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을 했다. 집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스터디카페가 있었다. 집중이 잘 안 될 때는 가방을 챙겨서 스터디카페로 갔다. 학창 시절에 다녔던 독서실보다는 널찍하고 밝다. 옛 독서실은 공기가 탁하고 어둑어둑했다. 교복을 입은 나는 다른 수험생들 사이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숨죽여 책장을 넘기다가 잠깐 엎드린 사이에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 있곤 했다. 그때도 답답한 독서실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넓은 책상이 있는 도서관 열람실에서 공부하는 걸 선호했다. 그렇다고 도서관에서 늘 공부한 것은 아니었다. 도서관은 매일 자리경쟁이 치열했고, 이용시간이 제한되어 있었다. 집에서는 언제나 틀어놓은 TV소리와 동생들의 소음, 그리고 한없이 눕고 싶어 지는 침대의 존재가 방해가 됐다. 성인이 된 후에는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났는데, 나도 카페의 분위기는 좋아했지만 공부를 하기에는 불편함이 많았다. 눈치도 보이거니와, 짐을 그대로 두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방송대에 등록한 후 첫 시험기간에 스터디카페 회원권 등록을 했다. 입구에는 커피머신과 냉온수기, 간단한 간식거리가 비치되어 있었다. 냉장고에서는 무료음료를 꺼내먹을 수 있었고, 개인 음료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책상은 충분히 널찍했고, 파티션은 개방적이었다. 조명은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고, 자리마다 적당한 거리가 있어서 바로 옆자리에 사람이 있어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이런 공간이 내 어릴 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올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스터디카페는 책을 읽고, 글을 끄적이기에도 딱 좋았다.
딸의 하원시간이 가까워져 나는 다시 가방을 챙겼다. 오늘 끝내려고 한 것을 아무것도 끝내지 못했다. 그러나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다 써버렸다. 밖으로 나오니 시원한 공기에 익숙해져 있던 몸에 후덥지근한 습기가 덮쳐왔다. 걷기 시작한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뜨거운 햇살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나는 그늘을 찾아 걸음을 재촉했다. 초등학교 옆길로 접어들면 양옆에 늘어선 벚나무들 덕분에 조금은 햇빛이 가려진다. 한 동네 사는 엄마들끼리 모여있는 단톡방에는 오늘도 얼마나 더운지 한 마디씩 올라왔다. 엄마들은 매일 날씨가 어떤지 공유했다. “비 많이 온다. 등원할 때 우산 챙겨~”라거나 “오늘 너무 뜨거워.” “바람 너무 많이 분다. 애들 날아가겠어.”같은 식이다. 몇 분 더 걸으니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정도 뜨거운 열기는 익숙했다. 라오스와 캄보디아에서 살았던 세월이 얼만데. 그러나 이 뜨거움 속에서 10분을 걷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나무 그늘이 늘어진 길에 들어서자 갑자기 짜아아하고 매미가 일제히 울어댔다. 풀벌레인지 새인지 모를 표로롱 찌르릉 거리는 소리들도 매미소리에 섞여 귓속에 꽉 들어찼다. 나무를 올려다보다가 하늘에 눈길이 머물렀다. 커다랗고 새하얀 뭉게구름이 새파란 하늘에 환하게 떠 있었다. 하늘이다. 그곳에서도 가끔 하늘을 올려다봤었다. “하늘은 참 예뻐.” 그렇게 말하곤 했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이라는 말은 생략했다. 그때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 시절을 생각하면 아쉽기만 하다. 그때는 이 멀고 험한 곳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과 회의가 들 때마다 하늘을 올려 보면 조금 위안이 됐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평온함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곧 잊어버렸다. 그곳의 하늘은 현재의 우울, 미래의 근심을 잠시라도 느낄세라 한없이 밝은 빛을 퍼부어댔다. 한국의 여름 하늘이 그곳과 닮아간다.
어린이집에 도착해서, 아이의 손을 잡고 나왔다. 아이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라며 편의점으로 손을 끌었다. “안돼”라는 내 대답에 시무룩해진 아이가 손을 놓았다. “집에 가서 해파리 만들자” 오늘 어린이집 숙제인 해파리 만들기를 같이 하기로 약속했었다. “좋아!” 금세 기분 좋아진 딸이 씩씩하게 먼저 걸음을 내디뎠다. 키가 커서 어린이집 가방이 짤뚱해 보인다. 그래도 걸어가는 모습은 영락없는 여섯 살이다. 앞서가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이름을 불렀다. 아이가 돌아본다. “아이스크림 먹자.” 아이가 해처럼 밝게 뛰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