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Culture Night 2012
다트머스 한인학생회에서는 매년 5월 말 토요일에 한인학생회의 가장 큰 행사인 KCN (Korean Culture Night) 한국 문화의 밤을 주최한다. 학생회관 강당을 빌려서 진행되는 "한국 문화의 밤"은 학생들이 준비한 다양한 공연과 한국 드라마 패러디 영상을 보며 학교 주변 유일한 한국 식당인 스시야에서 주문한 음식을 먹는 꽤 규모가 큰 행사이다.
"역시 KCN의 꽃은 1학년 여학생 댄스지"
한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어쩌다보니 나와 송희도 KCN 공연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두둥! 태어나서 처음으로 춤을, 그것도 K-pop 안무를 추게 되었다. 게다가 공연을 하겠다는 1학년 여학생들이 많아져서 팀을 2개로 나누게 되었는데, 나와 송희가 속한 팀은 발레를 하던 잰띠라는 백인 여학생을 제외하면 다들 태어나서 한 번도 춤을 춰본 적이 없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와 반대로 다른 팀은 모두들 외우고 있는 걸그룹 안무는 한 두개 정도 있을 정도로 다들 춤 좀 춘다 하는 아이들이였다. 어떻게 나눠져도 이렇게 나눠진거지....시작부터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물론 팀을 나눴다고 절대로 다른 팀에 대한 경쟁의식이 느껴지거나 '저 팀보다 우리가 잘해야지'라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실력이 너무 차이나 보이고 싶진 않았다. 공연의 퀄리티가 비교될까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KCN의 모든 무대영상은 다트머스 유튜브 채널에 올려진다. 공연을 망치면 엄청난 흑역사를 생성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대체 뭘 한다고 한거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공연곡도 선택이 끝났다. 다른 팀은 그 해 음악 차트에서 최고로 유행이던 씨스타의 loving you를, 우리 팀은 상대적으로 귀여운 안무가 많고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은 원더걸스의 Be my baby를 공연곡으로 정했다.
그리고 연습을 해보았는데... 우리의 생각보다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잰띠를 제외한 모든 팀원들은 안무를 배우고 몸에 익히는데 시간이 무척 오래 걸렸다. 게다가 안무 연습을 도와주기로 했던 KCN 안무 총괄 J 선배는 2주동안 연락이 두절되었다... 5월 말은 봄학기의 끝무렵이었고, 학기말이 늘 그렇듯 과제와 시험 준비로 바쁘다보니 이리저리 치여서 결국 제대로 된 연습은 공연 3일 전에야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체 무슨 배짱이였는지 모르겠다.
이왕 하기로 한 거 쪽팔리지 않은 무대를 하자는 일념 하나로 3일 동안 아이돌 트레이닝 뺨치는 하드 트레이닝을 했다. 마땅히 연습할 공간도 없어서 어쩌다가 찾은 수학 강의실 건물 1층 화장실에서 연습을 하게 되었다. 그 화장실이 거울도 크고 사람들도 많이 안 와서 연습하기에 좋았기 때문이다. 화장실 거울을 보고 몸을 흔드는 우리의 모습이 너무 웃펐지만 그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KCN 당일. 아침부터 마지막 점검 차원에서 연습을 하고 리허설을 위해 기숙사를 나섰는데 마치 내 마음처럼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으앙 오늘 정말 잘 할 수 있는 걸까....'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대체 무슨 정신으로 리허설을 했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리허설이 끝나자 KCN안무를 총괄하던 J선배가 조언을 해주셨다. "좀 더 느낌있게 해봐!" 좀 더 동작을 크게 유연하게 하라는 말이셨는데...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몸치인 내 몸이 따라주지는 않았다. 내 자리에 그 선배를 세우는게 오히려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쯤 되니 나의 목표는 그저 제발 안무나 까먹지 말고 잘 마치고 무대를 내려오는 것! 나도 오랜만에 한식을 먹으며 KCN의 다른 공연들을 즐기고 싶었지만, 너무 긴장이 되서 좋아하던 고기도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어차피 못 먹을거면 연습이나 더 하자는 생각에, 우리 무대 순서가 오기까지 백스테이지에서 연습, 또 연습을 반복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 차례! 힐을 신어서인지 긴장을 해서인지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무대에 올랐는데 조명과 음악 때문인지 눈앞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3일간의 맹연습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몸이 동작들을 기억했고, 나는 무대를즐기기는 커녕 멍한 기분으로 춤을 추다가 내려왔다.
3분 가량의 짧은 공연을 마치고 박수 소리와 함께 무대에서 내려오니 사실 무척 허무했다. 갑자기 가수들의 고충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몇십시간, 아니, 몇백시간의 연습은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고, 무대 위에서의 3분으로 평가 받는 것. 어떻게 보면 억울하고 냉철한 현실이였다. 특히 아이돌 가수들에 대한 존경심마저 생겼다. 그래도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나의 짧은 걸그룹 데뷔(?)는 기말고사 기간과 바쁜 일상 속에 어느새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러던 어느 날... 민경이와 밤 늦게 스터디룸에서 공부를 하던 중이였다. 다트머스 KSA 에서 보내 온 블릿츠에 KCN 각 무대의 링크가 첨부되어있었다. "헐.....!!! 0_0" 민경이와 그 날 저녁에만 공연 영상을 한 수십 번은 돌려본 것 같다. 서로 빵빵 터지며 웃다가 눈물이 날 지경이였다. 그 이후로 그 영상은 우리 사이에서는 금지 영상이 되었다. 하지만 계속 보다보니 나름 중독성이 있어서 나는 아직도 우울할 때면 그 영상을 본다. 그리고 송희랑 민경이를 놀리고 싶을 때도 그룹 카톡방에 무대영상 링크를 보내곤 한다. 이제는 둘 다 해탈해서 링크를 클릭하지도 않는 듯 하다.
얼마전에 송희는 "우리... 그 영상 유튜브에 신고해 버릴까...?" 라는 엉뚱한 말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 신고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특히 후배들이 그 영상을 접하게 되면서 "어머 언니, 그 무대 봤어요~" 하는 말을 할때 마다 정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리고 가끔은 "어 그래? 근데 그거 나 아닌데?^^" 라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예전에 내가 생각 없이 선배들 예전 KCN 영상을 보고 신나서 "언니~ 오빠~ 공연 봤어요 완전 멋있던데요!!!" 할 때 그 선배들도 이런 느낌이였겠구나... 나는 정말 눈치 없는 신입생이였구나... 라는 생각에 반성도 했다.
비록 나에겐 영원한 흑역사로 남았지만, 공연에 자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언제 또 이런 무대에 서보겠나' 하는 마음도 있고, 벼락치기로 준비하면서 팀원들의 우정도 더 깊어졌기 때문이다. 한 20년 후에도 이때의 영상을 같이 찾아보며 서로 즐거워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든 것 같아서 더 이상은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튜브님! 제발 무대영상은 저희만 볼 수 있게 비공개로 해주면 안되나요? ㅠㅠ
Written by Haeri
Edited by Ell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