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앞두고 요즘은 매일 조금씩 짐 정리를 하고 있다. 그동안 전혀 손이 가지 않았던 보퉁이를 열어보며 이런 것도 있었나? 할 때가 있다. 일일이 손으로 꿰매어 만든 퀼트 소품들, 크고 작은 테이블보와 색색의 조각보들...... 빼곡히 들어 있는 것들을 들추어내며 '참 많이도 만들었다'라는 생각을 했다.
짐 정리를 할 때마다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내가 직접 손으로 만든 것들을 정리해야 할 때다. 나의 정성이 담긴 것들이니 쓰레기 버리듯 선뜻 내버리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들었다 놓았다, 다시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기 일쑤였다.
그중에 그림도 한몫을 한다. 어반 스케치를 배우기 시작해서 그린 그림들이 어느새 한 바구니가 가득 찼다. 제법 묵직해서 선뜻 들지 못할 정도이다. 잘 그리든 못 그리든 나의 과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림들이다. 당연히 가지고 갈 것으로 분류를 하였지만 생각난 김에 한 번 보기로 했다.
막 시작해서 그린 단순하고 서툰 그림에서 시간이 갈수록 제법 세련되어 보이는 것들, 혼자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며 그렸던 그림, 힘의 강약이 더 표현되어야겠다고 느껴지는 것들...... 시간은 지났지만 내가 지나온 이력이 그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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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저 내가 그린 그림을 보려는 의도였으나,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고치고 개선해야 할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선별해서 고르다 보니 남은 그림보다 버려야 할 그림이 더 많다. 가득 찼던 바구니에서 2/3를 덜어냈다.
그러면서 이 바구니만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버리면서 배우고, 깨닫고 나서 버리다 보면 내가 가지는 것은 이 정도의 바구니 하나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모자란 부분이 커다랗게 다가왔다. 갑자기 붓을 들고 싶은 충동도 강하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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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릴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내가 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버릴 자신이 있는 것도 어쩌면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추억이든, 그림이든, 나 자신이든,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것이야말로 당당한 자존감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오늘 나는 한 무더기 그림을 버리면서 한층 웃자란 나를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