럽기도 하지. 그래서 내가 영국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의 인생은 각기 다른 이야기로 다가왔어. 다른 나라, 다른 성향, 다른 상황을 통해서 지금은 이곳에 모였고 또 각자의 삶을 살기 위해 머물거나 흩어졌지.
남아공에서 온 나의 '빅 리틀 브라더 R'.
키는 크지만 한참 어린 남동생 같아서 붙여진 그와 나 사이의 별명이야. 키가 정말 멀대같이 크고 깊은 초록색 눈을 가진 갈색 곱슬머리의 그는 기쁨의 아이콘이야. 함께 모여서 기도제목을 나눌 때 18살인 그는 언제나 특별한 기도제목이 없어. 항상 기쁘기 때문이야. 걱정도 없어보여. 그래서 나는 그가 꽤나 좋은 집안에서 자랐다고 생각했어. 알다시피 남아공은 인종차별이 좀 심한데 그는 백인이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힘든 점이 크게 있지 않을 거라 생각한거지. 왜 홈스쿨을 했는지 물어보기 전에는 말이야.
동생들이 많은 집안의 맏이인 그는 쭉 홈스쿨을 하고 자랐대. 부모님이 어떤 신념이 있어서 그런건 줄 알고 나는 이유를 물어봤어.
"우리 집이 좀 더 여유로웠다면 아마 학교에 다녔을 것 같아. 그치만 나는 홈스쿨이 좋았어."
R의 대답을 들은 나는 그 때 느꼈어. R의 기쁨은 상황에서 오는 기쁨이 아니구나. 진정으로 내면에서 뻗어져나오는 기쁨이구나.
BTS의 노래만 나오면 흥분하는 하와이 소녀 M.
우리는 잠시 룸메이트였어. 20살인 그녀는 선교사로 온 거고 나는 봉사자로 온 것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같은 방에 배정될 일은 없는데 그 당시 뭔가 좀 꼬여서 잠시 봉사자 방에 머물게 된 거지. 한국인 동생들과만 방을 쓰다가 갑자기 미국인 그녀와 함께 방을 쓰는게 처음엔 좀 불편했어. 그녀는 한국인처럼 눈치를 보지 않고 공동생활에 대한 어떤 규칙이 없는 것 처럼 행동했기 때문이야. 그치만 BTS 노래만 나오면 춤을 추고 사극 드라마 '주몽'을 정주행하는 그녀는 작은 간식만 줘도 아이처럼 기뻐하는 귀여운 면이 있었어. 결국 우리는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서 그녀의 브라질리언 남자친구 연애 상담까지 해주기에 이르렀지.
나중에 내가 하펜든을 떠날 때 그녀는 인스타에 나를 위한 포스트를 올렸어.
'나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고 내가 빨래를 하지 않을 때도 참을성 있게 기다려줘서 고마워.(빨래를 하지 않아서 그녀의 빨랫감이 방에서 자라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 나는 언니처럼 지적했던 적이 있었거든) 너는 언제나 나의 사랑하는 언니야! 너무 보고싶을 거지만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캘리포니아에서 다시 만났다. 전형적인 미국식 음료 루트비어 플로트를 마시면서.
르완다에서 온 한동이.
한동이는 그의 별명이야. 그와의 만남은 꽤나 극적이었어.
법학전공을 마치고 심리 상담관련 프로그램을 수강하러 르완다에서 영국 하펜든으로 날아온 그는 나와 K가 한국인이라고 말하자 갑자기 한국말을 했어. 상상이 잘 되지 않을거야. 영국에서 만난 검은 피부의 큰 키를 가진 르완다인이 한국말을 한다는 게.
"아니, 어떻게 한국말을 아는거야?"
"한국에서 공부했어요. 포항에 있었어요."
"헉, 혹시 한동대?"
K가 놀라며 물었어. 안그래도 크고 동그란 그의 눈은 더 동그래졌어.
"That is right. How did you know that? 맞아요. 어떻게 알았어?"
"내가 거기 졸업했어!!! 대박, 우리 학교에 국제 교류 학생이 있는 건 알았지만 그 사람을 여기서 만나다니!"
우리는 모두 입이 떡 벌어졌지. 정말 What a small world!
그 때부터 우리는 그를 한동이라고 불렀지. 사실 그의 본명을 잊어버렸어. 한동이가 너무 친숙해서 말이야.
기독교인이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 나라만의 문화라서 외국인들은 크리스챤이라고 해서 술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지는 않아. 그런데 그는 술을 입에도 안대더라고. 자신의 친구가 술을 먹다가 죽었을 때 자신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대.
우나 까르보나라 페르 파보레(까르보나라 하나 주세요) 이탈리안 L.
L에게 배운 유일한 이탈리안 말이야. 완벽해질 때까지 백 번 정도 연습하고 난 뒤에야 그에게서 이탈리아에 가서 까르보나라를 주문해도 되겠다는 칭찬을 받았어. 그 때 배운 그 문장을 학생들에게 한 번씩 써먹을 때면 선생님은 도대체 몇 개 국어를 하는 거냐는 오해를 받곤하지. 대학교에서 경영을 전공하는 그는 방학을 통해 봉사자로 왔고 우리는 자주 어울렸어. 그도 그럴것이 L은 꽤나 여성스러운 면이 많았기 때문이야. 그래서인지 그는 R과 마찰이 있었어. 둘의 성향은 극과 극에 있었는데 R이 먼저 오기도 했고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일에 관해서 엄격한 반면, L은 바깥 일을 힘들어하고 융통성이 많은 편이었지. 따뜻한 나라 이탈리아에서 온 경향도 없지 않아 있었고 말이야. 그들은 워크 스케쥴이 같고 방까지 같이 쓰고 있었어. 마치 십대 여자아이처럼 그는 우리에게 R의 행동을 일러바치고는 했어.
한 번은 시중에 파는 까르보나라는 진짜가 아니라며 우리를 위해서 찐 레알 이탈리안식 까르보나라를 만들어줬는데 내 입맛에는 차라리 가짜 까르보나라가 더 맞더라고.
중국인 아내 A와 스위스인 남편 B 커플.
우리 플랫에 사는 유일한 부부였어. 서로 반대가 끌린다더니 정말 이렇게까지 다른 사람이 부부가 되는구나 생각이 들 정도의 커플이었어. A는 정말 말이 많았고 B는 목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을 정도였어. 그들은 스위스 베이스에서 만나 결혼하고 영국으로 온 연상연하의 선교사 부부였어. 말은 하지 않고 웃기만 하는 B는 꽤나 입맛이 꽤나 까다로워서 베이스 식당에서 먹지 않고 언제나 요리를 해 먹었고 A는 옷을 방에서 갈아입지 않고 공동 욕실에서 갈아입었어. 한국인 동생 K와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정말 신기한 부부라고 생각했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A가 나와 비슷한 나이일 거라고 생각하고 아무렇지 않게 나이를 물었어. 서양에서는 나이를 잘 묻지 않지만 중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과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거지. 그런데 적잖이 당황하면서 나중에 따로 알려주겠다고 하는거야. 나는 나이 알려주는 게 그렇게까지 꺼릴 일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중국에서는 처음 만났을 때 나이를 묻지 않는다더라고. 특히 여자의 나이는. 그제서야 아차 실수였구나 싶었지.
극강의 외향적 에너지를 가진 브라질리안 H.
H와 V는 브라질에서 봉사자로 온 친구들이었어. 실제로 같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친구였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그들의 텐션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야. 따뜻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웜컬쳐나 성향을 알고는 있었지만 H는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외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새로운 사람과도 3초 만에 친구가 될 정도였어. 그런데 그게 옆에 있으면 가끔 기가 빠진다고 해야되나? 힘들때가 있고 이해가 안될 때도 있어서 V에게 물어봤어.
"쟤는 브라질에서 평범한 편이야?"
"음 그렇게 특별하진 않아. 더 과한 사람들도 있어."
"정말? 브라질 사람들을 1-10으로 나눈다면 H는 몇 정도 되는 거 같아?"
"한 7-8?"
내가 브라질에 가게 된다면 혼자만의 시간을 꼭 확보해야겠다고 다짐한 순간이었어.
한 번은 V가 그의 자발스러운 하이텐션에 지쳤는지 이렇게 말했어.
"Stop it right now, in Jesus name. 지금 당장 멈춰,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는 절친의 그 말이 너무 웃겨서 가끔 H가 과하다 싶을 때마다 그 말을 따라하며 놀리곤 했어.
Are you alright Man, 영국인 T.
"Are you alright?"은 우리가 아는 "How are you?"의 영국 버전이라고 할 수 있어. 영국인이라고 항상 그렇게 안부를 묻는 건 아니지만 T는 언제나 아유올롸잇만 말했어. 난 처음에 내가 정말 괜찮은지 묻는 줄 알고 쟤는 왜 저렇게 묻지, 내가 안 괜찮아 보이나 하고 생각했지 뭐야.
그도 우리 플랫에 살았는데 친해지기 쉽진 않지만 알고보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야. 사실 친해지고 싶어도 쉽지 않았던 건 그의 성향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그가 뭐라고 하는지 정말 모르겠었어. 발음이 너무 웅웅거려서 못알아 듣겠더라고. 가끔 K와 내가 T랑 대화가 안되서 당황할 때 마다 같은 플랫에 사는 미국인 C는 자기도 그의 말을 가끔 못알아들으니까 걱정말라고 위로해주곤 했어.
그가 난독증이 있다는 걸 안 것은 아주 긴 성경공부 코스 수료식 때였어. 자신의 난독증 때문에 이 과정을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릴 때 그곳의 모든 참석자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지.
짐 캐리를 닮은 남아공 출신 독일 여권의 주인공 D
훈훈한 외모의 젊은 D가 처음 왔을 때 누구도 그가 네 아이의 아빠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거야. 짐 캐리와 닮은 그는 남아공에서 왔고 친구들 모임에서 우연히 M을 만나 팔씨름을 하는 중에 그녀가 자신의 아내가 될 것을 확신했대. M은 남아공 아버지, 독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독일 국적을 가지고 있었는데 D는 M과 결혼해서 독일에서 살면서 남아공 국적을 버렸대. 전혀 쓸모가 없다면서.
그에게는 천사같은 네 명의 아이가 있어. 사실 셋째는 가끔 보면 악마같긴 하지만. 네 명의 아이 모두 외모가 출중했어. 그 중 첫째는 세 명의 동생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굉장히 성숙했어.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되는 첫째가 한 번은 나와 대화를 나누는데 나는 무슨 면접을 보는 줄 알았어.
"너는 어떻게 여기에 왔어?"
"남자친구 있어?"
"결혼을 하고 싶어?"
"아이가 몇 명이나 있었으면 좋겠어?"
"여기에 있다가 나중엔 어디로 갈거야?"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니까.
하펜든에서의 4개월은 다이나믹했어. 당시에는 일만하고 내가 여기서 뭐하는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었는데 지나고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간접경험을 하고 다양한 생각과 감정들을 공유했더라고. 한국에서만 자라고 한국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교사로서 살아온 내 시야가 넓어지기 시작했지. 그 모든 경험들이 새롭고 좋았기에 영어를 더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었어. 나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언어의 한계가 있었던 거야. 그렇게 나는 어학원을 등록하고 또 다시 새로운 생활에 기대를 품게 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