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플리트비체와 라스토케
이른 아침에 트램을 쫓아 그윽한 향기의 커피와 바게트를 파는 레스토랑에 들렀다.
익숙한 우리네 커피맛은 아닌듯 했지만, 혼돈한 머리를 깨우는 아침 커피는 언제나 정답인 거 같다.
크림치즈를 막 구운 바게트에 엊고있었다. 테이블 위에 나란하게 향기를 퍼올리는 커피를 보면서 이미 나는 유럽의 운치 있는 여행자의 포스로 그걸 멋지게 먹어볼 작정이었다.
마침 배회하던 이 동네 참새 몇 마리가 우리 테이블 근처로 인사를 나온 듯했다. 총총거리는 귀여운 녀석이다.
나는 어릴 때 앙증맞은 참새를 생포해서 잘 키워보고 싶은 오랜 소망이 있었다.
미취학 꼬마시절에 광주리를 세우고 빵가루를 안에 뿌려놓은 후, 광주리를 받혀놓은 작대기 끝에 끈을 메어 멀찍이 녀석들이 그 안에 들어오기를 오메불방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곳의 언어를 사용하는 녀식일지는 몰라도, 암튼 바로 그 참새가 애완조류인 듯 내 앞에 겁 없이 왔던 것이다. 그러더니 아예 우리 테이블을 오르내렸다. 이건 좀 과한데...과연 저것들이 우리가 익히 알던 참새인가?
나는 아연한 마음에 이제는 무임승차하려는 참새를 마치 파리 쫓듯 손을 휘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이거 아니다 싶은 마음에 타협하듯 테이블 옆에 빵부스러기를 흩뿌렸다.
이때부터 주객이 전도되어 이미 녀석들은 가족들을 호출하였고, 이내 수십 마리의 참새들이 모여 아예 편안 자세로 머리를 끄덕이며 거한 아침을 하고 계셨다?
저것들의 루틴인지... 이내 허술한 이방인에게 삥뜯은 배부른 참새들은 자리를 떴다. 인사도 없이.
사실, 나는 조금 전까지 청신한 자그레브의 아침 공기 아래 향기로운 커피와 바게트를 얘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냥 여기서 좋은 친구를 만난 걸로 갈음 하기로 한다.
수선스런 아침을 마치고 길나설 채비를 끝냈다.
자그레브에서 플리트비체까지는 150여 킬로. 빠르면 차로 2시간이면 닿을 거리였다.
우리는 중간에 카를로바츠(Karlovac)에 들르기로 했는데, 이곳은 자그레브-리예카 고속도로와 철도가 지나는 크로아티아 중앙에 위치한 한때 교통의 요지였으나, 1861년 자다니모스크-자그레브-시사크 철도가 개설되면서부터 교역과 운송 중심의 명성은 막을 내렸다.
라떼의 추억은 사실 찾기 힘들었으나, 지리적 위치는 적절해보여 향후에 오게된다면 이 곳도 다른 모습이 되어있을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 곳은 전형적인 크로아티아 시골 농가들이 있었고, 인근의 리브니크 마을에 호텔이라기에는 조금 초라한 숙소들이 모여있는데, 그 앞을 흐르는 코라나 강둑의 전경은 소박했지만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이곳은 쿠파 강, 코라나 강, 므레주니치 강, 도브라 강 등이 시내와 주위를 흐르고 있고, 성벽과 해자(垓子)가 있어서 과연 외침을 막기에는 적격이었다.
과거 오스만 제국이 17세기에 밀/옥수수/소금/목재/담배 등의 주요 장터인 이곳을 7차례나 포위했으나, 끝내 점령하지 못한 곳이었다는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어보였다.
요새 안의 유명했던 성 니콜라 교회는 소박하다기보다 오히려 추레한 모습이어서 조금 놀랐는데, 종탑마저 없었으면 그저 창고로 오해할 수도 있는 모습이다.
이 나라에서는 국보급 보물이나 유적, 건축물에 대해 접근과 사진촬영을 금지시키는 등의 수선을 떨지는 않아보인다. 그저 보이는대로 존치하고 시간에 따라 낡아가는 모습을 선호하는 듯이 보이기도했다.
관광지 보존을 위한 조치들이 있기는하나 최소한이다. 우리와 유적을 포함한 모든것이 자연이고, 그대로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는게 더 아름답고 자연스럽지않은가 뭐 이렇게 얘기하고 싶은건지도 모른다.
잠깐 들른 카를로바츠에는 명소는 차치하고 라떼의 흔적조차 블러 처리된 듯 했지만, 이곳이 정이 가는건 그저 살아내는 우리 민초들의 모습이라 그랬다.
우리네 어른들 정서라면 저 코라나 강변에서 소 풀 뜯기로간 아이가 하릴없이 풀피리 부는 딱 그 정서아닌가?
다시 나선 도로는 정갈한 운행이 가능했고, 한산하여 주변의 경치를 즐기며 드라이브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복잡한 다른 유럽 도시들의 교통체증은 어디에도 없었고, 톨게이트나 주행 조건이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없었으나 관광지의 주차난은 비슷했다. 그중에도 플리트비체 공원 내 주차의 어려움은 압권이었다.
신의 은총을 받았던지 와이프가 발견한 좁은 틈을 비집어 차를 대고,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했다.
드디어 도착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Nacionalni park Plitvička jezera)은 16~17세기 터키와 오스트리아의 국경문제로 이 지역을 조사하기 전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단다. 악마의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운 원시림을 간직한 곳으로, 기껏해야 400년 전에야 그 신비가 알려져 1951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매년 1백만 명 이상이 찾는 크로아티아의 명소가 된 곳이다.
경관의 명소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곳이지만, 역설적으로 오랫동안 인적이 드문곳이라야 명소가 되는것 같다.
플리트비체는 10개의 경로중 관광객에게 개방된 곳으로 A부터 H까지 7개의 하이킹 코스가 있는데, 우리는 4~5시간 여정의 H코스로 산책을 시작했다. 통상 입구 하이킹 코스 앞까지는 버스가 있거나, 호수가 나오면 배를 타고 건너는 선착장이 중간중간에 있다.
이곳은 상류의 프로슈찬스코, 갈로바츠, 그라딘스코, 코자크의 4개의 호수가 있는데, 많은 시간을 계획해서 트레킹을 할 목적이라면 프로슈찬스코 호수에서 내려오는 것이 좋다. 그럴만한 이유를 여기에서 보았다.
호수 중에 여러 작은 폭포와 풍경의 다채로움을 지닌 갈로바츠 호수의 숲길과 나무다리가 기억에 남는다.
굽은 데크 산책로를 따라 아름다운 숲과 호수를 건너다니다보면, 조용한것 같은 숲에도 노루, 다람쥐 등의 동물이나 여러종류의 새와 곤충 등이 그들의 삶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것이 보인다.
나무위에서 우리를 관찰하고 있을 아바타에 나오는 나비족을 포함해서 말이다.
숲길을 걷다보면 우리와 자연의 갑을관계가 드러난다.
우리는 그저 여기에 속해있고 감동의 마음으로 보면된다. 주인의식을 갖되 주인은 되지말자고 생각했다.
다행히 상업시설은 드물었으나, 선박 정류장 앞에는 커피나 음료, 스넥을 파는 상점, 잔디광장도 있는데 거기에는 유럽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과 특히 러시아 연인들이 많이 보였다.
러시아 커플들은 특징이 있었다. 선천적으로 윤곽이 아름다운 여성들은 화장과 의상이 좀 과하고, 남자는 마초적인 의상이나 타투 등이 도드라졌다. 그 또한 매력적으로 보였고 그들, 그 나이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 나이에 저들처럼 자유로웠을까? 생각해보면 그저 고속도로만 떠올랐고, 오히려 지금에 감사하게됐다.
사실 어디여도 후회 없을 코스겠지만, 시간상 가장 긴 C코스는 6시간 코스로 1번 입구 쪽의 벨리키 폭포(Veliki slap)에서부터 상단부의 본격 하이킹 코스인 프로슈찬스코 호수와 그라딘스코 호수까지 왕복하는 긴 여정이었다.
우리는 2번 입구에서 프로슈찬스코 호수에서 출발하여 갈로바츠 호수를 거쳐 슈플랴라 동굴, 벨라키 폭포를 다녀오는 코스로 조금 긴 경로였다. 갈로바츠 호수를 지나면서는 물이 어찌나 맑던지 물에 잠겨있는 고목의 옹이나 노니는 물고기 비늘의 상처까지 볼 수 있어 호수의 깊이조차 실재보다 얕아 보였다.
이곳이 가장 아름다운 상단부 구간이라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는데, 맑은 호수의 기억은 거의 그곳이었다.
혁명적 SF영화였던 '아바타'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터라 이미 그 풍광은 눈에 익었겠다 싶었지만, 막상 진경을 눈앞에 두면 고화질 TV나 유려한 묘사도 초라함이 느껴져 그저 눈과 마음에 담아 가는게 상책이다 싶었다.
심미적 취향의 다름으로 이곳이 최고의 풍광이라 순위를 내놓을 순 없지만, 엉뚱한 상상이 떠올랐다.
우리네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 선생이 이곳을 본다면, 그분은 어떤 그림을 내놨을까?
인왕제색도, 금강전도로 유명하지만, 실상 그의 그림은 서울 인왕산, 종로 옥류동, 양수리 등 한강과 우리 주변의 배경이 많았고, 작품들이 지금까지 마음의 울림을 주는 데는 그림 속에 심상이 전달됐기 때문 아닌가?
그분이라면 우리네 정서와 터치로 이곳의 느낌을 어떻게 전달하셨을까? 그런 상상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작가가 아닌 다음에야 우리의 사진은 동선 확인 이상의 느낌을 찾기 힘들 때가 많다. 막대한 풍광 앞에서의 사진은 더 그렇다.
오히려 그저 집 앞의 편의점, 퇴근길의 야경사진이 당시의 심상을 찾아내기는 더 적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사진은 우리가 지나온 길을 추억하는 메타포로 존재하며 그 심상은 내 안에만 존재하는 것 같다.
성경 창세기 1장에 자신이 창조하신 삼라만상을 돌아본 후에 하나님은 '...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기록되어있는데, 갑자기 이곳에 서서 그 말씀이 떠올라 웃음 지었다.
플리트비체 주변에도 소베(Sobe)라는 민박들이 운영되지만, 이미 알려진 관광코스로 상업화되어 현지 민박의 맛은 찾아보기 힘들다 생각되어 일반적인 동선을 거슬러 플리트비체에서 라스토케(Rastoke)로 향했다.
26킬로 내 30분 거리의 가까운 거리이기도 하고, 해지기 전 이곳의 오후는 특별할 것 같아 정해놓은 일정이었다. 소소하지만 아름다운 시골 동네에서 맞는 아침 공기와 물안개 생각에 벌써 마음이 부풀었다.
여행이란 것이 우리가 누려온 일상과 다른 이질감을 느끼는데서 오는 환희를 경험하고자 하는 것 아닌가?
과연 그랬다.
단, 이곳에서 먹은 이탈리안 피자는 매우 짰다. 짠 국물에 물을 더하듯 크로아티아 맥주 오주스코(Ozujsko)를 마셔댔다. 어쩌랴? 이 또한 이질감의 환희라 생각하기로 했다.
슬루니치차강과 코라나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형성된 이 마을은 그로 인한 풍부한 수량과 급류가 흐르고 있으나, 광대한 크기는 아니라 위협적이지 않고 산책하는 부부의 대화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미 이곳도 TV 프로그램에서 소개되어 많이 알려진 명소가 되어 우리나라 관광객들에겐 필수코스가 되어있었지만, 8월 성수기인데도 붐비는 정도는 아니어서 바로 작은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언덕으로 올랐다.
중간중간에 가동을 멈춘 물레방아가 보이는 집이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풍부한 수량에 힘입어 곡물을 빻을 때 사용하곤 한단다. 나무벽에는 방앗간이라는 뜻의 'MLIN'이라는 글씨가 쓰여있었다.
우리나라처럼 명절이 되면 이곳에서 밀을 빻아 나누는 것인가?
이곳은 연초에 리예카 카니발(Rijeka Canival), 6월엔 부활절 60일 이후에 성체축일, 6월 25일 유고연방과 분리된 '분리독립기념일', 크리스마스 등의 주요한 기념일과 축제들이 있는데, 이런 공휴일에는 통상적으로 모든 레스토랑과 명소 등은 우리와 달리 문을 닫는다고 한다. 간혹 우리 정서로 갔다가 낭패 사례들이 있다고 한다.
라스토케는 정성스레 돌아본다 해도 2~3시간 정도면 가가호호 안면을 틀 정도로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 입구에 경이롭게도 멋진 폭포가 우렁찬 소리로 환영했고 질세라 산새들도 그들의 언어로 소리를 높였다.
이곳은 플리트비체로 가는 경유지로 둘러보는 경우가 많아서 웅장한 국립공원과 대비되는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됐다.
누구나 이런 곳에는 살고 싶다 생각하기도 하겠지만, 당장 스마트폰이 잘 터지지 않아 숙소를 예약하는 앱 접속이 어려웠고, 오늘만은 현장에서 숙소를 잡아보기로 한 무계획의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었다.
우리는 '로망은 그대로 놔두고 보는 게 로망다워' 이러면서 연신 안테나를 찾아다닌 끝에 와이파이 한 토막을 붙잡아 숙박 앱을 통해 근처 농부의 숙소를 예약했다.
참 편리한 세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전기로 연결된 컴퓨팅 세상에서 가느다란 전기의 생명줄이 빠지거나 중단된다면 우리는 모든 걸 잃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결국 전기와 디지털화된 0,1의 조합으로라야 모든 정체성이 드러나고, 그것들이 연결되야만 살 수 있게 된 세상이 되어버린 지금, 내 ID가 과연 나를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인가....
그냥 그렇다 치고 살아가는 거겠지? 싶었다.
그나저나, 산속이라 그런가? 시간은 겨우 7시인데도 이미 어둑서니 같이 어두웠다.
산새들도 깃을 쉴 곳으로 돌아가고 부엉이는 이제 기지개를 켠 듯 보였다.
농가를 찾아가는 길 위의 우리는 마치 공포체험을 하러 들어가는 유튜버와 같아 보였다.
시골이라 가로등이 드물었고 적절한 이정표도, 길을 알려줄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마침 지나는 농가의 사람에게 위치를 물으니 친절하기는 했으나, 그들의 언어로만 장황한 안내를 해주었다.
어찌 됐던 그의 노력에 감사 가득한 웃음으로 화답하고, 그의 손짓을 더듬어 다시 농로와 도로를 몇 번을 번갈아 돌았으나 그 장소를 찾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분이 거기를 과연 알고는 있었던 것일까? 공포체험을 기획한 그분 아닌가? 의심이 고개를 들 무렵 어떻게 저런 곳이... 하는 민가와 동떨어진 곳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이는 농가를 발견했다.
주변 500미터 이내에는 집이 없는 상황에서, 멈춰있던 구글맵이 갑자기 동작을 하면서 가리키는 곳이라면 저곳이라 확신했고, 과연 그랬다.
어느덧 흑암의 시간이 지나 9시쯤 되었고, 문 앞에서 두 손을 비벼가며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노부부를 발견하고는 우리는 거의 울 뻔했다. 적의 포로가 된 사지로부터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처럼, 우리는 액션 영화 엔딩의 장엄한 백그라운드 음악과 함께 서로 격하게 포옹해야 됐었다. 적어도 그때는...
팔순이 다 되신 인자한 웃음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우리 손을 잡아주셨고, 영어가 되는 딸의 전화를 건네주셨다. 예약을 확인한 후, 집으로 안내해주시고 향기로운 재스민차를 내주셨다.
당신들은 거의 오지 않는 방문객에 긴장하신 듯했고, 격지(隔地)에 살고있어 오히려 미안하다는 기색이다.
초행길의 방문객이 길을 못 찾는 것 같아 애태우고 있었다고 딸이 전했고, 당신들께서는 다른 숙소에서 묵을 거니 편히 쉬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이심전심으로.
숙소는 10평 정도로, 예전 누군가의 방을 개조해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폐쇄하고 크로아티아 방문 러시에 발맞춰 관광객을 맞기 위한 인테리어를 한 것같이 보였다.
2구짜리 전자레인지와 수도, 알전구 아래의 소박한 4인용 식탁과 파우치, 2인용 침대, 정말 딱 1인용 샤워장과 화장실이 있었다.
과하게 크지 않은 방과 아늑함이 느껴지는 실내에 편안함이 느껴졌고, 바깥의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테이크아웃으로 가져온 빵과 음료로 저녁을 때웠다. 오후 짠 피자의 영향인지 계속 물을 마셔대긴 했다.
저녁이라 간단한 요기를 하고 주변을 둘러보려 했으나, 칠흑같이 어두운 사위는 피아식별조차 어려웠다.
덕분에 총총한 하늘의 별들이 더 가까웠고, 노부부의 따뜻한 손길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행의 필수항목은 편한 잠자리인데, 화려하지 않지만 안온한 분위기와 편한 침구에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이제는 자야 했다.
편한 잠자리 때문인지, 피곤 때문인지 잠깐 눈을 붙인것 같은데 상쾌하게 일찍 눈을 떠졌다.
자기 전, 일찍 일어나 크로아티아 시골 새벽안개와 일출을 보려고 맘먹고 누웠었는데, 그 시간은 지나버렸다.
밖에 나와보니, 어제저녁에 감춰졌던 사위가 눈에 들어왔다.
푸른 하늘에 전형적인 시골 내음이 물씬했고, 앞산 너머 해는 능선을 올라가고 있었다.
아침 시야에 건물이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하고, 루틴을 벗어난 느낌을 제대로 전달받고 있었다.
돌아오신 노부부는 느릿하지만, 아침식사는 했는지 손짓으로 물으시고 떠나기 전에 자그마한 라벤더 헝겊 방향제를 선물로 주셨다.
그 향만큼 은은한 감동이었고, 지금도 내 책장에 은은하다. 다시 뵙지 못하겠지만 두 분 건강하시길 빌었다.
우리는 아껴두었던 컵라면과 믹스커피 2봉으로 답례하자 '이게 뭐지'하시는 표정이다.
저것들을 어떻게 마임으로 설명한단 말인가? 딸에게 물으실 것이다. '설마 액자에 넣어 보관하시지는 않겠지' 하며 두분을 뒤로하고 나왔다.
여기는 어디를 가나 라벤더의 향기가 스며있는 듯한데, 내게 크로아티아를 추억하는 한 가지를 고르라고 한다면, 단연 라벤더향을 얘기할 것 같다.
이후 우리는 라스토케의 아침 내음을 맡으며, 말을 몰아 자다르로 향했다.
지금은 여느 때의 서울 출근시간인데, 여기 난 최대한 편한 복장의 여행자로 차가 아닌 말을 탄 기분이었다.
우리는 자다르까지 180여 킬로 걸리는 코스를 택하여 시간이 걸리더라도 벨레비트 산맥을 넘고, 해안도로가 끼어있는 도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마을입구의 폭포는 여전히 우렁차게 인사를 한다.
아마도 아무도 보지않았을 새벽에도 지치지않고 물을 저리 흘리고 있었을 터다. 생각해보면 수만년전에도 흘렀을 폭포를 지금 내가 보고있는 것도 신기하다. 마치 내 옆에 아바타 여주인공 네이티리가 서있는 듯 하다.
또다른 그곳으로 출발했다.
이번 여행 준비를 위해 도시와 역사, 이미지들을 찾아보면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자다르!
거기에도 오감과 상상을 자극할 뭔가가 있을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