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복숭아를 가져왔다. 커다랗고 잘 익은 복숭아였다. 딸은 복숭아를 먹겠다고 벌써부터 보챘다. 나는 복숭아의 포장을 벗기고, 흐르는 수돗물에 잘 씻었다. 여섯살 아이가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멜라민 접시에 담고, 티니핑 포크를 올렸다.
"난 복숭아가 좋아!"
딸은 복숭아를 닮았다. 보들보들하고 보송보송한 두 볼을 양 손으로 잡고 쓰다듬어 본다. 딸이 아직 뱃속에 있었을 때, 입덧으로 미식거리는 속을 달래기엔 복숭아가 그만이었다.
입덧은 소위 ‘먹덧’으로 왔다. 배고프면 구역질이 올라왔고, 먹고나면 소화가 되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일하다 말고 뛰쳐나와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먹는 날이 이어졌고, 한달에 5kg씩 몸무게가 껑충껑충 뛰었다. 그건 나름대로 참을만 했다. 문제는 냄새였다. 평소에는 의식도 못하고 있던 세상의 모든 냄새들이 총공격을 해오는 것 같았다. 역한 냄새 뿐 아니라 페브리즈나 세제 냄새도 참기 힘들었다. 단 하나 안정을 주는 냄새는 커피향이었다. 시간이 날때면 사무실 근처의 드립커피 전문점에 앉아 마음껏 커피향을 맡았다. 집에서 나는 알 수 없는 잡냄새들을 없애느라 커피가루를 잔뜩 사서 곳곳에 뿌려놓기도 했다.
남편은 해외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나는 임신한 후에도 서울에서 혼자 살며 직장에 다녔다. 부모님은 충남의 작은 도시로 이사한 후였다. 어느날 잠을 자려고 누워 있다가 화장실의 하수구 냄새가 침대까지 스며든 듯 견딜 수가 없어졌다. 분명 하수구 트랩을 설치하고 구멍도 막아놓았는데도 온 집안이 하수구 속에 들어앉은 것만 같았다. "냄새나서 죽을 것 같아! 나 어떻게해.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 나는 남편에게 전화해서 이유없는 짜증을 내고, 엄마에게 전화해 울면서 하소연을 해봤지만, 그렇다고 냄새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커피가루를 아무리 뿌려대도 소용없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는데 이모에게 전화가 왔다. “너무 힘들면 지금이라도 여기 와서 있어. 괜찮아질때까지 더 지내도 되고. 응?” 그렇게 3개월을 이모의 집에서 보냈다.
이모의 집도 냄새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 냄새들을 참아야하는 고역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안정감에 방 하나를 차지하고 신세를 졌다. 다행이 그 해 이모집에서 보낸 여름은 향긋한 기억으로 남았다. 이모의 식탁에는 매일같이 복숭아가 올라왔다. 복숭아는 내가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그때 먹은 핑크빛이 도는 둥근 복숭아는 유독 맛이 좋았다. 적당히 달고 아삭한 백도는 이모가 아는 누군가가 보내준 것이라고 했다. 나는 식사 후에 복숭아를 먹고, 출근하면서도 복숭아를 챙겨 갔다. 덕분에 편의점에 가지 않아도 입덧을 잠재울 수 있었고, 불어나던 체중도 안정을 찾았다.
"너는 꼭 복숭아 같아."
"내가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 많이 먹어서?"
나는 딸이 복숭아를 먹을 때마다 그 이야기를 했다. 딸은 복숭아 조각을 오물오물거리며 웃었다. 얼마전에 빠져 비어 있는 윗니가 우스꽝스럽다. 복숭아빛 뺨이 볼록하게 부풀었다. 여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