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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의 데자뷔

자꾸 길어 올려 퍼마셔야 한다

by 유주

한 번씩 글을 쓰려다 보면 언제 내가 이 비슷한 걸 쓰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무슨 데자뷔도 아니고 말이다. 알다시피 '데자뷔'는 내가 처음 한 행동이나 처음 본 장소가 마치 이전에 해 봤던 일 같고 언젠가 와 봤던 곳 같다는 착각을 일으키는 현상이다. 말이 나왔으니 문득 궁금했다. 뇌는 왜 이런 혼동을 일으키는 걸까.

학설에 의하면 뇌는 나의 무의식적인 행동이나 망각된 기억을 저 깊숙한 어딘가에 보관하고 있다가 그 비슷한 경험을 만났을 때 되살린다고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다. 사실 해마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총기가 떨어지고 있음을 절감하는데, 건망이 기억을 잡아먹는 건지 그 좋았던 기억력이 어디로 갔는지 모를 지경이다. 그런데 본래 인간의 뇌란 기억력이 뛰어나 스치듯 본 것도 잊지 않고 꼬박꼬박 뇌세포에 저장한다고 하니 놀랄 노 자가 아니겠는가.

문제는 데자뷔의 경우처럼 얘가 종종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고 기껏 잘 넣어 놓고도 정작 필요할 땐 꺼내지 못하는 데 있다. 그렇다고 이 대단한 능력을 써먹지 못한다면 진화론적 관점에서 낭비가 아닌가 싶어 안타깝던 차, 가만 보니 우리 뇌는 '자기 하기 나름'이란 기본 원칙을 가졌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뇌세포에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정보를 시기적절하게 끄집어내 쓸 수 있는 능력은 개인의 고유한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다. 얼마나 자주 유사한 경험을 접하고 반복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억과 기억 속 정보는 무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동반 상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늘 글을 읽고 또 써야 한다. (어쩔 수 없다. 하다 보니 다시 기승전글이다) 아스라이 저 머나먼 뇌 속 우물을 길어 한바탕 시원하게 목을 축이려면 자꾸자꾸 퍼올려야 한다. 자주 들여다보고 건져내 접할수록 뇌는 헛갈리지 않을 것이다. 머리가 열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나는 지금 하염없이 달나라로 간 의식을 이끌어 눈과 손에 잡아둔다.


38.jpg 칼 라르손 Rquired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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