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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이진 Apr 05. 2022

[#23 사하라 사막에서의 하룻밤]

(2019.01.)


사하라 사막?

초등학교 사회시간에나 듣던 곳이지. 아프리카에 있는 가장 넓은 사막이라고 배웠던 것 같아.

사하라 사막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어. 단지 친구랑 여행 계획을 짜다 보니 사하라 사막에서 하룻밤 자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투어를 신청한 거야. 모로코로 오게 된 두 번째 트리거가 되었던, 어학원의 스위스 친구랑 말이야.


2박 3일 사막투어의 팀원은 총 7명이었어.

3명의 핀란드인, 2명의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스위스인 한 명, 그리고 한국인 한 명. 몇 년 전 호주에서의 덥고 불편하고 또 더웠던 사막투어에 비하면 이건 천국이나 다름없었어. 밴도 굉장히 편했고 소규모인 데다가 영어로 대화하는데 그 전보다는 훨씬 편안해졌어. 호주에서는 가이드 아저씨의 발음을 못 알아들어서 미국인 노부부에게 항상 모이는 시각을 다시 되묻고는 했지. 한 번은 시간이 바뀌는 존을 지나왔기 때문에 한 시간이 느려졌다는 얘기도 못 알아듣고 친구랑 새벽 5시에 출발 장소에 서 있었던 적도 있었어.


아이트벤하도우(글래디에이터 외 다수의 영화 촬영지)


아무튼 꽤나 영어를 잘하는 모로코인 가이드의 인도로 우리는 사막을 향해 출발했어. 팀원들 중에 말레이시아 친구들이랑 마음이 잘 맞았어. 한류 때문인지 한국에 굉장히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나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서 외국인이어도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것 같아. 그들은 중국계여서 그런지 몰라도 수천 장의 사진을 찍어댔어. 덕분에 나도 좋은 사진들을 건질 수 있었고. 이름은 켈리와 엘리, 둘은 어릴 때부터 친구래.


켈리는 현재 두바이에서 석유, 가스 관련 미국계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어. 어쩐지 영어 발음이 거의 원어민 수준이더라고. 이 친구는 출장도 많이 다녀서 한 달 뒤에 나랑 런던에서 다시 만나기도 했어. 지금도 인스타 친구인데 사진이 장난이 아니야. 두바이는 석유부자 나라잖아. 요트 투어, 럭셔리한 집에서 파티, 멋진 야경에서 요가하기 등 거기서 멋있는 일들은 혼자 다 하고 다니더라고.


엘리는 직업을 얘기하는데 몇 초 뜸을 들이더라고. 왜 그런가 했더니 배우래. 조연급이긴 하지만 했던 작품들을 보여주는데 내가 신기해하니까 쑥스러워하면서 그러더라고.


"그냥 직업일 뿐이야."


오, 멋있어. 아무렇지 않게 흘려 말하니까 더 멋있어 보였어. 우리는 낙타를 타고 사막의 한가운데 베이스캠프까지 가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천막으로 만든 거라서 옆방의 소리가 다 들려. 켈리와 엘리가 옆 방에서 그러더라고.


"나는 한국인 친구가 좋아."

"맞아. 그 밝은 에너지가 나도 기분 좋게 만들어."

우연히 사막 한가운데서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져서 바로 소리쳤지.

"너네 내 얘기하는 거야? 내가 좋다구?"

그들은 또 까르르 웃었어.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부러 나 들으라고 그런 것 같아. 그렇지 않았으면 중국어로 말했을 텐데 말이야.

윈도우 배경화면 같은 모래사막

한 명씩 낙타를 타고 모래사막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은 화보에서나 나올법한 아름다운 모양과 색을 가지고 있었어. 한참 동안 사막을 가로질러 가는데 핀란드 사람들이 계속 '까까'라는 말을 연발하는 거야. 낙타가 똥을 싸는 걸 보고 얘기하더라고. 알고 보니 핀란드어로 '까까'는 '똥'이라는 뜻이었어. 우리나라에서는 아기들한테 말할 때 과자를 까까라고 하잖아.


"까까가 한국에서 무슨 뜻인지 알아?"

"뭔데?"

"과자야."


그들은 신나서 웃더라고. 핀란드어는 하나도 모르지만 확실히 한 가지는 기억에 남게 되었어. 그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


나는 몰랐는데 북유럽 사람들이 완전 구두쇠야. 단체여행이 늘 그렇듯 가이드는 우리를 쇼핑 거리로 안내했는데 우리는 베르베르인이 짠 카펫 가게로 들어갔어. 주인장이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설명을 하니까 핀란드 사람들이 이 무늬는 없냐, 이 크기는 없냐, 이 색깔은 없냐, 배로 보내면 얼마냐 등등 정말 살 것처럼 자세히 물어보더니 정작 안 산다고 하는 거야. 내가 다 민망하더라고.

사막 한가운데의 숙소
모로코 현지인들의 공연

밤에는 같이 공연을 보며 캠프파이어를 했는데 하늘에는 별들이 말 그대로 널. 려. 있었어. 수만 개의 별들이 너무 선명히 보여서 별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였어. 동아프리카도 가 본 적 있지만 사막에서 본 별들은 또 다른 차원의 것이었어. 불빛 하나 없는 깊은 밤하늘 가운데 너무나 촘촘히 박혀 있는 크리스털 같은 별들. 그중에서 밝게 여러 가지 색깔로 빛나는 별이 있었어. 그 많은 별들 가운데서도 유난히 눈에 띄었지. 어플을 통해 보니 시리우스였어. 와, 바로 이거였구나. 과학시간에 아이들과 스텔라리움으로 찾아봤던 그 별! 그곳에서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어. 별은 정말로 빛난다는 것을.


그렇게 사막의 밤은 아름다웠지만 너무 추워서 잠을 잘 수 없었어. 내가 가진 모든 옷을 입고 양말도 두 겹으로 신었는데도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찬기가 가득했어. 다음날 아침을 먹으려고 둘러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 눈밑이 쾡한 것이 나만 잠을 못 잔 게 아닌 것 같았어. '사막은 일교차가 크다.'는 교과서적인 상식도 '진짜'이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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