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건져 올린 단편소설
듬성듬성 낮은 건물들 사이의 익숙한 길을 따라 H읍으로 들어섰다. 일주일에 두 번 혹은 그보다 더 많이 드나드는 곳이다. 더위는 한풀 꺾였지만 습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에 머리카락이 불쾌하게 얼굴로 달라붙었다. 터미널을 지나자 풍경이 한층 더 한적해진다. 낮게 깔린 논이 펼쳐지더니 얼마 안 가 어울리지 않게 우뚝 솟은 단출한 아파트 단지 하나가 보인다. 이곳에서 공인중개사를 만나기로 했다. 상가건물 앞에 차를 세웠다. 상가들은 대부분 비어 있었다. ”매매“라고 써붙인 종이들이 바람에 펄럭거렸다. 건물 가장 끝자리에 부동산 사무실이 하나 있었다. 어제 이곳에 왔을 때 공인중개사는 외출 중이었다. 사무실 앞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아파트 매물을 가지고 있지 않다며 다른 데 알아보라는 대답이 돌아왔었다.
어제 남편과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가게에 근무하러 올뿐, 다른 곳은 다녀본 적이 없었다. 우리가 운영하는 편의점은 이 지역의 공장 노동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원룸촌 안에 있었다. 우리가 처음 가게를 인수할 때, 이곳은 방을 구하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입지도 좋고 매출도 좋은 가게를 팔았던 전 주인은 다른 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쁘지 않아. 관리 잘하다가 팔면 되겠지. 아무것도 모르던 우리는 그렇게 전재산을 권리금으로 주고 편의점을 인수했다.
집에서 편의점까지는 차로 40분 이상 걸렸다. 남편과 나는 번갈아가며 매일 출퇴근을 했다. 매출은 점점 곤두박질쳤다. 경기가 점점 어려워지더니 원룸촌에 살던 사람들도 빠져나갔다. 설상가상으로 불법체류자 단속이 강화되면서 외국인 노동자들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주말 근무자가 말도 없이 출근을 하지 않았던 날 이후로, 주중에 일한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내가 주말 근무를 하러 나갔다.
편의점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었을 뿐이었다. 외국에서 자유롭게 일하던 남편이 코로나로 발이 묶이고, 뭐라도 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 때 온 기회라면 기회였다. 편의점은 입지가 전부라더니, 사람들이 쭉쭉 빠져나가고 공장들이 문을 닫는 데에는 당할 수가 없었다. 코로나 시기가 끝이 났지만 이젠 편의점에 발이 묶여, 하던 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권리금을 날리고 해방될 것인지, 경기가 회복되고 사람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즉,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공인중개사는 103동 앞에서 보자고 하더니 정작 보이지 않았다. 내 전화를 받고 옆의 커뮤니티 건물에서 단발머리의 하늘색 니트티를 입은 여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어제 5군데의 부동산에 들렀었다. 아파트 상가의 부동산은 전세 매물이 없다고 만나주지도 않았고, 2곳은 문이 닫혀 있었으며, 나머지 2곳에서는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결국 네이버 부동산에서 매물을 검색해서 문자를 보냈더니 답이 왔다.
몇 번의 실패 끝에, 하늘색 니트티의 공인중개사가 공동현관문을 열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다. 지은 지 5년 정도 된 아파트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살고 있는 곳과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것인데, 왜인지 더 오래된 느낌이 들었다. 공동현관문 곳곳에 녹이 슨 것이 눈에 들어왔다. 집은 세입자가 살고 있었지만, 출근한 후라 아무도 없었다. 남자 셋이 기숙사로 쓰는 집이라는 설명이 이어졌고, 가구랄 것이 없이 너저분하게 옷가지와 양말, 술병들이 뒹굴고 있었다. 바닥의 먼지와 머리카락들을 피해가며 걸었지만 발바닥이 끈적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평수는 지금 사는 곳보다 조금 넓었지만, 전세금은 더 쌌다. 혹시 다른데 더 있는지 물었지만, 여자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남편은 “나쁘지 않네.”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다시 연락 주겠다는 말을 하고 여자와 헤어져 나오면서 남편은 “나쁘지 않네.” 한번 더 말했다.
“나쁘지 않은 게 아니라, 좋은 거 같은데? 여기보다 더 나은 조건이 있어?” 나는 뚱하게 말했다. 남편은 “없지.”하고 대답했다. 곧 편의점 근무시간이었다. 아파트를 나와, 버려진 집들이 몇 채 늘어선 골목을 지나, 어제 들렀던 부동산 앞에 있는 중국집에서 짬뽕을 먹었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대학생 때 유럽여행을 한 적이 있다. 프라하쯤 왔을 때 가이드북과 지도를 잃어버렸다. 골목골목 발길 닿는 대로 여행을 하다가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공원에 다다른 적이 있었다. 규모도 작았고 산책로에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서 걷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덩그러니 놓인 그네에 앉아 흔들거리면서, 도대체 여기가 어디인지,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는지 고민하던 때가 떠올랐다. 코로나가 우리를 여기로 데려온 것일까? 아무 목적 없던 선택들이 여기로 데려온 것일까?
나는 편의점에 있는 새양말을 꺼내 갈아 신고, 포스기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