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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 Jan 04. 2021

이 녀석 밥도둑, 술도둑

겨울밤에 코다리와 맥주

저녁 메뉴는 포장해 온 코다리조림이었다. 꾸덕꾸덕하게 말린 생선의 쫄깃하고 꼬들꼬들한 식감과 비린내 없는 담백한 감칠맛이 일품이다. 폭신한 무와 통오징어를 더하고 칼칼한 양념을 끼얹어 자작하게 조린 그 음식을 나는 정말 사랑한다. 나만의 먹는 방식도 있다. 따뜻한 밥에 양념장을 듬뿍 넣고 비빈다. 손바닥에 김 한 장 올리고 그 위에 밥, 코다리 살과 무 한 점, 그리고 오징어와 콩나물, 화룡점정으로 청양고추 장아찌를 더해 돌돌 말아 한 입 크게 먹는다. 밥도둑이 따로 없다. 숨 돌릴 새 없이 밥이 사라진다.

나는 생물 보다 반건조 생선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나고 자란 동네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남, 북쪽으로는 산지이며 동, 서쪽으로는 구릉지로 둘러싸인 분지인 대구에서 유년 및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날씨는 유별나게 덥거나 추워서 연교차가 심하고 '대프리카'라 불릴 정도의 찜통 같은 더위로 유명세를 떨치는 곳이다. 찬거리들은 대부분 간이 짜고 싱싱한 제철 채소나 생물보다는 말린 식재료가 많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물고기보다는 육고기, 날 것보다는 익힌 것, 어패류는 새우나 조개, 오징어 같은 해물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생선은 살아서 팔딱이는 것보다 바짝 말리거나 덜 말린 걸 선호했다. 생태도 맛있기는 하지만 코다리와 황태 쪽을 더 고집스레 택했다. 조기, 임연수어, 고등어, 박대, 과메기도 '꾸덕꾸덕이'가 제맛이었다. 아, 생각하다 보니 갑자기 포항 구룡포 과메기가 너무 먹고 싶다. 꽁치를 바닷바람에 얼렸다 녹이며 자연 건조한 과메기는 이맘때 꼭 먹어줘야 할 계절 별미다. 초고추장에 찍어서 곱창김에 올리고 다시마, 해초, 쪽파와 청양고추를 같이 싸서 먹으면 끝내주는데.

바깥은 몸과 마음마저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영하의 추운 날씨이지만 온 가족 도란도란 모여 앉아 주말의 마지막 만찬을 즐긴 겨울밤이었다. 엄마와 두 딸은 밥 한 공기씩, 아빠는 두 공기 뚝딱! 시원한 맥주 따서 들이켜니 더 바랄 게 없었다. 한 주를 시작할 힘이 풀로 충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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