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깨진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불난 집 아랫집의 간접피해 보상기] 21화

by 조서경

[본 글은 개인 경험 기록이며, 개인적 판단을 포함합니다. 상세 고지는 글 하단을 참고하세요.]


지난 9월 1일에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일주일이 두 편의 글을 올리자고 스스로 약속했다. 잘 지키다가 최근에는 1주일에 한편씩 올리고, 지난주에는 올리지 못했다. 그러니 이번 글은 2주 만에 올리는 글이다.


변명을 하자면, 초반에는 1차 피해보상청구를 하면서 정리해 둔 자료를 바탕으로 썼다. 그런데 20화는 이후의 발화세대 보험사와의 이야기라 다시 자료를 정리해야 했다. 발화세대 개인보험과 단체보험 두 손해사정사와의 소통 기록-카톡, 문자, 메일, 통화-을 다시 들여다보는 데는 꽤 시간이 필요했다. 카톡, 문자, 메일은 캡처해서 내 카톡으로 보낸 후 바탕화면에 저장하고, PDF 파일은 열어서 페이지마다 캡처해서 중요한 부분은 편집해 따로 보관하고, 통화 파일은 한글 변환 프로그램에 돌린 후 주요 부분을 발췌했다. 그리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20화를 써서 올렸다.


그리고 브런치까지 포함해 새로 발생한 자료를 토대로 금융감독원에 분쟁조정 신청서 2차 문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열흘이 걸렸다. 이 일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 일을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나’


짜증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화재 사고가 난 지 16개월째, 그동안 짜증을 많이 냈다. 감정 사전을 보면 짜증은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거나 상대방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상대방의 언행이 못마땅할 때 언행으로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돼있는데, 나의 짜증은 이 정의를 넘어섰다. 마치 고문 틀에 넣고 쥐어트는 것 같은 고통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 같은 짜증.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짜증, 그게 내가 이번 사고로 경험한 짜증이다. 나중에 살펴보니 이미 감당할 수 있는 총량을 넘어섰는데, 그 위에 한 가지 일이 보태지면 그랬다.


이사를 하고 어지간히 정리 됐는데, 금융감독원에 제출할 자료를 만들다 보니, 그때보다 정도는 약화됐지만 같은 색깔의 감정이 올라오는 것이다. 목에서 숨이 좀 막혔다.


그래서 명상수업에서 배운 대로 생각도 감정도 멈추고 그대로 앉아 숨을 쉬었다.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온전히 호흡에만 집중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러고 나서 가만히 묻고 대답했다.


‘지금 뭐가 문제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이지’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을 수 있나?’

‘하지 않을 수는 없지. 지금은 이게 나의 할 일이니까’


숨이 막힐 때마다 짧은 명상을 하며 서류를 한 장씩 완성하여 등기로 부쳤다. 그리고 집에 와서 잠을 자는데 손톱만 한 코딱지가 훅 빠지는 꿈을 꿨다. 실제로 늦지 않게 이 서류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풀려서인지 속이 시원했다.


이번 일을 통해서 일상이 유지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달았다. 잠을 많이 잤든, 적게 잤든, 필요한 시간에 일어나서 물 한 잔을 마시고, 창문을 열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어제 다 하지 못한 일을 이어가는 그 평범함. 일 조금 해놓고 나서 늦은 식사를 하고, 유튜브나 넷플릭스에 정신을 놓는 그 느긋함. 운동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결국 시간을 놓치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 그 게으름, 산만하고 집중력이 부족한 중에도 어느 순간 과제를 끝내고 나서 아이스크림 한 개를 상으로 흡입하는 즐거움. 주말 내내 명상수업을 하고 와 쓰러져 자다 새벽에 깜짝 놀라 깨서 못다 했던 일을 다시 시작하던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


평범하고 지루하고, 가끔은 콩 볶듯이 정신없는 그 일상들이 결국엔 나를 목표 지점으로 데려다준다. 길이 막히는 날이든, 지하철이 만원인 날이든, 불편하고 지루한 시간이든, 결국 목적지에 닿게 한다. 일상에는 나의 방향과 목표가 있다.


생각해 보면 일상이 깨졌던 적은 과거에도 있었다. 몇 년 전 부모님 간병을 할 때다. 엄마가 암 진단을 받고 엄마의 주간병은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되었다. 취재와 회의 등 몇 가지 일을 제외하고는 내가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직업이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1년간 일과 간병을 병행했다. 나도 정신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의 불편함이 커졌다. 보조작가의 할 일이 늘어나고, 두 번 하던 회의를 한 번으로 줄이고, 메인 취재만 동행할 뿐 그 외에는 시간을 내지 못했다. 엄마의 병환이 점점 깊어지고 입퇴원이 잦아지자 그만 일도 할 수 없었다. 폐렴으로 입원하고 일주일간 치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밀린 일을 할 새도 없이 다시 입원할 일이 생기는 식이었다. 무엇을 예상하거나 계획할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오면 정신이 멍하고 몸은 녹초가 됐고, 뇌가 조각난 것처럼 한 곳에 초점을 맞출 수가 없어서 방송 일정에 맞게 원고를 쓸 수 없었다. 결국 일을 쉬고 부모님 가실 때까지 병원에 상주하며 간병에 전념했다.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지만 그 시간의 영향은 심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꽤 오래갔다.


정현종 시인의 표현을 잠시 빌리자면, 일상이 깨진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나의 방향도 목적도 상실한 채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화살을 두려워하고, 피할 준비에 시간을 쓰고,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하고, 그러다 정통으로 맞으면 수습을 해야 한다. 생활은 온통 사고를 수습하는데 바쳐진다. 감당이 안돼 쩔쩔 매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가 삶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까 두렵고, 언제 끝날지 몰라 숨이 막힌다.


그 생활에서 빠져나와야 해서, 내 16개월의 시간을 피해자의 시간으로만 남겨둘 수 없어서 화재에 대해 알게 된 정보를 쓰기 시작했다. 덕분에 세 달 전보다 훨씬 안정됐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바란다면 평범하고 지루하고 가끔은 콩 튀기듯 정신없는 일상을 되찾고 싶다. 한정된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고, 내가 좋아하고 내게 중요한 일을 하면서 보내고 싶다. 이 사고에 대응하기로 한 것도 나의 선택이지만, 이다음에는 분노와 공포보다는 환희의 선택을 하고 싶다.



본 글은 개인의 경험을 정리한 기록입니다. 관련 서류와 자료(증빙)는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유사한 상황에 처한 분들이 빠르게 대응하는 데 참고가 되도록 경험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포함된 의학적, 과학적 내용은 개인의 경험과 참고 자료 및 제삼자의 의견을 종합한 개인적 판단이며, 전문적 검증이나 수치화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본 게시물은 고의적 비방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사실 관계의 오류가 발견될 경우 정정하겠습니다. 현재, 이 사안은 금융감독원에 정식 접수되어 조정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접수번호: 202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