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만족스러운 삶을 원한다.
일, 커리어, 인간관계에서 더없이 행복하길 바란다.
그 욕구는 우리의 일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그 순간 ‘완벽함’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삶은 오히려 불행해진다.
그것이 삶이 작동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완벽한 행복, 자유, 인정, 안정감, 편안함을 꿈꾼다.
하지만 ‘완벽’은 허상이다.
세상에 완벽한 행복은 없다.
완벽한 행복을 좇는 순간, 지금의 행복이 사라진다.
행복을 목적으로 집착하는 그 마음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완벽한 자유도 없다.
우리를 지탱하는 제도, 질서, 신념에서 완전히 벗어나면 오히려 의지할 곳이 사라져 불안에 갇힌다.
그것은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다.
완벽한 인정 역시 없다.
사람마다 호불호와 취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서 완벽한 사랑과 인정을 받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완벽한 안정감도 없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
사람도, 상황도, 감정도 변한다.
우리는 그 변화 속에서 적응하며 성장할 뿐이다.
완벽한 편안함도 없다.
삶은 본래 편안함과 불편함이 번갈아 찾아온다.
불편함이 있기에 편안함을 인식할 수 있다.
편안함만을 추구했다면, 우리는 걸음마조차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 시도는 결국 우울, 무기력, 나태라는 또 다른 불편함을 낳는다.
세상 그 무엇도 완벽할 수 없다.
오직 ‘충분함’만이 존재한다.
그 충분함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감각에서 온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충분한 행복,
선택할 수 있는 충분한 자유,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인정과 매력,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충분한 안정감,
불편함까지 수용하는 충분한 편안함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일종의 회피다.
그 속에는 ‘지금은 부족하다’는 잘못된 믿음이 숨어 있다.
그 부족함을 채우려는 노력은 오히려 불안을 키운다.
칼 융은 “저항은 지속될 뿐”이라고 말했다.
현재에 대한 저항을 멈추는 순간, 충분함이 스며든다.
우리는 한 번의 ‘완벽하게 맛있는 음식’으로 평생 배부르지 않다.
매일 삼시 세끼를 먹으며 살아간다.
그 순간들이 모여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매 순간의 행복, 자유, 안정감이 쌓여 지금의 우리가 있다. 그 충분함은 우리를 살아가게 하기 충분하다.
그러니 ‘완벽함’이 아난 ‘충분함’을 추구해 보자.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은 결국 ‘충분함’에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