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에 대한 경고 의무

[불난 집 아랫집의 간접피해 보상기]22화

by 조서경

[본 글은 개인 경험 기록이며, 개인적 판단을 포함합니다. 상세 고지는 글 하단을 참고하세요.]


며칠 전, 베란다 창 블라인드를 내리다 문득 하단에 빨간색 글자에 눈이 갔다. 여기에 원래 이런 게 있었나?


‘경고’


경고라고 쓰인 글자 옆으로 작은 글자로 적힌 글


“당김줄은 만 7세 이하 어린이의 질식 사고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만 7세 이하 어린이의 출입이 제한된 장소에 한하여 사용하십시오”


유아들이 끈이나 줄을 목에 걸고 놀다가 질식 사고를 당할 위험이 있어서 블라인드를 설치할 때 안전 기준을 알리는 경고문이 부착돼 있는 것이다. 창문 블라인드 줄(cord)에 의한 어린이 질식 사고는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2016년 6월에 OECD는 만 9세 이하의 어린이가 있는 일반 가정에서는 줄이 없는 창문 블라인드 제품 사용을 최적의 안전 요건으로 권장하고 있다. 다만 사정상 줄을 포함하는 창문 블라인드는 블라인드 줄의 최 끝단이 바닥에서 80센티미터 이상 떨어지도록 하는 등 안전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1월 22일부터 OECD의 안전기준보다 강한 만 7세 이하로 적용하고 있다.


‘위험에 대한 경고 의무’


사람은 정말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 같다. 매일 줄을 당겨 올리고 내리면서도 본 적이 없던 경고 문구가 이 시점에 눈에 들어오니 말이다. 화재 피해와 관련된 글을 올리면서 ‘위험에 대한 경고 의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침 이 주제로 22화를 쓰려던 참이었다.


나는 윗집에 일어난 화재로 인해 간접피해를 입었다. 화재로 인해 불에 직접 탄 피해는 ‘직접 피해’로, 연기 분진 침수 등으로 발생하는 피해 영업방해는 ‘간접피해’로 구분된다. 지금까지 16개월 동안 이 사고에 대응하면서 화재 간접피해의 위험에 대한 공식적 고지와 대응 안내 체계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직접 피해도 크지만 간접 피해도 건강을 위협하고 재산상 큰 손실을 가져오므로 적절한 고지와 안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재 발생 당시 나는 욕실에서 샤워 중이었고, 갑자기 역한 냄새를 맡고 심한 구역질을 하며 가슴에 압박감을 느꼈다. 불은 오래지 않아 진압됐고, 상황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는 듯했다. 집 안의 냄새가 심했지만, 창 밖의 냄새가 워낙 심해서 문을 열 수도 없었다. 그리고 새벽에 천장과 벽으로 물이 흘러내렸다.


윗집 화재 원인이 나오는 데는 한 달 이상 시간이 걸렸고, 그동안에 현장은 보존되어야 한다. 불을 끄기 위해 뿌려진 물이 서서히 우리 집 천장과 벽으로 흘러내렸고, 2주 후 집안은 동굴처럼 서늘하고 축축해졌다. 책이 젖을까 봐 제습제를 넣고, 제습기를 돌렸다. 하지만 책 일부는 축축해져서 폐기하기로 했고, 옷과 침구류도 축축하게 젖어서 화재 세탁과 일반세탁으로 나눠 맡겼다. 이즈음 집에서는 매캐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눈 코 입 목, 손등 발등 겨드랑이에 통증이 생겼다. 옷을 정리하고 손질하면서 통증이 더 심해졌다.


공사 후 입주하고 가구를 들여놨을 때 가구에서도 매캐한 냄새가 난다는 것을 알았다. 가구를 닦으면 나아질 줄 알고 이런저런 약품으로 닦다가 결국 폐기했다. 세탁소에서 찾아온 옷에서 여전히 매캐한 냄새가 나서, 두 번 세번 손질했지만 결국 폐기했다. 옷을 입으면 몸에 발진이 생겼고, 건조기에 돌렸을 때 매캐한 냄새가 번지고, 집진기에 까만 먼지가 쌓였다. 옷과 침구류, 모든 헝겊으로 만든 것과 가죽으로 만든 것을 폐기했다.


다 지나고 깨달은 사실이지만, 화재 2주 후 매캐한 냄새가 나고, 신체 통증이 시작된 때, 이미 심각한 화재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이때는 집 공사와 세탁을 맡기기 전이니 희망이 있었다고 하겠다. 하지만 공사 후 입주한 뒤에 가구, 손질한 옷, 공사한 집에서 매캐한 냄새가 났을 때 이미 피해는 확정됐던 것이다.


‘위험에 대한 경고 의무’


나는 시시각각 변하는 집의 상황과,가재도구에서 나는 냄새, 옷을 만지고 나서 생기는 신체 통증 등에 대해 보험사 측에 알렸다. 화재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두려워서, 왜 이런 것인지, 위험한 것은 아닌지, 씻고 닦고 세탁하면 나아지는 것인지 조언을 구하고 싶어서였다. 그럼에도 내가 보험사 측에서 들은 얘기 중 위험에 대한 경고는 없었다.


“불에 직접 타거나, 물이 떨어진 것 외에는 보상이 어렵습니다”

“공사를 일찍 시작하면, 나중에 물이 또 떨어질 수 있는데 그때는 보상하지 않습니다”

“집에서 나가는 것은 알아서 하시면 되는데, 공사 전에 나가는 비용은 보상하지 않습니다.”

“책을 미리 빼는 것보다는 공사할 때 한꺼번에 하는 게 좋습니다”

“복구 노력을 하면 세탁비 등은 보상됩니다”

“냄새는 주관적인 것이라 보상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대체로는 ‘보상이 되지 않는 경우’에 대한 설명이었다. 대신 복구 노력에 대해서는 보상이 된다고 하니 다 버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피해 물품을 하나라도 더 살리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렇게 오염된 장소에서 오염된 물건들을 손질하면서 신체 손상 역시 깊어졌다고 생각한다.


‘위험에 대한 경고 의무’


위험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모든 분야에 ‘위험에 대한 경고 의무’가 있다. 자신이 만든 제조물에 대한 설명 및 위험 경고(제조물 책임), 장소와 시설에서의 위험 경고(산업안전), 물질에 대한 위험 경고, 의료 행위와 약물에 있어서의 위험 경고, 타인에게 심각한 해를 끼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경고, 타인의 특정 결정이나 행동이 본인 스스로에게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에 대한 경고, 그리고 전문직 윤리.


‘위험에 대한 경고 의무’는 분야별로 다른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정의’를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AI 검색 결과를 인용했다.


“위험에 대한 경고 의무”는 현대 법체계, 특히 제조물 책임법, 산업 안전 보건법, 그리고 특정 전문직 윤리 분야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핵심적인 법적 개념입니다. 사용자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특정 주체에게 잠재적 위험을 미리 알리도록 요구하는 이 의무는 단순히 도덕적 책임을 넘어선 법적 강제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구글 AI)


‘위험에 대한 경고 의무’는 특정 상황에서 타인에게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이나 손상에 대해 미리 알려야 할 법적 또는 도덕적 책임을 의미합니다. 이는 다양한 맥락에서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GEMINI)


특정 상황에서 타인에게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이나 손상을 미리 알려야 하는 의무


이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특정 전문직 윤리 분야'의 경고 의무이다. 전문가라면 ’ 통상적으로 안전 관련 정보를 안내할 책임‘이 있다고 알고 있다. 잘 아는 분야에 있어서 타인에게 잠재적 위험이나 손상이 예견될 경우 미리 알려야 하는 것이다. 경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의대생들도 긴박한 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을 하기도 하고, 은행 창구 직원은 보이스피싱 피해가 예상되는 고객의 입금을 늦추고 경찰에 신고를 한다. 휴가를 간 소방관이 화재 발생지에서 긴급하게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불을 끄기도 한다.


나에게도 특정 영역에서 ‘위험에 대한 경고 의무’가 있다. 청소년상담사는 상담 내용에 대해 비밀 보장의 일차적 의무가 있으나 내담자의 생명이나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경우 비밀을 공개하고 위험의 목표가 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합당한 조치 등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내담자에게 감염성이 있는 치명적인 질병이 있을

때도 관련 기관에 신고하고, 그 질병에 노출된 제삼자에게 정보를 공개할 수도 있다. 또한 아동 학대 신고 의무도 있다. 직무 수행 중 아동 학대 범죄를 알게 되거나 의심이 드는 경우, 즉시 신고해야 하는 법적 의무가 있고, 정당한 사유 없이 신고하지 않으면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화재 간접피해에 대한 위험 경고는 왜 없었나


화재 피해를 입은 주거공간에, 화재 피해를 입은 물품에, 신체 손상에 대해 왜 ‘위험 경고’가 없었는지 의문이다. 윗집에서 불이 났고 소방수가 뿌려졌으면 그 물이 아랫집으로 흘러내려 침수 피해가 예상된다든지, 신체 통증을 호소할 때 병원 진료와 이주 필요성이 있다든지, 가재도구에서 매캐한 냄새가 나고 닦아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알릴 때 위험하니 손대지 말고 폐기하라든지, 화재 유해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심각한 질병 발병에 대한 연구 보고가 있다고 소개를 한다든지.


분명한 ‘위험 경고’가 필요한 시점은 숱하게 많았다. 이해 당사자이기 때문에 이런 의무가 없는 것인가? 직업적 윤리에 이런 내용은 포함되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화재 간접피해 위험 경고 의무를 가진 기업, 기관,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인가? 화재 간접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분명히 있는데 왜 ‘위험 경고’에 대한 책임이 있는 곳이 없는 것인가?


또 분명한 것은 나는 화재와 화재 피해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이 일을 16개월 동안 겪고 있다. 알았다면 일찍 폐기하고, 일찍 거주지를 옮겼을 것이다. 이 위험에 대한 경고가 한두 마디만 있었어도 손실과 손상은 지금보다 적었을 것이다.


화재 간접피해에 대해서도 위험을 경고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화재 간접피해의 위험을 사전에 알리고, 피해 발생 시에는 신속한 검사, 대피,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보완도 필요하다. 그리고 화재 피해 전문가들에게 이 의무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생각해보면 위험을 알고도 모른 척한 것은 문제이고, 위험을 몰랐다고 한다면 문제는 더 크다.


본 글은 개인의 경험을 정리한 기록입니다. 관련 서류와 자료(증빙)는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유사한 상황에 처한 분들이 빠르게 대응하는 데 참고가 되도록 경험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포함된 의학적, 과학적 내용은 개인의 경험과 참고 자료 및 제삼자의 의견을 종합한 개인적 판단이며, 전문적 검증이나 수치화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본 게시물은 고의적 비방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사실 관계의 오류가 발견될 경우 정정하겠습니다. 현재, 이 사안은 금융감독원에 정식 접수되어 조정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접수번호: 202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