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1. 29.
"어머니, 오늘 무빈이가 학원에 안 왔어요"
"네?"
"요즘 무빈이가 학원에 와도 통 집중을 못 하는 것 같아요. 그냥 멍하니 넋을 놓고 있어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 날, 중학생인 큰아들이 다니는 학원에서 전화가 왔다. 심장이 툭 땅에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 아들이 학원을 빼먹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늘 비슷한 시각에 집에 와서 당연히 정해진 일정을 다 마치고 오는 줄 알았다. 옆에 있던 남편이 무슨 전화냐고 물었다. 내용을 얘기했더니 말을 마치기 무섭게 언성이 올라간다.
"그 녀석 공부는 안 하고 나쁜 친구들하고 PC방이나 다니는 거 아냐?"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렇게 속단하지 말아요"
"뻔하지 뭘. 열심히 하는 게 없어. 사내가 근성이 있어야지"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 한 통화에 남편은 아들이 벌써 구만 리 밖으로 탈선한 것으로 단정 짓고 괘씸해하며 연신 씩씩거렸다.
"무슨 이유인지 집에 오면 먼저 들어나 봅시다. 무슨 이유가 있겠지"
"이유는 무슨 이유?"
"화는 나중에 내도 되니까 먼저 얘기부터 들어봅시다"
남편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무슨 연유인지 먼저 들어보고 나서 그때 나무랄 일이 있으면 나무라도 되니까 급하게 화부터 내지 말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다.
"다녀왔습니다"
"이 녀석, 어디 갔다 오는 거야? 학원도 안 가고?"
아들은 축 처진 어깨로 무겁게 입을 땠다. 몇 번이고 얘길 했는데도 남편은 내가 한 말은 어느새 까맣게 잊어버리고 아들이 들어서자마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리 와서 주먹 쥐고 엎드려뻗쳐"
"............."
"어디 갔다 왔어? PC방에 있었어?"
"아닙니다"
"그럼 어디 있었어?"
"............"
"말 안 해?"
"그냥 여기저기 좀 걷다 왔습니다"
"어딜 걸어 다녔다는 거야?"
"동네 여기저기 좀 걸었습니다"
한동안 남편의 훈육이 이어졌지만 녀석은 좀처럼 속 시원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옆에서 팽팽한 부자를 지켜보고 있자니 내 속도 까맣게 타들어 갔다. 길게 이어지던 남편의 이야기가 끝나고 엎드려뻗치고 있던 아들을 해제시켰다.
"안녕히 주무세요"
세수를 하고 제 방으로 들어가면서 거실에 있던 내게 아들이 인사를 한다. 순간 뭔지 모를 무언가가 울컥 치민다. 30여 분쯤 지나 아들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녀석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오늘은 학원 가기가 싫었어?"
"네"
"왜? 공부하기 싫어서?"
"꼭 그런 건 아닌데, 책상 앞에 앉으면 그냥 머릿속이 하얘져요"
"......."
예전에 내가 앓았던 대로 녀석이 앓고 있었다. 제발 녀석들은 나처럼 심한 사춘기를 앓지 않기를 바랐는데 피는 못 속인다더니 내가 지나온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하고많은 것 중에 왜 하필 제일 지독한 것을 닮았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무빈아, 엄마도 너만 할 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지금 네가 얼마나 힘들지 이해가 가"
".........."
"혼자 잘 생각해 보고 많이 힘들면 엄마한테 얘기해"
".........."
"엄마는 주변에 의논할 사람이 없어서 못했지만, 너는 엄마가 있잖아. 너와 같은 것을 먼저 겪어봤으니까 네가 얘기할 때 그게 뭔지 알고 들어줄 수는 있잖아"
"네"
"생각이 커지려고 그러는 거야. 그래도 엄마는 무빈이가 여기 너무 오래 머물러 있지 않았으면 좋겠네....."
"네"
"그리고 아까 인사하고 들어갈 때 멋있더라. 아빠한테 혼나서 기분 나쁘다고 인사 안 하고 들어갈 줄 알았는데 고마워!"
녀석을 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녀석도 크느라고 용을 쓰고 있었다. 그 뒤로 한동안 휘청거리는 아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나마 나만큼 심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은 비단 외모뿐이 아니다. 걸음걸이, 성격 심지어 살아가는 방법까지 닮는다. 나는 절대 내 부모처럼 살지 말아야지 하면서 닮고, 밉다 밉다 하면서 닮는 것이 부모와 자식인 것 같다.
무수히 많은 특징 중에 이것만은 건너뛰기 바라는 것을 콕 집어 닮는 자식, 그런 자식을 보며 나의 지난 삶을 반추하게 하는 것이 자식이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 했던가? 이러니 어찌 부모가 제대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디딘 발자국에 발을 넣고 바로 뒤에서 저렇게 따라오고 있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