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아이를 두고 해외파견 간 엄마 이야기
"요즘 미친 네 살이야."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지 묻는 나의 말에 남편이 대꾸했다. 할머니 말도 아빠말도 듣지 않고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린다는 거다.
그렇지 않아도 원래 좀 고집이 센 성향이었다. 신생아 때부터 앙칼진 목소리로 울어대는 폼이 벌써 예사롭지 않았다. 공포의 18개월을 지날 때는 매일 두세 번씩 분노발작이 왔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뒤집어져서 숨이 넘어갈 듯 소리 지르며 우는 통에 영혼이 너덜너덜한 채로 지내던 어느 날, 아이가 싱글싱글 웃으며 다가오는데 순간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밀어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스스로 화들짝 놀랐다. 그때부터 이것저것 찾아보며 분노발작이라는 용어를 알게 됐다. 자아는 발달되는데 아직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 돌 전의 아이에게 흔한 행동이라고 하던데, 내 주변에서 그런 행동을 보인 아이는 우리 아이가 유일했다.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간신히 그 시절을 지나왔다.
그런 아이에게 미운 네 살, 아니 요즘은 업그레이드되어 미친 네 살이라 부르는 시기가 왔으니, 알만하다. 나는 혹시나 엄마가 없는 스트레스때문은 아닐까 추측해 봤지만, 정말 미친 네 살의 과정을 겪고 있어서 그럴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질투가 났다. 내가 아이의 미친 네 살을 못 보고 지나가는구나. 고충을 토로하는 남편에게 말했다.
"그래도 딸내미랑 같이 있잖아..."
내가 전화를 걸면 아이는 화면 밖으로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할머니를 괴롭히고 아빠를 때리고 꼬마악마처럼 깔깔대며 웃다가 미련 없이 통화를 똑 끊어버리곤 했다.
나는 그동안 아이에게 헤어져서 슬프거나 서운한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다. 우리가 이렇게 헤어져 있는 것을 슬픈 일이라 여기지 않았으면 했기 때문이다. 잠시 산책을 다녀오듯 자연스운 일인 것처럼, 담담히 받아들였으면 했다. '생각도 생각이 필요해'라는 책에서 저자는 출장을 갈 때마다 항상 아이들에게 미안함과 슬픔을 표현했다가, '당신의 감정이 오히려 아이들을 슬프게 만든다.'는 아내의 지적을 받는다. 아이들은 헤어지는 상황 자체보다 그 상황을 대하는 부모의 감정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활짝 웃으며 "엄마 다녀올게!"라고 손을 흔들었던 건, 엄마가 언제나처럼 다시 올 거라고, 이 헤어짐이 슬프고 아픈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통화할 때도 항상 명랑하고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가끔 아이가 "엄마 이제 집으로 와."하고 툭 내뱉을 때가 있었다. 나는 최대한 웃으며 "응, 엄마 일 다 하고 갈게. 조금 기다려."하고 말했다.
상담사는 오히려 아이가 혼란스러운 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아이가 실제로 느끼는 감정과 엄마가 보여주는 반응에 차이가 있으면 진짜 자기감정을 표현하기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엄마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도 괜찮다고.
그날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서 "엄마 너무 슬퍼. 우리 딸 보고 싶어서."라고 슬픈 표정으로 말해봤다. 나는 아이가 "나도 엄마 보고 싶어."라고 할 줄 알았다.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럼, 빠방 타고 오면 되잖아."
아이와 헤어진 것이 2월, 겨울이었는데 어느덧 봄을 지나 여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캄보디아는 혹서기를 지나고 있었다. 업무는 계속 난항을 겪는 와중에도 꾸역꾸역 진행되고 있었고, 3개월간의 프놈펜 생활 후엔 북서부 지역의 작은 도시 시소폰으로 거처를 옮겼다. 자다가 머리맡에 개미떼가 출몰하고, 벌레들이 문틈으로 날아들어와 기겁을 해가며 시골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에어컨 두대를 다 틀어놓아도 한낮에는 집에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더웠다. 나는 휴가만 기다리고 있었다. 업무일정과 비자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바로 한국으로 가기 위해 수시로 항공권 사이트를 들여다봤다.
어느 날 어머님이 전해준 말을 듣고 나니 더욱 마음이 바빠졌다.
"얘, 지난번에는 날이 따뜻해졌길래 저녁 먹고 놀이터에 나갔는데, 깜깜해지고 나니까 엄마랑 별 봤다고 얘기하더라. 엄마랑 놀이터에서 누워서 별 봤다고. 그러더니 그냥 집에 간다고 해서 다시 들어왔는데 별안간 막 서럽게 울기 시작하는 거야. 어머나, 그렇게 우는 건 또 처음 봤네. 한참을 그렇게 울지 뭐냐. 뭔 일인가 싶어서 깜짝 놀랐어."
나는 아이의 감정이 계속 궁금했었다. 상처받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에 괜찮은지 아닌지 계속 확인했다. 괜찮으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서운하고, 괜찮지 않은가 싶으면 걱정하느라 마음이 불안해졌다. 하지만,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이가 엄마를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있다는, 그 당연한 마음을.
엄마랑 웃으며 뛰어다니고 같이 별을 보던 순간을 떠올리던 아이의 마음이 지금 내 마음과 같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