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못 속인다더니......(1)

by 파란 해밀


2021.01.29.


나는 사춘기를 심하게 앓았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되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절정을 치달았다. 많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생활을 했지만 안으로는 회오리가 일었다.

'왜 사는지......'
'나는 어디서 왔는지......'
'부모와 나의 인연은 무엇인지......'

연필 한 자루를 사도 내 마음에 들거나, 사양에 맞는 선택의 이유가 있는데, 내가 부모를 택하지 않았고, 부모도 나를 택하지 않았는데 그 누구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 자식이 된다는 것도 의문이었다. 얼마 전까지 무조건 따르고 좋아했던 부모님이 갑자기 이방인처럼 낯설어졌다.

내가 누구인지, 왜 사는지...... 내 앞에 들이닥친 거대한 물음은 오랫동안 나를 무력하게 했다.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서 의미를 모르는 삶은 죽음이 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한 가운데 공부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고 2 때 거의 공부를 놓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험지가 앞에서 넘어오는데 책상 위에 소설책을 펴놓고 읽었다. 하는 수없이 순서대로 1,2,3,4,1,2,3,4..... 답안지를 채웠다. 이깟 답이 무엇이라고..... 아무렇게 칸을 메우고 다시 소설책을 꺼내 읽었다.


"알 만한 사람이 왜 그래?"

시험감독관으로 들어오신 담임선생님이 오셔서 읽고 있던 책을 가져가셨다. 남은 시간 동안 멍을 때렸다. 꼬박 1년을 그렇게 보냈지만 머릿속의 생각은 좀처럼 정리되지 않은 채 고 3을 맞았다.



untitled1.png © nguyendhn, 출처 Unsplash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많은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애를 썼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며 나와 타협했다. 그동안 제자리에 멈추어 오직 물음에만 몰두했음에도 해답을 찾지 못했으니 걸으면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 아직 학생이니까 일단 공부를 하면서 가보자'

그렇게 마음먹고 나서 눈에 불을 켜고 다시 공부를 했다. 그렇지만 선두를 앞지르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졸업식날 단상에서 우등상을 받는 친구에게 박수를 보내며 나는 내 인생의 한 챕터를 마무리했다.


'비록 내가 저곳에 서있지는 못하지만, 그동안 내가 보낸 시간이 가치 없고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포기하고 주저앉아 있지는 말자. 처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해결해 보자'

내가 딛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답을 찾기로 했다.


untitled.png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그렇게 한 단락을 지었다고 한꺼번에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20대 초반에도 많은 질문에 흔들렸고 그럴 때마다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속 시끄러운 날에는 굶었다. 아무 생각 없이 멍청한 날에도 굶었다. 본능적인 배고픔에라도 몰입해서 나를 묶어 놓고 싶었다.

어느 날, 방에 우두커니 앉았는데 작은 개미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무슨 볼 일이 있는지 연신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녀석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모두 보였다. 갑자기 손으로 녀석이 가려는 방향을 막았다. 그러자 잽싸게 옆으로 틀어서 달아난다. 그 방향을 또 막았더니 이내 또 다른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하다 보니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자꾸 막히다 보면 녀석이 포기할 거라 생각했다. 손바닥 대신 30센티 자로 막았다. 개미와 나는 한동안 막고, 달아나고, 막고, 달아나고를 반복했다. 물 한 방울을 개미에게 떨어뜨려 보았다. 난데없는 물세례에도 개미는 전혀 속도를 늦추거나 포기하려는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지치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내 인생의 두 번째 챕터를 마무리했다.

'저 개미도 제 길을 찾아 저렇게 최선을 다하는데,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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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화려한 청춘은 없다. 대신 두 챕터를 얻었다. 두 가지 깨달음을 얻는데 내 청춘을 지불해야 했다. 서른에 접어서도, 불혹이라는 사십에도, 무르익을 줄 알았던 오십에도 가끔 일렁였지만 두 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어 심하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잃어버린 청춘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육십 가까이 먹도록 태반을 사춘기를 앓은 것 같다. 이쯤 되고서야 아랫배에 겨우 힘이 느껴진다. 이제는 덜 휘청거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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