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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Jun 26. 2024

영업 비밀 2(갖추지 못한 1번)




나의 치명적인 약점 중의 하나는 피부였다. 20대 초반부터 소화 불량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체하기 일쑤였고 한 번 체하면 체기가 한 달 이상 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얼굴색이 맑지 못했고 뾰루지가 자주 나서 오래갔다. 40대 중반을 넘어서자 점차 위장도 나아지고 피부 관리를 받으면서 얼굴 톤이 조금씩 살아났다. 그래서 피부가 좋아진다는 광고에는 언제나 귀가 솔깃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고가의 화장품을 접하게 되었다. 헉! 소리가 날 만큼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지만 자랑하는 대로 효과가 있다면 한 번 써 볼만했다. 평달에는 허리가 휘어서 도저히 살 수 없고 보너스가 나오는 달에 맞추어 겨우 사곤 했다. 




© sumnerm, 출처 Unsplash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거금을 들여 화장품을 써 보았는데 한 달, 두 달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눈에 띄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그 화장품으로 정착을 했다. 불편한 점이 있다면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판매하는 제품이 아니라 반드시 직원을 통해 구입하는 것이었는데, 용케도 떨어질 만하면 연락이 왔고 구매가 이어지면서 몇 년째 사용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작년 8월부터 갑자기 얼굴에 작은 붉은 반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곧 없어지겠지 했는데 크기가 조금 줄었다 커졌다 하면서 그 부위가 따갑지까지 했다. 며칠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아 하는 수 없이 피부과를 찾았다. 의사는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며 연고를 처방해 주었지만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 etiennegirardet, 출처 Unsplash




작은 반점으로 시작한 것이 어느새 점점 커지더니 얼굴 전체로 번져갔다. 주사와 약을 먹으면 하루, 이틀 정도 괜찮나 싶더니 이내 마찬가지로 성을 냈다. 다른 피부과를 찾았지만 의사는 알레르기라며 항히스타민제를 처방해 주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따가워서 기존에 바르던 화장품은 아무것도 바를 수가 없었다.

민감한 피부에 용하다는 제품을 검색해서 온갖 화장품을 다 써보았지만 맞지 않았다. 그러다가 피부과에서 판매하는 민감성 화장품을 써보았는데 그건 별 자극이 없어서 오로지 그것만 바를 수 있었다. 몇 년 동안 사용해 오던 화장품은 갑자기 쓸 수 없고 쟁여 놓은 비싼 화장품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 vismaykrishna, 출처 Unsplash




그래도 언젠가는 낫겠지 하는 마음이었지만 기약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대책 없이  올라오는 붉은 반점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이런 나의 속 사정과는 아무 상관없이 화장품 판매 직원으로부터 수시로 행사 문자가 왔다. 

한두 번은 의례적으로 보내는 것이려니 했는데 횟수가 빈번해져서 답장을 보냈다. 

"작년 8월부터 얼굴에 트러블이 생겨서 지금은 민감성 화장품 외에는 다른 걸 바를 수가 없습니다. 전에 사놓은 제품도 아직 많이 남아 있고 해서 당분간 제품을 구입할 수 없겠네요. 얼굴이 나아지면 다시 연락할게요"





© translytranslations, 출처 Unsplash




일괄적으로 보내는 문자 메시지이겠지만 개별적으로 연락하는 수고로움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려줘야 서로 편할 것 같았다. 딱히 답을 원하고 보낸 것이 아니기에 답장은 없었지만 내 상황을 충분히 알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며칠 후에 또 판매 안내 문자가 왔다. 황당했다. 제품 주문 문자를 보내면 전송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재깍 연락을 해서 카드 결제를 하던 사람이 이번에 내가 보낸 문자는 어떻게 받아들인 것일까? 몇 년 동안 이어진 관계는 그저 물건을 사고파는 철저한 상 거래일 뿐이었다. 





© timmossholder, 출처 Unsplash




판매 실적을 채워야 한다며 도와 달라는 딱한 소리를 할 때 오죽 답답하면 그럴까 싶어, 화장품 재고가 여유 있게 남아 있었지만 어차피 바를 화장품인데 미리 사준 것도 그녀의 입장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 내가 그 화장품을 바를 수 없을 뿐 아니라, 피부 트러블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고객이 해당 제품을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한다면 최소한 그 이유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것이 판매자의 자세일 것 같은데 그녀는 그것과는 아주 멀어 보였다. 그녀의 번호를 수신 거부했다. 





© thewildflowerpress, 출처 Unsplash




"사모님, 이번에 제품 행사가 있는데 전화 연결이 안 되네요. 통화할 수 있을까요?"

전화 연결이 안 되자 문자가 계속 왔다. 다행히 또 다른 병원에서 처방해 준 연고를 바르고 나서 차츰 회복이 되어 9개월 동안 엄청나게 시달렸던 고생에서 벗어나 거의 예전 상태로 돌아왔다. 여전히 조심스러워서 병원 화장품과 기존에 쓰던 화장품을 병행해서 쓰고 있다. 

얼굴은 되돌아왔지만 다시 그녀와 이어지고 싶지는 않다. 몇 년 동안 이어진 거래와 관계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아직도 행사 안내 메시지가 오고 있다. 그녀가 갖추진 못한 중요한 하나를 스스로 잘 찾을 수 있을지 문자를 받을 때마다 자꾸 나를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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