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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 Dec 26. 2020

기분 좋게 슬로우 슬로우 퀵 퀵

가볍고 심플하게

불필요한 욕심과 지나친 의욕을 내려놓고 사뿐사뿐 가벼운 스텝을 밟듯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한 건 작년이었다. 그때 나는 두  딸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들인 수많은 물건과 살림살이를 몇 날 며칠에 걸쳐 분류하고 분리배출했다. 책, 장난감, 옷, 식기류 등 그동안 버리지 못했던 것들을 정리하느라 녹초가 되었다. 그 속에 파묻혀 보낸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이들이 크면서 그들의 전용 물품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다. 나와 남편이 사용하는 걸 같이 쓰게 되고, 애들을 위한 거라는 핑곗거리를 만들지 않게 되자 내 물욕도 덩달아 사라졌다. 살아가는 데 있어 지금 있는 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여전히 차고 넘친다. 자주 쓰는 것을 제외하고 더 비워내야 한다. 집안이 허전하다 할 정도로 말이다.   

텅 빈 공간에서 되도록 적량만으로 살고자 하는 내 삶에 꾸준히 느는 건 책이 아닐까. 매일 꺼내 사용하는 물건도 아니고 정리는커녕 먼지 가득한 책장에 처박혀 있거나 책상 혹은 식탁 위 여기저기에 쌓여 있는 물건 말이다. 그러나 책은 예외로 둔다. 그건 항상 눈에 보이는 곳에 있어야 한다. 여백을 꽉꽉 채울 필요가 있다. 언제 펼쳐볼지 모를지언정 내 손 닿는 곳에 있어야 한다.  

커피와 에그타르트, 한 다발의 꽃, 청량한 향기를 발산하는 캔들, 심플하지만 큰 나무 책상, 햇빛이 잘 드는 창문과 하얀 커튼, 창문 너머 보이는 나무와 하늘이면 행복하다. 나는 최소한의 용량만 가지고 내 삶에 어울리는 물건들을 옆에 차곡차곡 두며 살고 싶다. 기분 좋게 슬로우 슬로우 퀵 퀵! 빠르게 또는 천천히 댄스 스텝을 밟으면서 시간을 빛내고 공간을 물들이며 나답게 살아갈 테다. 앞으로의 시간을 조금 부푼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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