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이 회사에서 함께 일을 한지도 벌써 4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요즘같이 이직이 잦은 시대에 10여년 정도 되는 커리어에서 4년의 시간을 한 회사에 몸을 담았다는 건 득이 될 수도, 실이 될 수도 있을 상황이라고 생각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에 계속해서 재직하는 이유에는 이 회사의 조직문화를 설계하고 정착시켰다는 애착과, 그것을 계속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처음부터 이 회사에 조직문화 담당자로 입사를 하였던 건 아니었다. HR직무에서의 커리어를 마케터로 바꿔보고자 신규 이직 자리를 찾아보고 있었고, 연봉을 꽤나 많이 낮춰서 이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지금도 대표는 나에게 "왜 그때 우리 회사에 입사하셨어요?"라고 물어볼 정도로 정말 낮은 연봉수준이었다.)
어찌어찌 마케터로 일을 하다보니 20인 정도였던 이 회사가, 사업의 성장에 진심인 대표의 추진력을 서포트할 조직으로 더 성장하려면 HR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회사에 HR기능을 추가하자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의견을 말하면 그것이 내 일이 되어 돌아온다'는 공식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고, 마케터로 일하던 나는 얼마 되지 않아 HR 팀장의 제안을 받게 되었다.
'다시 HR 업무를 하게 될 거라면 이 조건으로 이 회사에 입사하지 않았을텐데'라는 생각도 잠시, 0에서부터 회사의 HR시스템을 만들어간다는 상황이 나의 도전정신을 자극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어떤 회사를 간다고 해도 기존의 시스템을 운영하거나, 보완하는 정도만 하지 아예 0에서부터 시작을 하는 일은 거의 없지 않은가.
꽤 괜찮은 기회라는 생각에 HR 팀장 자리를 수락하고 기존 직원들에게 새로 HR 업무를 맡게 되었다고 소개를 하는 찰나 누군가의 한마디가 나의 열정에 기름을 부어주기까지 하였다.
"조직문화를 만든다고요? 그거 제가 해봐서 아는데, 그냥 한도 빵빵한 법카 쥐어주고 회식이나 하라고 하면 돼요."
하루의 1/3이나 시간을 보내는 회사의 문화에 대한 인식이 '술먹고 놀면 열심히 일한다!'라니, 저 직원에게 문화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이 업무를 성공적으로 진행해야겠다는 열정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휴가신청서와 초과근무를 종이에 작성하고
결재시스템이 없어 모든 의사결정은 카톡으로 진행하고
회의실에서 그 누구도 의견을 내지 않아 상사의 잔소리만 이어지며
철저히 개인적이어서 동료의 일을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던.
20명의 중소기업이 100명까지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조직문화 담당자로 고군분투하였던 이야기. 연재 시작합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백범 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