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쿠스코의 바람

by 파란 해밀


2017. 05. 01. 쿠스코의 바람


BandPhoto_2020_12_04_14_51_45.jpg


마추픽추에서 내려와 갈 때와 마찬가지로 오얀따이땀보까지 열차를 타고 왔다. 오얀따이땀보 역을 나와 쿠스코로 가는 콜렉티보가 출발하기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승객이 다 차야 출발하는데 우리가 첫 손님이라 40분가량을 더 기다리고 승객을 꽉꽉 다 채우고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쿠스코에서 마음 졸이며 단 둘이 택시를 타고 왔던 때와는 달리 자리가 조금 불편하기는해도 여러 사람이 함께
타고 있어 마음은 아주 편안하게 왔다.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방은 어두컴컴하고 가게 불빛만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BandPhoto_2020_12_04_14_54_23.jpg
BandPhoto_2020_12_04_14_51_50.jpg


숙소 위치를 검색해보니 광장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인데 마추픽추를 가느라 아침 일찍부터 길을 타선 터라 빨리 숙소에 가서 쉬고 싶어 아무 택시나 잡고 가격을 물었다. 얼마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해도 기사가 부르는 값은 거리 대비 턱없이 비싼 가격 같았다.


하는 수없이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어가기로 했다. 복잡한 골목 사이로 빠져나가 교통경찰에게 물어가며 겨우 숙소를 찾았다. 막상 찾고보니 아르마스 광장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인데 워낙 골목이 많다 보니 그 주변에서 맴돌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택시비를 알아보니 기사는 제값의 세 배를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아주 당당하고 호쾌한 목소리로 세 배의 값을 부른 기사의 깜찍함(?)에 혼자 빙긋 웃었다. 뭘 해도 제 식구 굶기지는 않겠다며......


BandPhoto_2020_12_04_14_52_11.jpg
BandPhoto_2020_12_04_14_52_08.jpg


다음 날, 피곤해서 늘어지게 잠을 자려고 해도 눈꺼풀이 가만히 붙어 있질 않는다. 조식을 먹으러 나가니 2~3팀 정도가 아침을 먹고 있다. 그중에 한 팀은 한국에서 온 젊은 사람들이었는데 1주일 일정으로 페루에 여행을 왔다고 한다. 가히 젊으니까 가능한 일이다.


식당에서 사과 한 알을 간식으로 챙겨들고 광장으로 나섰다. 근처에 있는 여행사에 들러 쿠스코 근교 투어를 예약하고 발 닿는 대로 걸었다. 쿠스코는 도시 자체가 여행객들에게 하나의 거대한 놀이동산 같다. 아르마스 광장을 시작으로 어느 골목으로 나가든지 볼거리가 많다.


BandPhoto_2020_12_04_14_55_20.jpg
BandPhoto_2020_12_04_14_55_24.jpg


한참을 가다 보니 제법 규모가 있는 재래시장이 나온다. 어딜 가나 시장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각양각색의 상품도 많고 먹거리도 다양하다. 시장이 꽤 커서 구경하는 데만도 제법 시간이 걸린다. 전혀 알아듣지는 못해도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소리가 사람 사는 세상 같다.


BandPhoto_2020_12_04_15_04_15.jpg
BandPhoto_2020_12_04_15_04_32.jpg


무슨 축제기간인지 시장 근처 작은 광장의 푸드코트에 눈에 번쩍 띄는 먹거리가 있다. 푸노에서 우연히 사 먹어보고 맛이 있어서 보일 때마다 사 먹곤 했는데, 나한테는 페루의 감자와 쌍벽을 이루는 매력 적인 간식이다.

아쉬운 것은 기름에 튀긴 것이라 두 개 이상 먹으면 속이 불편하다. 한 개는 아쉽고, 두 개는 유혹이지만 절대 그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가격도 저렴하고 입에 착 달라붙는 맛이 누구나 다 좋아할 맛이다.


BandPhoto_2020_12_04_14_55_37.jpg
BandPhoto_2020_12_04_14_52_21.jpg


쿠스코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늦은 오전까지도 감자를 판다. 오얀따이땀보에서는 딱 한 군데만 팔아서 아쉬웠는데 여기서는 감자 파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욕심이 생겨서 곱으로 시켰더니 아쉬움이 덜 해서 그런지 오얀따이땀보의 맛보다 떨어지는 것 같다.

감자 안에 심도 많고, 질척한 감자도 있어서 먹다보니 실망이다. 배도 부르고 감자도 남았길래 노숙(?) 하고 있는 멍멍이에게 조금 떼어 주었더니 취급 품목이 아닌지 녀석은 감자를 입에도 대지 않는다.


BandPhoto_2020_12_04_14_54_44.jpg
BandPhoto_2020_12_04_15_02_34.jpg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팔방 뻗은 길은 어느 쪽으로 가든지 상관없다. 12각 돌이 있는 골목, 전시관, 미술관, 완벽하지는 않아도 한국을 떠나 처음으로 김치찌개 냄새를 맡았던 한인식당, 페루 특산물을 파는 각종 기념품 가게 등 먹거리, 볼거리가 많아 골목골목을 돌다 보면 쿠스코가 왜 리마보다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더 많은지 절로 실감하게 된다.


BandPhoto_2020_12_04_14_54_49.jpg
BandPhoto_2020_12_04_14_55_03.jpg
BandPhoto_2020_12_04_14_55_00.jpg
BandPhoto_2020_12_04_14_53_52.jpg


거리 곳곳은 어딜 가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다가 궁금하면 조금 기웃거려 보고, 더 궁금하면 들어가서 구경하고, 가다, 서다, 보다를 반복하다 보면 온통 정신이 팔려 배고픈 줄도,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같이 간 동기도 그렇고, 둘 다 먹는 걸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저녁으로 닭꼬치 하나로 때우고, 배고프지 않으면 굶고, 피곤하면 대충 건너뛰면서 시간만 나면 종일 싸돌아다닌 덕에 3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체중이 3kg이 줄었다. 그 후로도 해외여행만 나갔다 오면 체중이 줄어드니 다이어트에는 여행이 특효인 것 같다.


BandPhoto_2020_12_04_15_04_09.jpg


쿠스코에 머무는 중 하루는 아르마스 광장에 특이한 복장을 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특별한 행사가 있는 것 같은데 참가자한테 물어서 아무리 번역기를 돌려도 무슨 행사인지 알 수가 없다.

형형색색으로 차려입은 사람들의 멋진 퍼레이드를 기대하며 한참을 기다렸지만 행사에 참가한 어르신들(?)의 축사가 끝없이 이어지는 바람에 결국 인내심의 한도를 초과했다.


BandPhoto_2020_12_04_15_03_34.jpg
BandPhoto_2020_12_04_15_03_30.jpg
BandPhoto_2020_12_04_15_03_50.jpg
BandPhoto_2020_12_04_15_03_42.jpg


한국에는 주례사도 줄어들고 주례 없이 하는 결혼이 다반사인데 페루는 줄지어 이어지는 귀빈들의 축사에 퍼레이드 참가자들은 늘어질 대로 늘어지고, 구경하러 나선 사람들도 지쳐 떨어졌다. 아침 운동장 조회에서 길고 긴 교장선생님 말씀에 온몸이 뒤틀리던 초등학교 시절로 성큼 되돌아간 것 같다.


BandPhoto_2020_12_04_15_04_13.jpg
BandPhoto_2020_12_04_15_03_53.jpg
BandPhoto_2020_12_04_15_05_45.jpg


멋진 퍼레이드 구경은 애저녁에 물건너 간 것 같고 대신 참가자들 주변에서 그들과 짬짬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직 앳돼 보이는 소녀들의 표정이 쿠스코의 파란 하늘만큼이나 맑고 경쾌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연신 까르륵까르륵 하는 웃음소리가 아르마스 광장으로 퍼져 나간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던가 싶다.


BandPhoto_2020_12_04_15_01_24.jpg
BandPhoto_2020_12_04_15_01_19.jpg
BandPhoto_2020_12_04_14_53_01.jpg


광장에서 조금 벗어나 미술관에 들렀다. 생각 외로 방문객이 많지 않아 느긋하게 둘러보기 좋다. 다양한 그림과 사진, 조형물들이 있다.


BandPhoto_2020_12_04_15_01_29.jpg
BandPhoto_2020_12_04_15_01_33.jpg
BandPhoto_2020_12_04_15_01_37.jpg


그 어느 그림보다 이 사진 석 점에 마음이 많이 간다. 일부러 작정하고 연출을 했을까마는 색의 조화나 분위기가 묘하게 사람을 붙들어 맨다. 한동안 이들 앞에 머물다가 나왔다.


BandPhoto_2020_12_04_14_54_27.jpg


쿠스코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풍경이다.


"후우~~~~"
하고 살짝만 불어도 집채만 한 구름이 못이긴 척 슬며시 자리를 뜨고, 하늘은 금세 내 눈으로 들어와 파랗게 새파랗게 물들이고 말 것이야. 화장대 서랍에 나뒹구는 실핀 하나 끄집어 내어 그 끝에 구름 한 조각 걸쳐 꽂고, 살랑살랑 치맛자락 나부끼며 봄나들이 가고 싶다. 멀리멀리 가고 싶다.

쿠스코는 가만히 자고 있던 나의 바람기를 흔들어댄다.

keyword
이전 06화(페루 1) 40년 만의 마추픽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