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기억의 전말

by 나작


최초의 기억은 심리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보통 8세 이전에 경험한 사건을 기억하는 것으로, 심리학에서는 ‘초기 기억’이라고 부른다. 이 초기기억은 현재의 생활양식, 인간관계, 신념, 행동목표 등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기억은 4살 무렵인 것 같다. 그 전후 시기의 기억들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단편적이고 시기가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매우 뚜렷이 기억하고 있는 사건이 하나 있다. 사건의 전후관계와 당시 내가 했던 생각, 사람들이 했던 말들을 거의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나는 친구 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 집 앞은 울퉁불퉁한 흙길이었고, 맞은편에는 지대가 낮은 인삼밭이 있었다. 놀고 싶으면 친구 집 대문에 대고 “00아 놀자~”하고 부르던 시절이었다. 그날 문은 닫혀 있었고, 집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대문을 바라보고 앉아서 언제 올지 모를 친구를 기다렸다. 까끌까끌하고 얇은 소재로 된, 빨간색에 자잘한 흰색 물방울무늬가 박힌 플레어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치마다. 내가 가진 유일한 여름치마였던 것 같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 치마를 입겠다고 고집을 부리곤 했다. 빨랫줄에 걸린 축축한 치마를 입겠다고 조르다가 엄마에게 호되게 혼난 것도 그 해 여름 어느 날이었을 거다.


친구네 집은 우리 집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외양간과 두엄이 있는 뒷문으로 나오면, 한쪽에는 돌담이 이어지고, 한쪽에는 커다란 호두나무가 자라는 수풀로 둘러진, 구부러진 골목길이 있었다. 길을 따라 돌아 내려가면 그 집 대문이 있었다. 한 살 어린 그 집 딸과 나는 매일 붙어 다녔다. 집 근처에서 소꿉놀이를 하거나 동네 언니 오빠들을 따라 다녔다. 한참 기다렸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고, 나는 마른 흙과 돌멩이들을 만지작거리며 공상에 빠져 있었다. 그때 호두나무 수풀 모퉁이 너머로 털털털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경운기 한 대가 위태롭게 내려오고 있었다. 경운기에 탄 사람은 얼굴이 익숙한 동네 삼촌이었다. 그는 나를 향해 손을 옆으로 휙휙 내저으며 비키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그냥 지나가면 될 것 같은데, 왜 비키라고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인삼밭으로 굴러 떨어졌다.


치마가 찢어졌다. 나는 동네 삼촌의 두 팔에 안겨 있었고, 내가 나온 뒷문을 지나, 마당을 가로질러 툇마루에 앉아있는 엄마와 할머니를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무언가 급박하게 진행되더니, 나는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있었다. 엄마가 다른 어른들한테 괜찮다고, 별로 안 다쳤다고 전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날 사고의 기억은 거기까지다.


사라진 기억은 인삼밭으로 굴러 떨어지던 순간이다. 놀라서 비켜서려다 밭으로 떨어진 것인지, 경운기에 부딪혀서 떨어진 건지 모른다. 별로 다치지 않고 팔과 다리에 상처가 좀 났을 뿐이었으니 부딪히진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왜 경운기를 멈추지 않았을까? 경운기라는 수단이 본래 그리 빠른 속도를 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너무 놀라서 경황이 없었던 걸까.


어린 시절의 에피소드 정도로 가끔 가족사이에서 회자되던 그날의 사고는, 내가 성인이 된 후에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다. 운전이 무서웠던 것이다. 모든 차들이 나를 향해 돌진하는 듯했고, 좁은 길을 지날 때는 조그만 경차를 타고 있으면서도 부딪힐까 봐 극도로 긴장했다. 나는 거리감각이 없다고 믿었고, 평생 운전을 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삼십 대가 되어 어쩔 수 없이 면허를 땄지만, 그러고도 마흔이 넘어서야 운전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 후 운전한 햇수가 쌓여가도 초보운전자의 마음에서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다. 나는 늘 내 판단에 확신이 없었다. 차들 사이를 달리거나 끼어들어야 할 때, 그날 괜찮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던 어린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 첫 기억은 어쩌면 내 삶의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그날의 사고를 내가 그토록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건 몰랐다. 언젠가 경운기가 비켜갈 줄 알고 가만히 있었던 것이라고 말해주니 깜짝 놀랐다. “그런데 좀 이상해. 날 봤으면 비키라고 할 게 아니라 경운기를 세우면 되잖아.” “그게 아니라, 그 사람이 그날 경운기 처음 끌고 나간 날이었어!” 그랬구나! 엄마의 증언(?) 덕분에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 나를 향해 애처롭게 손짓하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아직 스무 살을 갓 넘긴 청년이었던 그는 얼마나 놀랐을까. 멍하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비켜갈 거라고 생각한 4살의 아이는 그 후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본인의 거리감각을 탓하며 운전대를 잡고 여전히 긴장하는데, 그는 어땠을까. 엄마 말로는, 그 아저씨는 몇 년 전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며칠 전, 우연히 네 살 무렵의 아이들은 아직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는 때라, 차가 다가오더라도 상대가 비켜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는 글을 읽었다. 잠깐, 그럼 내 거리감각에 대한 믿음은 어떻게 된 것일까? 게다가 생각해 보면, 그때 내 판단은 맞았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부딪혀서 다치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첫 기억 너머의 사정들을 비로소 알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나의 두려움에 아무 영향을 미칠 수 없을 거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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