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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Jan 08. 2024

터무니없는 꿈




오래전부터 당뇨를 앓고 있던 언니의 병세가 얼마 전부터 많이 악화되었다. 작년에 발가락 두 개 끝을 잘라내고 이제 그보다 더 한 일은 없으려니 했는데, 난데없이 찾아온 패혈증과 콩팥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져서 중환자실을 수시로 드나들더니 급기야 혈액 투석까지 해야 했다. 

주변에서 혈액 투석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가만히 누워서 막연히 피를 거르는 과정이려니 했는데, 목에 구멍을 뚫고 네 시간 동안 꼼짝 않고 누워있어야 했던 언니는 그 과정이 마치 맨 정신으로 지옥에 다녀온 것 같다고 했다. 







뉴스에서 멀어져서 무감각해졌지만 아직도 병원은 코로나로 면회가 제한적이고 더구나 중환자실은 면회하기가 더 어려워서 형부만 잠깐 허락받는 정도이다. 온갖 줄을 몸에 달고 맨 정신으로 누워 있었을 언니를 생각하면 굳이 투석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곳이 생지옥이 분명할 것이다. 

그러다 패혈증도 어느 정도 치료가 되고 투석을 두 차례 마친 후에 경과가 좋아져서 언니는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그로부터 간간이 전화 통화도 할 수 있고, 그럴 때마다 목소리가 조금씩 밝아지고 생기가 도는 것 같아서 듣는 사람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중환자실에 있다가 일반 병실로만 와도 살 것 같다. 너무 좋다"
"이제 조금 더 나아지면 퇴원할 수 있을 거야"

나지막하지만 생기가 도는 언니의 말이 가슴을 묵직하게 때렸다. 아무리 일반 병실이라도 단 하루도 있기 싫은 곳이 병원이다. 오래전에, 일주일 넘게 입원해 있는 동안 창밖을 통해 바라보던 세상은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것 같았고, 투명한 유리창마저 단단해서 과연 내가 저 밖을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언니는 그 일반 병실마저 살 것 같다고 좋아했다. 중환자실을 경험한 데서 느낀 비교 행복일 수도 있고, 극한의 고통을 경험한 후 그보다 덜 한 것은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터무니없이 소박한 낮은 마음에서 일 것이다. 

잠시도 있고 싶지 않은 병실이 언니에게는 그래도 살 것 같은 곳이라는 말이 오랫동안 내 안에 진동을 울리며 남아 있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이, 더 멀리 뛰려고 했던 내게 언니의 일반 병실 같은 그 터무니없는 소박한 꿈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어쩌면 내가 과한 욕심을 내지 않고,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뿌리 같은 것일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날은 그것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아예 없는 것처럼 살기도 했다. 누구나 내게 불행과 고통이 닥치지 않고 살기를 바라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언제나 우리는 행복과 불행이 담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하늘 높이 치솟을 때 더 높이 오르지 못해 안타까워하기보다는 그 자리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들에 감사하고, 아래로 곤두박질쳐서 박힐 것 같은 아찔한 하강에 그보다 더 바닥으로 내려가지 않은 것에 고마워할 일이다. 그러기 위해 내 삶을 겸손하게 대하고 받쳐 줄 터무니없는 나의 소박한 꿈은 무엇일까? 








일반 병실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낮은 마음을 굳이 중환자실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기꺼운 마음으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천지도 모르고 기고만장 해지려고 했던 나의 치기가 일반 병실에서도 설레고 희망을 품었던 언니의 터무니없는 행복이 내게 겸손하라고 일러주는 것 같다.








언니는 내게 일반 병실 같은 겸허한 마음을 가르쳐 주고 병세가 악화되어 다시 중환자실로 갔다. 그곳에서 또다시 생지옥을 느끼며 일반 병실로 옮겨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병마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 많은 분들의 터무니없이 작고 소박한 꿈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너무 키가 낮아서 보지 못했던 작은 풀꽃 같은 행복을 더듬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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