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2)
뜨거운 사막이 건네는 말

와카치나 사막에서

by 파란 해밀


2017. 05. 06 페루 와카치나



와카치나 사막투어를 위해 호텔 숙소에서 편하게 버기카 투어 신청을 했다. 버기카가 오는 동안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호기롭게 여유를 부리며 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남들도 다 하는 데 뭐 대수랴 싶었다.



어릴 적 바닷가에서 두꺼비집을 지어 본 이후 이렇게 큰 모래밭은 처음이다. 눈 앞에 빤히 보이는 바닷가 백사장이 아닌 사막을 본 것도 처음이다.



와카치나는 사막을 난생처음 본 촌년의 눈을 뒤집어 놓았다. 도착하자마자 가타부다 아무 말도 않고 버기카는 사막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모래 구릉에서 춤을 추듯 오르내리는 버기카에서 천지도 모르고 좋아라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난데없이 높은 곳에서 차를 세우고는 이렇게 타라며 폼을 몇 번 알려주더니 보드 바닥에 초 칠을 하고는 타고 내려가라고 한다. 혼자 돌아가는 길도 없다. 가라면 그냥 내려가야 한다.



순간, 머릿속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이 오갔는지 모른다.


'안 탄다고 해야 되나?'
'그냥 차에 있겠다고 해야 되나?'
'그냥 한 번 타 볼까?'


그러는 동안 같이 차를 타고 온 젊은 외국인 세 명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즐거운 함성과 함께 줄줄이 타고 내려간다.



하는 수 없이 얼떨결에 나도 내려갔다. 소리를 지르면 그 바람에 더 무서울 것 같아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순식간에 쏟아지듯 내려간다.



한 번, 두 번, 타다 보니 제법 익숙해져 갔다. 그러면 버기카는 어김없이 더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


말이 안 통하니 욕도 못하겠고, 높은 만큼 나는 또 그 무거운 보드를 데리고 자꾸만 미끄러지는 경사진 모래를 걸어 올라가야 한다.



이 짓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중에는 올라갈 힘이 없어 정말 포기해야겠다 싶어 안 하겠다고 버기카 기사에게 손사래를 쳤더니 이 번이 마지막이라며 남은 용을 다 쓰게 한다.



온신의 힘을 탈탈 털렸다. 이런 줄 알았다면 탔을까 싶었는데, 녹초가 되어 바라본 하늘 끝에는 어느새 석양이 내려앉고 있었다.



다 털리고 아무 힘도 없는 빈 몸은 오히려 깃털처럼 가볍다. 아무 생각 없이 한동안 사막에 널브러진 채 드러누워 있었다.



모래사장에 두꺼비집을 짓던 어린아이로 잠시 돌아가 두꺼비집 대신 내려앉는 와카치나의 석양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매일 같이 허겁지겁 시간에 쫓기고 사느라 잊고 살았던 노을을 페루에 와서야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루를 뜨겁게 살았던 저 태양도 자연에 순응하며 자신을 내려놓는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사막에서 자유로운 맨발이 되어보았다. 멍에를 내려놓은 느낌이 이런 걸까? 무언가 나를 무겁게 누르고 있는 모든 것을 벗은 것 같다.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의 촉감이 부드럽다.



와카치나 사막에 고단한 석양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다.



하루 종일 제 몸을 내어준 사막의 상처가 선연하다.



거대한 모래섬 뒤로 내려앉는 태양이 나에게 묻는다.
"너도 나처럼 뜨겁게 살았느냐?"



대답 대신
"너의 물음을 잊지 않을게......"

라고 혼자 되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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