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은 책을 읽는 공간이지만 사서들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들이 생각보다 많다. 사서들만 출입할 수 있는 지하서고에 있는 책을 찾을 때라든지, 상호대차 책을 대출할 때, 예약 도서를 받을 때 등 사서에게 문의해야 할 때가 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도서관을 주로 가니 한 사서님과 마주칠 경우가 유독 잦았다. 빼빼 마른 그 사서님은 항상 하얀 마스크를 끼고 동그란 안경에 단발머리, 검은색 코팅장갑을 끼고 있었다.
도서관에는 사서들이 시간 별로 서너 명 있었는데 그 사서님은 도서관에 걸어 다니는 반경이 가장 넓을 만큼 앉아서 쉬는 법이 별로 없었다. 빼빼 마른 데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난 가급적 사서님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한두 권까지는 괜찮아도 다량의 책을 청구기호로 쫓고 찾을 때면 눈알이 빠질 것처럼 아프고 어지럽기 때문이다. 사서님 일하는 시간은 오후 1시부터 8시. 7시간 동안 책을 소독기에 넣고 돌리고, 책들을 딱 맞는 자리에 채워 넣는 일은 육체적 노동이다. 그래서 터득한 노하우가 있다면 내가 한 번 읽은 책은 보관함에 그냥 두기보다는 내가 뽑은 책 옆에 있는 다른 책을 조금 더 앞으로 꺼내면 표시가 되어 바로 제자리에 꽂아둘 수 있었다.
사서님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든 건, 사서님이 아픈 듯 어깨를 으쓱거리는 모습도 그렇지만 사이가 조금은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눈을 마주치고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가 내가 청구기호 위치에 맞지 않은 책을 찾다가 도저히 못 찾아서 포기하고 있을 때 사서님은 끈질기게 살피다가 “찾았어요!”라며 저 멀리 손을 흔들고 환하게 웃던 모습으로 뭉클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이제 시작한 그림책 활동가의 내 꿈을 응원한다며 손에 귤을 쥐여 주기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가까워졌고, 여덟 시까지 운영하는 도서관에 맞춰 저녁 먹고 도서관에 간 날은 사서님이 “오늘은 왜 늦게 왔어요?”라고 장난치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숀 탠 작가가 쓴 <매미>라는 그림책을 빼빼 마른 사서님에게 찾아달라고 했다. 그 책은 일정 기간 사람들에게 대출되지 않아서 지하서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날 <매미>라는 책을 찾은 건 그림책 수업에서 학인 여럿이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꼽았기 때문이었다. 그중 한 분은 공무원을 퇴임하고 그 책을 읽었을 때 눈물이 났었다는 말에 난 그 책이 꼭 읽고 싶었다.
책 제목과 청구기호를 종이에 써서 내밀었다. 사서님은 미안해하는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제 할 일인데요. 미안해하지 말아요. 언제든지 꼭 말해요”라며 당부하듯 말하고는 지하 서고에서 책을 가져왔다. 책을 대출해서 나가는데 그날따라 사서님이 배웅을 해주듯 따라 나왔다. 추위가 밀려오는 스산한 기운에 나오지 말라던 나는 잠깐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심코 어떤 말을 했는데 사서님은 “오늘까지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도서관에서 오늘까지 일하신다고요?” 사서님은 마스크에 가려서 어떤 표정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웃는 건지 아쉬운 건지 모를 눈빛이었다. 나는 어쩜 말도 없이 가려고 했냐면서 아쉬운 듯 “다음에 또 오실 거지요? 또 오실 거니까 또 만날 수 있겠지요?”라면서 웃었다. 사서들은 지역 안에서 도서관을 이동하면서 다니니까. 우리는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도서관을 빠져나오며 나는 오늘 날짜가 떠올랐다. 11월 30일. 계약직 만료. 올 한 해의 12월을 남겨두고 빼빼 마른 사서님은 도서관의 일이 끝이 났다. 구청에서 운영하는 공공도서관 기간제근로자는 12개월이 아닌 10개월로 계약을 맺는데 이유는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는 불공정한 계약. 그동안 도서관에서 무수히 사라졌던 얼굴들. 손목 보호대를 끼고, 파스를 붙이고 서서 책을 나르던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사서님은 자신이 기간제근로자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도 아는 척하지 않았다. 그는 왜 오늘 그만둘 수밖에 없는 건지 하소연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마지막까지 성실하게 일을 해냈고 친절했다. 나도 굳이 다시 달려가고 싶지 않았다. 빼빼 마른 사서님이 도서관에 오시는 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반길 테니까.
17년 동안 아파서 쉬는 날 없이, 승진도 없이, 늦게까지 남아서 일을 해도 알아주는 이가 없던 <매미> 그림책을 읽고 또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