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라떼 카페라떼

by 나작


냉장고 문을 열고 우유를 꺼냈다. 월요일마다 배달 오는 1000ml 우유다. 아이를 위해 시켰지만 주로 내 카페라떼를 만드는 데 쓰인다. 냉장실에는 지난주 우유가 아직 남아 있다. 유리컵에 얼음을 넣고 막 냉장고에서 꺼낸 찬우유를 부었다. 얼음이 달그락거리며 우유 속에 자리를 잡는다. 어제 먹은 부대찌개 때문인지 얼굴이 부어있는 느낌이다. 손으로 슥슥 마른세수를 하고, 얼음과 우유가 든 컵을 커피머신 추출구 밑에 내려놓는다. 에스프레소를 뽑을 수 있는 전자동 커피머신이다. 매일 나는 이 커피머신의 전원버튼을 누르며 하루를 시작한다.


어제도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더위에 약한 남편과 아이는 에어컨을 밤새 틀어놓지 않으면 땀범벅이 된다. 나는 추워서 혼자 솜이불을 덮고 잔다. 하지만 그리 편안한 잠은 아니다. 에어컨 바람 때문에 코가 건조해지고, 나도 모르게 움츠리느라 잠에서 깨고 나면 어깨근육이 아프다. 적절한 온도에서 잠을 자고 싶다. 잠이 덜 깬 피곤한 육체에는 카페인만 한 것이 없다.


커피를 언제부터 마셨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스물세 살에 혼자 유럽여행을 할 때만 해도 커피를 못 마셨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에스프레소바를 감흥 없이 지나쳤던 것이다. 느끼한 음식들 탓에 콜라만 마셔댔다. 가끔 그 에스프레소바의 풍경을 그려본다. 지금의 나라면 분명 그 인파를 비집고 들어가 바에 한 팔을 걸치고 에스프레소마끼야또 한잔 마실텐데.


커피와 우유의 조합은 위대한 발견이다. 씁쓰름한 커피에 고소한 우유를 함께 마신 최초의 인간은 누구였을까. 따뜻하게 끓고 있는 커피와 우유를 바라보던 창의적인 누군가 떠올린 아이디어였을까, 아니면 덜렁거리는 누군가 한 컵에 잘못 부어버린 실수였을까. 어찌 되었든, 그의 발견은 21세기를 사는 어떤 평범한 사람에게 하루의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


집에서 모카포트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나는 쉬는 날 아침이 되면 원두를 한주먹 그라인더에 넣어 곱게 갈았다. 모카포트에 물을 넣고, 원두가루를 꼼꼼하게 채워 불 위에 올리고 나서는, 우유를 데우고, 거품기로 거품을 낸다. 모카포트가 끓으며 온 집안에 커피 향이 스며들 때쯤, 이제 막 추출이 끝난 에스프레소를 잔에 따르고 거품을 가득 올린 우유를 붓는다. 다소 번거롭지만 즐거운 과정이었다. 여유 있는 시간을 누리고 있다는 기쁨의 과정이었다. 모카포트와 우유피처, 거품기, 커피잔을 설거지하는 것까지도.


한 때는 커피산업과 우유산업 속 가려진 약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의미에서 끊어보려 노력한 적도 있다. 게다가 커피와 우유 모두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의학정보들도 왕왕 접했다. 특히 사피엔스를 읽은 후에는 실제로 몇 달간 우유를 마시지 않았다. 그러나 그 노력은 여전히 건재한 우유산업에 의해 무산되었다. 오트밀크나 두유를 넣어 마시던 카페라떼도 슬금슬금 다시 우유로 돌아왔다.


출산 후에 커피는 여유를 부리며 마시는 기호음료가 아닌, 생존을 위해 투입하는 필수적인 어떤것이 되었다. 모카포트니 우유거품이니 번거로운 용품들은 어딘가로 치워져 빛을 잃어갔다. 건조기나 식기세척기보다 전자동 커피머신을 먼저 들였다. 버튼 하나를 누르면 주르륵 커피가, 특히 카페라떼가 만들어져 나오는 커피머신을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모른다. 매일 부은 얼굴로 욱신거리는 어깨를 주무르며 커피머신 앞에 서는 것은 이제 생존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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