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레이소폰 세탁소의 아이들
세 살 아이를 두고 해외파견 간 엄마 이야기
엄마 해외파견 다녀올게
10. 스레이소폰 세탁소의 아이들
아이는 낯선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성격은 아니지만 호기심은 많았다. 부끄러워서 먼저 말을 걸진 못 하면서 괜히 주변을 빙빙 돌며 분위기를 살핀다. 캄보디아에서도 그랬다. 숙소에 도착한 날 저녁에 아이와 함께 집 앞으로 나갔더니 동네 애들 몇 명이 바닥에 앉아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중 한 아이가 피자모양 장난감 하나를 가져와서 쓱 내밀었다. 집 앞에 있는 세탁소집 딸이었다. 그 아이는 8살이었지만 체구가 작아서 제 나이보다 큰 편인 딸아이와 키가 비슷했다. 아이는 내 뒤로 얼른 숨었다. 세탁소집 아이는 다시 원래 함께 놀던 아이들에게로 돌아갔다.
아이와 엄마가 내가 지내는 숙소로 온 지 며칠이 지났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 둘이 갈 데도 없는데 잘 지낼지 조금 걱정이었지만, 하루 이틀 지나고 나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없는 낮동안 엄마는 엄마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한가롭고 걱정 없는 캄보디아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퇴근 후 다 함께 골목길을 걸어서 근처 슈퍼마켓에 가보기로 했다. 사려던 것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산책 삼아 나선 길이었다. 궁금한지 우리 근처를 맴돌던 세탁소 집 딸이 함께 따라나섰다.
골목길은 포장이 군데군데 부서져 울퉁불퉁하고 공사를 하느라 쌓아놓은 자갈과 모래들 때문에 어수선하고 먼지가 날렸다. 아이가 넘어질까봐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이따금씩 지나다니는 오토바이와 차들을 피하고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개들도 피하고 닭과 소와 돼지들도 피해 가야 하는 험난한 산책이었다. 세탁소집 아이는 우리보다 앞서거나 뒤서거나하며 길잡이를 해주는 듯했다. 캄보디아말을 못 하는 우리는 그냥 한국어로 이런저런 말을 붙여보았고, 그 아이도 캄보디아어로 뭐라고 대답하는 묘한 대화를 이어가며 슈퍼마켓에 도착했다. 슈퍼마켓이라기보다는 앞에 과자니 빵 같은 것을 쌓아놓은 구멍가게 같은 곳이었지만. 십여분 정도 걸었을 테지만 더운 날씨 탓에 갈증이 나서 시원한 음료를 하나 사고, 아이들에게 초콜릿과 사탕들을 몇 개 사서 나눠주었다. 돌아오는 길엔 딸아이와 세탁소집 아이는 나란히 손을 잡고 걸었다.
그날부터 세탁소집 딸은 매일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 아이와 함께 놀았다. 아이는 문 앞에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나면 그 좋아하는 영상을 보다가도 후다닥 뛰쳐나갔다. 서로 무엇이 통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이들은 같이 뛰어다니고 서로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까르륵거렸다. “언니는 왜 신발이 있는데 맨발로 다녀?”라고 묻던 아이는 어느새 다른 아이들처럼 맨발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하루는 아이들이 어디서 플라스틱병을 가져와서 놀았다. 처음엔 플라스틱병이 하나였는데 한 아이가 쓰레기통을 열어 하나를 더 꺼냈고, 내 눈치를 슬며시 보던 딸아이도 쓰레기통 뚜껑을 열어 병을 꺼내 들고 다녔다. 아이들은 뭐가 재미있는지 옥상에 올라가 병을 떨어트리고, 내려와서 줍고, 다시 떨어트리기를 한참 반복했다. 그러다 딸아이가 병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세탁소집 작은 아들내미와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체구가 자그마한 그 남자아이는 딸아이와 동갑내기였는데 엄청난 개구쟁이였다. 항상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다 툭하면 제 엄마에게 붙들려가며 소리를 지르기 일쑤였다. 그 애는 소리 지르고 떼를 쓰다가 울기 시작했고, 그날따라 딸아이도 빈 플라스틱병을 고집스럽게 양보해주지 않았다. 그 아이의 누나가 두 아이 사이를 오가며 달래주는 듯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한참을 그러다 두 아이들은 딸아이만 남겨두고 쪼르르 집으로 가버렸다. 아이는 서운한지 눈가가 빨개졌다. "그러니까, 혼자 다 가지려고 하지 말고 같이 놀아야지." 아이가 내 품에 안겨서 훌쩍거리는데, 조금 지난 후에 다시 세탁소집 아이들이 뛰어왔다. 양손 가득 어딘가에서 플라스틱병을 넉넉히 가져와서 손에 쥐어준다. 아이는 배시시 웃으며 다시 아이들 속으로 뛰어갔다.
또 하루는 세탁소집 여자아이가 아직 털도 나지 않은 작은 아기 새 한 마리를 주워왔다. 둥지에서 꺼내 온 것인지, 떨어진 것을 주워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기 새는 아이들의 손바닥 위에 올라갈 만큼 작고 연약해 보였다. 아이는 처음엔 조금 무서워하는 것 같았는데, 그 아이들과 옹기종기 바닥에 엎드려 아기새를 구경하더니 이내 자기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쓰다듬어주기까지 했다. 아이는 몸을 잔뜩 움츠리고 손바닥 위의 새를 손가락으로 조심조심 쓰다듬었다.
나는 아기새를 괴롭히는 것이니 가지고 놀면 안 된다고 말했지만 세탁소집 아이들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미 다른 아이들과 동화된 딸아이도 온통 아기새에게 마음이 뺏겨서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엄마, 나 아기새 갖고 싶어. 내가 잘 기를 수 있어." 하며 조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이 아이의 손에서 저 아이의 손으로 옮기며 한참 구경하다가 세탁소집 여자아이가 다시 아기새를 가지고 돌아갔다.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자기가 아기새를 기르고 싶었다고... "언니가 다시 아기새를 데려다줄 거야. 우리가 기를 수는 없어." 하며 달래도 소용없었다.
마지막날까지, 아이는 세탁소집 아이들과 매일 함께 놀면서 땡볕 속을 얼굴이 벌게지도록 맨발로 뛰어다녔다. 저녁에 퇴근하고 집에 돌아올 때면 집 앞이 아이들의 깔깔대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떠나는 날 오전에도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집 앞마당에서 함께 놀았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했을 때 그 아이들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아이들은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어쩌면 영영 마지막일지 모를 그 날을 떠나보냈다.
아이가 캄보디아에 있는 한 달 반의 시간 동안 프놈펜의 왕궁이니, 씨엠립의 앙코르와트이니,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나 외국인이 운영하는 키즈카페를 데려가기도 했지만, 집 앞에서 말 안 통하는 동네 꼬마들과 어울려 놀던 때가 아이가 가장 크게 웃고 즐거워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아이가 돌아간 후에 세탁소집 아이들을 마주치면 딸 생각이 났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간식들을 한가득 사주고 왔다. 딸아이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꼬마들에게 주는 선물로는 너무나 약소하긴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