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ss Traveler Apr 30. 2023

친정엄마의 부재에 대하여

모두 힘든 날들

술을 드시면 평소 못다 한 말들을 쏟아내는 아빠가 지긋지긋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 그런 그가 좀 안쓰럽다는 건방진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철부지 딸내미가 어느덧 어른이 된 것이다. 그리고 시베리아 만치 멀게만 느꼈던 아빠는 엄마가 갑작스레 죽고 나서 내게 새로운 존재로 다가왔다. 아빠와도 엄마와 하듯 똑같이 주말 데이트를 한다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늘 다른 세상의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마침내어느 날 그게 나의 세상이 되었다.


단풍이 곱게 들자 나는 아빠와 오붓이 한라산에 함께 올랐고 그게 또 너무 좋아 겨울이 되면 설산에 같이 오르자고 약속도 했다. 아빠와 단둘이 충동적으로 쇼핑을 나가 신발을 사신고 평소 좋아하던 식당에 들러 와인 한 병을 시켜놓고 우리의 소소한 일상을 공유했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런 딸이 어쩐지 부담스럽지만 아내를 잃은 외로운 아빠에겐 달리 도리가 없기에 우리는 지구를 떠나 우주 어느 행성으로 개척 이주를 하는 것 마냥 서로에게 가고 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3년이 지난 어느 봄날 나는 아빠를 모시고 바르셀로나를 여행했다. 아빠와 몬세라트 하이킹을 했고 이베리코 하몽을 먹으며 커플템으로 선글라스도 사서 나눠 끼면서 엄마를 모시고 다녀온 홍콩여행을 떠올렸다. 그때 우리 모녀는 정말 좋았다. 그런데 아빠는 어쩐지 예전의 엄마만큼 기뻐하시지 않았다. 엄마의 살림을 버리지 못하고 여태 쌓아두고 사시는 아빠는 그 먼 스페인 땅까지 엄마를 품고 와 한시도 잊지 못하고 아쉬워하고 계셨다. 그걸 보는 와중에 울화통이 터지는 마음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아빠를 안쓰러워하던 철든 맏이의 마음은 온 데 간 데 사라져 버렸다.


엄마가 떠난 겨울이 지나고 어렵게 꽃이 피고 포근한 봄이 오기까지 나에게도 시련이 많았다. 물론 아직도 불쑥 너무 춥다. 아빠는 애초에 치사랑은 없다며 아내 잃은 아빠의 마음을 자식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하시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60도 안된 젊은 엄마를 갑자기 떠나보낸 맏딸의 상실감을 아빠는 도대체 무슨 수로 이해하신단 말인가!? 혼자 남겨진 아빠가 안쓰러워 안 하던 짓? 들을 하면서 나조차도 부담스러운 내 모습을 이겨내려는 딸의 부단한 노력을 아빠는 왜 보지 않으실까?


<앞으로는 이렇게 여행하고 싶지 않다>


그토록 맑은 유럽여행길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누구든 자기의 고통이 제일 크다고 여긴다는 것을 안다. 아빠도 부모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머리로는 안다. 아빠의 저 말은 엄마는 가고 없는데 나만 이렇게 좋은 것을 보고 먹고 하는 게 참 괴롭다, 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안다. 우리 부모는 왜 자식걱정은 안중에도 없나 싶다가 자식은 또 부모험담을 이리 해도 되는가 싶은 생각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들이 흐른다, 친정에 가서도 친정엄마의 음식이 없고 편히 쉬다 올 수도 없는, 수척해진 아빠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다 와야 하는 모두에게 서글픈 시간들이 계속된다. 이런 시간들을 얼마나 더 견뎌야 아빠도 나도 괜찮아질 수 있을까.


아빠에게 가는 나




이전 04화 나의 오름 일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