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7.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둘째가 방학을 맞아 집으로 내려왔다. 녀석을 타지로 보내놓고 처음으로 맞는 방학이다. 그동안 간간이 전화 통화만 하다가 직접 만나게 되니 설레기도 했다. 퇴근하자마자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왔다. 문 여는 소리에 아들은 일찌감치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
"아들~~~~, 잘 지냈어?"
"네~~~~"
".........."
나를 맞는 아들을 쳐다보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녀석의 머리는 완전히 노란 동태전 색깔이었다. 예전의 반들반들하던 진갈색 머리는 어쩌고 뻣뻣하고 푸석한 수세미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았다.
"머리가 왜 그래?"
"탈색했어요"
"왜? 그 좋던 머릿결은 어쩌고 이렇게 했어?"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한 번 해보고 싶었다는 녀석의 말에 그 이상의 말을 삼켜야 했다. 대학 들어가기까지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저런 제약을 받다가 울타리를 벗어났으니 그 해방감이 오죽 짜릿했을까? 난생처음 혼자 객지 생활을 위해 집을 떠나던 녀석의 얼굴에 감돌았던 희미한 걱정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걱정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남편이었다. 보수의 고수인 사람인데 아들의 파격적인 머리색으로 이내 몰려들 전운이 예상되었다. 저녁을 먹고 늦겠다던 남편이 다른 때와 달리 일찍 귀가했다. 남편은 문을 들어서기 무섭게 한층 들뜬 목소리로 아들을 격하게 반겼다.
"오우! 둘째 아들~~~~, 잘 지냈어? 한 번 안아보자"
"아버지~~~""
"염색했어?"
"네"
그다음에 곧 터져 나올 폭탄을 기다렸다.
"그전의 머리가 좋았는데 왜 염색을 했어?"
"헤헤, 한 번 해보고 싶어서요"
다행히 머리를 두고 더 이상의 말은 오가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부자가 거실에 앉아 한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더니 이야기를 마치고 작은 녀석은 제 방으로 들어갔다.
"무훈이는 왜 염색을 한 거야?"
"하고 싶었다잖아"
"어휴! 머리색이 저게 뭐야?"
"하고 싶어서 한 번 한 거라니까 봐줍시다. 며칠만 있으면 다시 올라갈 건데"
"언제 간대?"
"방학 동안 할 게 있다고 며칠만 있다가 간대요"
".........."
"집에 있는 동안 머리는 쳐다보지 말고 그 아래로만 봐요"
"참아야지 어쩌겠어"
"그래요. 며칠만 참아요. 올라가면 눈에 안 보이잖아"
거실에 앉아 남편과 과일을 먹으며 우리는 아들의 머리를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들 앞에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지만 남편도 적잖이 놀랍고 못마땅한 눈치였다. 집에 머무는 동안 아들의 노란 머리를 볼 때마다 명치를 쿡쿡 찌르는 것 같았지만 남편도 나도 별다른 말없이 잘 참아냈다.
세대가 다르니 생각도 다르다. 다른 것이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그 차이가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도 있다. 이번처럼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휙 과제를 던져주면 참으로 당혹스럽다.
오랜만에 나타난 작은아들은 우리 부부에게 동태전 머리를 숙제로 내주었다. 가족 중에 그런 머리를 할 사람이 나오리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않았는데 아무런 사전 통고도 없이 던져진 뜨거운 동태전을 우리는 얼떨결에 꿀꺽하고 삼켜야 했다.
그다음 겨울방학에도 녀석은 더 수세미 같은 머리를 하고 내려왔다. 향후 계획에 대해 물었더니 이제는 해 볼 만큼 했으니 다시 본래의 머리로 돌아갈 생각이라고 했다. 제가 생각해도 머릿결이 너무 상했다며 이제 다시는 이런 머리를 할 일은 없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이런 걸 두고 고양이가 쥐 생각해 준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 후로 녀석은 더 이상 동태전 머리를 하지 않았고, 우리도 방학을 마음 편히 맞을 수 있었다. 부모는 자식으로 인해 이렇게 또 작은 언덕 하나를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