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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처럼 쓴다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쌀 때

by 유주

"춤출래?"

대학 시절에 가장 끔찍했던 말 중 하나다. 당시 청춘들은 춤 못 춰 한 맺힌 귀신이라도 붙었는지 하나같이 춤바람이 들어 있었다. 나이트, 콜라텍, 록카페가 선풍적인 인기였던 시대였다.


남자 선배나 동기 중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춤을 그대로 따라 추면 세상에 둘도 없는 인기남으로 급부상했다. 내 친구(여자 친구다)는 현진영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 안무를 나이트에서 선보여 춤 한가락 하는 선배들의 감탄사를 자아냈다.


아아! 부러움에 몸서리치는 나는 우주최강 몸치였다. 고막이 찢어지고 심장이 터질듯이 울려대는 앰프 바로 옆에서 현란한 몸동작으로 시선을 압도했던 여자 선배를 미치도록 선망했다.


불안과 의심이 기어오르겠지만, 거기에는 틀림없이 당신의 진정한 상상력과 모든 체험에 대한 생생한 기억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믿어 보라.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꾸 발아래를 쳐다볼 필요 없다. 당신은 그냥 즐겁게 춤만 춰라.

앤 라모트 <쓰기의 감각>


앤 라모트는 글쓰기를 춤에 비유했다. 나는 그때 '내 춤이 다른 사람 눈에 어떻게 비칠까?' 고민하며 춤꾼과 나를 비교하느라 맥을 못추었다. 나의 막춤이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어 추기도 전에 망설였다. 춤추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춤을 춰야할 타이밍에 괜히 건배를 하며 맥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춤에 재능이 있어 잘 췄던 이가 있었나 싶다. 좋아하는 음악에 몸을 맡기고 무아지경이 되어 흐름을 타는 모습, 다른 사람의 시선 보다 자기 몸동작에 집중하고 심취해 있는 모습이 나를 사로잡았음을 결국 인정한다.


그렇다. 자꾸 확인하고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가수 비의 노래 '깡'의 가사처럼 자만도 허세도 필요하지 않다. 불 꺼진 무대 위 혼자 일지라도 스웩을 뽐내며 내 몸의 가치를 아는 것.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는 걸 느끼며 쓰러질 때까지 추면 된다. 글쓰기도 똑같다는 걸 아는데 이렇게 오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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