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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랑별 Dec 05. 2022

대한민국 축구, 보지 않겠습니다. (1)

그동안에도 조짐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확실히 알았다.

4년만의 월드컵.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국뽕'이 차오르는 시기다. 더구나 나는 2002 기적의 월드컵 4강 신화 그 역사의 현장 속에 'Be the Reds' 티셔츠를 입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응원을 하고, 승리 후에는 도로로 뛰쳐나와 모르는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얼싸 안았던 산소학번 아니겠나.


또, 올해는 그간 한참 1학년 담임을 줄곧 하다 오랜만에 4학년 담임을 하게 되었다. 4학년부터 남학생들은 뭐 축구로 대동단결이다. 점심 식사 후 교실에 들르지 않고 바로 운동장에서 축구를 즐기기 위해 손잡이 달린 비닐봉지에 축구공을 넣고, 신발 주머니를 챙겨 급식실에 오는 아이들이다. 그러니 월드컵 경기 본방사수는 아이들과의 소통을 위한 학급운영의 일환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드디어 우리나라의 카타르 월드컵 첫 경기. 대한민국 vs 우루과이. 밤 10시 경기. 서둘러 아이들을 재워야 했지만 어쩌다 10시를 넘기게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도, 6살 아들도 학교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자기들도 꼭 보고 싶다고 고집을 부린다. 4년에 한 번이고, 이것도 공부지 하며 대신 30분만 보고 자러 들어가기를 약속하고 같이 보기로 한다. 아이들의 첫 월드컵 경기 시청에서 시원하게 골이 터져주면 좋으련만 전반전 내내 골이 터지지 않았다.


아직 전반전, 후반전의 개념이 없는 아이들이라 0:0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전반전을 마치고 나는 방으로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갔다. 그리고 정말 어이없게 같이 잠들고 말았다. 새벽까지 응원하며 길거리로 뛰쳐나갔던 산소학번 새내기 시절엔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겠지. 다음 날, 그대로 잠들어 버린 나를 탄식하며 소통이 살아있는 교실을 위해 어제 경기에 대한 뉴스를 챙겨 보았다. 아쉬운 0:0 무승부로 끝난 경기였다.




11월 28일 대한민국 vs 가나. 지난 무승부의 아쉬움과 함께 꼭 잡아야 하는 상대를 만나 월드컵 응원 열기는 한층 더 고조되었다. 반 친구들도 월드컵 이야기로 난리라며, 국뽕 dna가 꿈틀대는 딸아이도 지난 경기때보다 더 흥분되어 있었다. 우리 네 식구는 그렇게 둘러 앉아 6살 아들의 대~한~민국 선창에 '짝짝짝짝짝' 박수를 치며 응원을 했다.


하지만 전반 24' 34' 각각 골을 먹으며 전반전이 마무리 되었다. 가나는 꼭 이겨야 16강 진출이 희망적인데 기대와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전반전이 끝나자 마자 우리 부부는 서로 눈을 맞추고, 우루과이 전 때처럼 누구보다 빠르게 아이들이 잠들 수 있도록 움직였다. (이러다 우리 애들은 축구가 45분만 하는 줄 아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남편은 집안 전체를 소등하고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와 재웠다. 아이들도 목청을 세워가며 응원을 했기에 흥분 게이지가 쉽게 가라앉지는 않았다. 나는 사력을 다해 아이들을 재우기에 돌입했다. 생각처럼 쉽지 않다. 소소한 대화를 하다, 경고도 주고, 경고 2번 받으면 2층 침대로 가서 혼자 자기 벌칙도 제시한다.


결국 으름장을 놓고 나서야 조금씩 행동이 둔감해지는 아이들. 애들 재우고, 후반전을 꼭 보리라는 의지를 불태우던 불혹의 아줌마는 이번에도 또 스르르 같이 잠든다. (길거리 응원을 할 땐 정말 몰랐겠지, 20년 뒤의 오늘을.)



한 때 '붉은 악마'였던 불혹의 아줌마는 꿈틀대는 'Domestic Blood'(스무살의 붉은 악마는 20년 뒤, 불혹의 스맨파 열혈 시청자가 된다.) 때문인가 번쩍 눈을 뜬다. 내 이번엔 꼭 후반전을 보리라 이불을 박차고 거실로 나가니 남편이 흥분하며 소식을 전한다. 조규성 선수가 58' 61' 각각 금쪽 같은 헤딩골을 넣은 것이다. 이대로 16강의 꿈은 좌절인가 폐색의 그늘이 드리우던 분위기는 반전되어 있었다.


이건 이기겠다 하는 마음으로 경기를 보는데 각 잡고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68'에 한 골을 먹히고 만다. 이럴수가! 아직 시간이 있다. 한 번의 기회는 온다. 한 번만 하면 된다는 안느님(안정환 해설위원)의 해설에 귀를 기울이며 '제발 제발 한 골만 더!'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렇게 2:3으로 지고 말았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진다.

'내가 봐서 그런가?'


_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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