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카 라인은 마추픽추 다음으로 페루를 찾은 이유다. 수 천 년 동안 미스터리하게 이어져 내려온 거대한 대지의 그림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나스카는 이카에서 버스를 타고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출발 전 날, 이카 시내에 있는 여행사 몇 곳을 둘러보고 차우치야 묘지를 함께 갈 수 있는 곳으로 선택해서 예약을 했다.
일찌감치 아침을 챙겨 먹고 호텔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차창 밖으로 보이는 이색적인 풍경은 두 시간이 넘는 동안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도시 간의 이동도 내게는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창 밖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시간에 이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동안 티켓을 몇 번씩이나 확인하는 것이 특이했다. 몰래 타는 사람이 있어서 그러는지 알 수는 없지만 버스표 검표 때문에 몇 번이나 차는 멈추어야 했다.
미리 투어 예약을 하고 갔더니 가이드가 나와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나스카 라인 투어 후에 나스카 일대를 둘러보기로 했다.
비행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다. 조종사를 제외하고 6명이 탈 수 있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라 배가 고팠지만 비행 중에 멀미를 할 수 있다고 해서 허기를 참고 그냥 타기로 했다.
양쪽으로 나누어 앉은 관광객을 위해 경비행기는 한 번은 왼쪽, 한 번은 오른쪽으로 춤을 추듯 방향을 급 회전을 한다. 조종사가 그림이 보이는 상공에 도착하면 어디쯤, 어떤 그림이 있다고 방송으로 알려준다. 연신 카메라로 찍어대기에 정신이 없다.
이야기로만 듣던 나스카 라인! 실제로 눈 아래 펼쳐진 그림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설명을 들으면서도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눈으로는 얼른 그림을 찾아내야 한다. 누가 저렇듯 선명하고 반듯하게 그림을 그렸는지 보면서도 연신 믿기지 않는다.
오랜 세월 동안 나스카 라인이 저렇게 지워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는 데는 날씨 때문이라고 한다. 일 년에 한두 번, 겨우 비가 온다고 한다. 그조차 슬쩍 지나가는 보슬비 정도라서 건조한 날씨에 그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한다.
점심을 먹지 않고 탔는데도 비행 막바지에는 생전 멀미라고는 몰랐던 나도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앞에 앉은 여자 외국인은 멀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 와중에도 그림이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토사물을 쏟아낸 봉지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열정에 가히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비행기가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멀미 봉지도 눈 앞에서 좌우로흔들린다. 그걸 뒤에서 보는 순간, 겨우 참고 있는 내 속도 뒤집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점심을 먹지 않고 타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마지막에는 최면을 걸듯 일부러 다른 생각을 하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울렁거리는 속에 생각이 미치면 금방이라도 사고를 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불편한 속과 씨름하며, 눈 앞에 펼쳐지는 그림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마지막 몇 분은 거의 사투에 가까웠다. 마침내 비행기가 착륙을 하고 땅에 발을 내디뎠다. 비행기에서 내리고도 한참 동안 속이 울렁거려 휴게실에 앉아 속을 달래야 했다.
속이 조금 진정되어 가이드와 함께 나스카 일대를 둘러보았다. 비는 언제쯤 내렸는지 주변은 모두 바싹 말라있어 걸을 때마다 미끄러지고 서걱거리는 흙먼지가 풀풀 날린다.
나스카 라인 외에도 곳곳에 유적지가 있고, 가이드가 꼼꼼하게 설명을 해준다. 이 직업을 위해 그녀는 6개월 동안 혼자 영어 공부를 해서 가이드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열정이 나스카의 햇빛만큼이나 뜨겁다. 수 년동안 영어를 공부하고도 입도 잘 떼지 못하는 우리들에 비해 그녀의 절박한 생계형 영어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 것 같다.
그녀는 나스카의 강한 햇빛 때문에 검게 그을린 피부가 싫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래서 더매력이 있다. 성격이 활달해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이렇게 찍자며 포즈까지 제안한다.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같은 역사를 듣다 보니 뙤약볕도 더운 줄 모르고 신나게 따라다녔다.
투어를 마치고 그녀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나스카는 매우 조용하다. 성수기가 아니어서 도로에 사람도 없고 카페도 한산해서 식사를 하며 여유롭게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녀는 경력을 쌓으면 좀 더 큰 도시로 나가 가이드를 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진한 나스카 라인처럼 선명한 그녀의 꿈이 언젠가 어느 큰 도시에서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