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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 Jan 02. 2021

우리 사는 것이 예술이다

신년 세 모녀 음악회

둘째 딸의 낭랑한 노랫소리와 쿵짝짝 악기 소리가 집안 가득 울려 퍼졌다. 새해맞이 모녀 음악회가 거실 한가운데에서 열렸다. 송년회로 진행될 예정이던 연주회는 신년 저녁 음악회로 바뀌었다. 유일한 관객인 남편이 연말에 지방 출장을 다녀오느라 귀가가 늦어져서다. 덕분에 하루를 벌었다. 연습을 게을리했던 나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연주자들이 맡은 악기는 큰딸은 피아노, 작은딸은 리코더, 나는 칼림바였다. 연습은 대략 이 주 전부터 시간 날 때마다 했고 함께 맞춰보는 건 30, 31일 양일 오후, 최종 리허설은 1월 1일 공연 당일 점심을 먹고 나서였다. 연주곡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에델바이스', '솜사탕', '바둑이 방울', '환희의 송가' 순으로 정했다. 연습을 하던 중 작은딸이 '솜사탕'은 빠른 리듬과 복잡한 멜로디로 손가락 집는 게 어렵다고 해서 그 곡만 이중주에 독창을 곁들이기로 했다.

나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연주는 잘할 자신이 있었다. 2주 전, 한 토론 모임에서 독토를 한 후 이어서 줌 송년회를 한 적이 있다. 그날 각자 원하는 걸 하나씩 뽐냈는데 나는 칼림바로 캐럴 독주를 했었다. 사르트르의 단편 소설 <벽>으로 토론을 한 직후였는데, 책 속 등장인물이 실존의 고뇌로 인해 한겨울에도 의도하지 않은 땀을 줄줄 흘렸던 것처럼 나 역시 아무리 마음 편히 가지려 해도 손에서 땀이 나고 실수를 연발했던 기억이 난다. 잘해서 칭찬받으려는 나의 실존이 긴장을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면서 나름 연주 경험이 있다며 딸들한테는 큰소리 떵떵 치고 속으로는 웃었다.

합주는 독주와 한참 다르다. 게다가 하모니를 이끌 지휘자가 없으니 세 악기가 다 뿔뿔이 제 갈 길을 갔다. 작은애는 몇몇 구간에서 박자 감각이 떨어졌고 큰애는 왼손 반주 변형이 심한 곡에서 헤맸으며 나는 건반 음계가 자꾸 헷갈려 툭하면 삑사리를 냈다. 곡이 너무 많나 싶어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음악회인데 러닝 타임이 최소 10분은 돼야지라는 생각으로 커버했다. 그리고 서로가 원했던 희망곡으로 뽑았기에 의견 존중의 의미로 밀어붙였다. 연습만이 최선이라고 격려하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연습은 연습이고 실전은 실전 아닌가. 확실히 관객이 있으면 떨리는 법이다. 다섯 곡의 조화로운 합주가 영 신통치 않아 제일 자신 있는 곡으로 개별 독주를 한 후에야 제1회 모녀 음악회를 끝낼 수 있었다. 1회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2회, 3회…… 계속 있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우리끼리의 연주회는 쭉 가기로 딸들과 의견 일치를 보았다. 실력이 쌓이면 올 연말쯤엔 친지들 앞에서 공연을 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욕심을 가져본다. 참! 중요한 걸 잊고 말 안 할뻔했다. 연주를 지켜본 남편이 깜짝 관람비를 우리 모두에게 냈다는 것. 그럴 줄 알았으면 더 열심히 연습할걸, 살짝 미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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