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대해변에서 놀다가 이제 뭐 하지? 할 때 보셔요
제주에서 공식적으로 내가 하는 일은 걷고 또 걷는 것이다. 집안일도 하고 한국어도 가르치고 운전해서 꽤 여기저기 다니고 있지만, 제주에서 요즘 뭐해요? 하고 물으면 나의 대답은 단연 ‘오름에 가요’.
자기 객관화가 잘 안 되었다가 최근 인정했다. 성격 급함. 언젠가 동생이 내가 운전하는 것을 보고 ‘아니, 뒤에 누가 쫓아와?’라고 물었고 ‘스피드를 쫌 즐기는 편?’이라고 둘러댔지만 이때부터 자기성찰이 시급하다는 판단이 섰던 것 같다. 딴에는 신중하고 조심성 많은 여성으로 살고 싶었나보다. 현실에서 나는 그냥 성격이 급한 여자가 맞고.
그런 탓에 피사체를 두고 찬찬히 셔터를 누르는 사진보다는 내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빠르게 담아내는 영상이 더 좋았다. 다행인 것은 제주에 와 일을 줄이고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면서 평소라면 ‘나 안해’ 하던것들을 ‘한 번 해보지뭐’ 의 영역으로 옮기는 게 꽤 유연해졌다. 성격급한 내가 부리나케 오르던 오름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잠깐 쉬며 차근차근 줌렌즈로 당겨 본 제주 오름의 구석구석. 그 덕에 폰에 저장되어 있는 귀한 사진 몇 장이다.
제주에 사는 지인에게 좀 물어봐: ‘평대해변에서 놀다가 밥 먹고 소화시킬 겸 들르면 좋은 오름, 너무 사람 많은 곳 말고!‘하면, 알려줄 만한 곳이 있다. 오늘은 적당히 높고 적당히 한산한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돝오름 을 이야기한다.
반려견 산이는 마음껏 뛰어놀고 나는 정상까지 오르며 파노라마로 펼쳐 볼 수 있는 제주길을 감상했다. 정상에 올라 카메라로 확대해 보는 제주는 절반은 하늘이고 절반은 땅과 나무로만 이루어진 세상이다. 간혹 랭귤러(나의 드림카)가 보여도 이때만큼은 크게 성에 차지 않다. 찰리 채플린은 ‘삶은 멀리서 보아야 예쁘다’ 고 했지만 오름에 오르면 멀리서 보아도 가까이서 보아도 삶은 정말 다 괜찮다. 황홀하고 눈부시다. 소박하지만 웅장하고 풍성하다. 사실 뭐로 형용해도 표현이 잘 안 된다. 그냥 가 봐야 안다.
돝오름은 비자림 가는 길에 있어서 1+1으로 다녀오기 좋은 곳이다. 걷는 데 영 취미가 없거나 시간이 촉박하다면 돝오름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비자림에 다녀온 맛이 날 것이다. 오를 때는 정상을 향해 걷고 내려올 때는 둘레길로 걸으면 무릎 걱정 없이 피톤치드 가득 마실 수 있고 새소리로 귀 정화되는 선물 같은 두어시간이 생겨난다. 평대해변에서 돝오름(비자림) 순으로 여행하거나 그와 반대 루트로 다녀와도 무방하다. 특히 평대초교 삼거리에서 중산간 쪽으로 달려 돝오름 까지 운전하며 보는 풍경은 썸네일로 쓰면 무조건 클릭 각인 그런 모습이다. 진짜 진짜 진짜, 정말로 그냥 가 보면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