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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 Jan 05. 2021

요즘 같은 나, 사랑 나누고픈 나

무뚝뚝이가 배워가는 세상

"여보세용, 지금 어디세용, 언제쯤 오실건가용?" 아빠와 전화 통화를 하며 귀가 일정을 챙기는 딸아이의 '용용용' 콧소리 발린 말투가 아주 간드러진다. 옆에서 듣고 있으니 아이고 낯간지럽다. 나는 까무룩 죽다 깨어도 흉내조차 못 내겠다. "아는?(아이는 뭐하고 있어요?)", "밥도!(배고파요. 밥 좀 차려주세요)", "자자!(우리 이제 잘까요?)" 단 세 마디면 일상생활이 가능한 경상도 사람이 내 안에 살고 있어서 그렇다.

경상도 여자라면 누구나 찰떡같이 쫀득하게 들러붙는 목소리로 "오빠야"라고 부르며 늘상 애교를 떤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가수 신현희가 남자 여럿의 애간장을 녹였다는 건 알지만 내 기억 속 친구들 중 그런 어감으로 오빠를 부르는 이는 한 명도 없다. 친오빠는 물론이고 사귀는 사람을 부를 때도 '형' 혹은 '선배', 아니면 그냥 '오빠'다.

다행인지 우리 아이들은 무뚝뚝한 엄마를 닮지 않았다. 큰아이는 이제 좀 컸다고 쑥스러워하지만 어릴 땐 "사랑해요"를 입에 달고 살았다. 노총각 딱지를 떼고 첫아이가 생기자 입이 찢어질 지경이었던 남편은 딸애가 뽀뽀하고 사랑한다고 하니 예뻐 죽겠다는 식의 애정표현을 자주 했다. 시댁 식구들 특히 성인이 된 남편의 조카들은 바뀐 삼촌의 모습을 볼 때마다 어색해했다. 자기들한텐 그 비슷한 시늉도 해 본 적 없지 않냐며 비아냥댔다. 내가 보기엔 조카들이 약간 억지다. 미안하지만 비교 대상이 안된다. 세상 누군들 맨날 나에게 뽀뽀해 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이를 어여삐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 마음은 천태만상인  보여도 실상은 비슷비슷하다. 관심받기를 원하고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단순한 동물이지 않은가. 하지만 본인은 안 그러면서 상대에게만 요구하는 건 너무하다. 나는 결혼을 하고 식구가 생기며 그들 속에서 새로운 내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마음은 유순해지고 너그러운 성격과 올곧은 삶의 자세를 갖추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행여 약점을 보여도 부끄럽지 않았고, 서툰 불평이나 지질한 계산속도 그네들 앞이기에 드러낼 수 있었다. 미약한 인간이 바르고 떳떳하게 살 수 있도록 이끌어준 가족은 뽀뽀나 사랑이란 단어로도 부족하다.   

마찬가지 이유로 주변에 있는 이들을 자주 둘러본다. 스스로 노력해서 이룬 것보다 행운처럼 다가온 많은 사람들과 여러 기회가 있었기에 현재의 내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자존심 세고 이기심과 불만 덩어리였던 나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행복의 가치를 알아간다. 


인생의 재미는 마음 가는 곳을 향한다. 감사하는 이들이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오늘도 안도하며 기분 좋게 내일을 살아갈 기운을 얻는다. 요즘 같은 나, 썩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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