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해 보자. 나만의 홀가분한 시간을 만끽한다. 하고 싶은 건 마음껏 할 수 있다. 혹은 아무것도 안 해도 상관없다. 나를 귀찮게 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오로지 나 자신만 챙기면 된다. 밥때를 지키고 반찬을 신경 쓰거나 번거롭게 차릴 필요도 없다. 배 고프면 원하는 걸 먹고, 잠을 푸지게 자든 영화나 책을 논스톱으로 보든 녹다운이 될 때까지 글을 쓰든 방해꾼은 전혀 없다. 얼마나 고대하던 순간인가. 아마 몇 주 아님 한 달 정도는 혼자 만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자신한다.
그러다가 돌연 의도하지 않은 기분이 엄습한다.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는 외로움. 처음은 내가 스스로 자처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왠지 방치되어 있다는 느낌이 믿기지 않는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 핸드폰이 고장 났나 들여다보지만, 멀쩡한데 전화벨은커녕 톡 알림도 없다. 그새 인간들은 나란 존재를 새까맣게 잊었나 불안과 걱정이 밀어닥친다.
이래 가지고야 톨스토이나 폴 틸리히가 말한 '참된 나를 만든다는 고독'이 지속될지 의문이 안 생길 리 만무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장기화될수록 외로움이 수반되고 권태가 뒤따른다. 나만의 즐거움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되어버리고 남은 건 혼자라서 느끼는 고통. 공허하다. 더 이상 신나지 않다. 그 무엇을 해도 싫증이 나고 이내 시들해지다가 게으름이 몰려온다. 감각이 사라지고 시간은 멈춰 버린 듯 지루하며 우울이 덮친다. 몸은 축축 늘어지고 머리는 찌뿌듯하며 만사 귀찮고 무기력할 뿐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기억의 지속>이 떠오른다. 흐물흐물 휘어지고 주르륵 미끄러지는 시계. 시간이 엿가락처럼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다. 공기마저 흐름을 멈추고 고여버린 시공간, 답답증이 안개처럼 희끄무레한 가운데 녹아버린 권태가 가득하다. 생의 뽀송뽀송한 기억조차 그 눅눅하고 끈적이는 세계에 갇혀버릴 것만 같다.
이래서는 안 되지. 이 지경이 되자 나는 고독도 오래 끌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야 만다. 윤동주 <가을밤> 의 시적 화자에게 감정이입해 고독 밖으로 무작정 뛰쳐나온 가을날. 해 쨍한 날도 비 퍼붓는 날도 괜찮다. 자연인이 되어 시원하게 욕구를 해소하자. 고독은 고독이 고플 때 잠시 내 걸로 하자
궂은 비 내리는 가을밤 벌거숭이 그대로 잠자리에서 뛰쳐나와 마루에 쭈그리고 서서 아이ㄴ 양 하고 솨-- 오줌을 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