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이 다른 여행의 시작-자그레브
인천에서 자그레브(Zagreb)까지 8481km, 2018년에야 개설된 직항으로도 11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이륙 후 15분쯤 지나 안정궤도에 진입한 비행기는 정숙 운항을 시작했고 이후, 긴 운항에 음주 후 숙면이나 지겨운 마블 영화의 재탕으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니다, 중간중간 기특하게 나는 공부를 했다.
크로아티아를 알아보던 중에 익숙한 음악이 있어 다시 들었던 것이 '크로아티안 랩소디(Croatian rhapsody)'인데, 자그레브 음악콩쿠르에서 입상한 제임스 본드의 외모를 지닌 크로아티아 출신 막심 므라비차(Maksim Mrvica)의 신들린 연주로 유명해진 그 곡이었다.
찾아보니 유고와의 전쟁의 아픔을 표현한 곡으로 작곡가이자 시인인 톤치 홀 치크가 막심에게 연주를 의뢰한 작품, 격랑으로 몰아치는 초반부의 전개는 긴장으로 몰아가고, 아름답지만 슬픈 마지막은 단편영화의 열린 결말을 보는 듯 아스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몇 번을 들었던 음악이라도 지금의 상황과 심상을 부여하면 이처럼 어설픈 나만의 해석이 나오는건가?
스스로 기특한 마음에 그 아름다운 멜로디를 몇 번 반복해서 듣다가 결국 잠이 들었다.
한반도 면적의 1/2에 불과한 남북으로 뻗은 크로아티아는 유럽 동남부 발칸반도에 자리하고 있고, 서쪽으로는 이탈리아와 아드리아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아드리아해 상공을 가르고 있었다.
착륙 전의 창밖의 조망은 빨간 지붕의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정갈한 시골마을 같았고, 낮은 시선과 들판, 뒷 배경의 드세 보이지 않는 산맥은 그 첫인상으로도 우리를 충분히 기분 좋게 만들었다.
잠결과 현실을 구분 못하였던 긴 비행도 그 끝이 있어, 우리는 드디어 아담한 자그레브 공항에 발을 디뎠고 연신 발칸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낯선 언어가 들려온다. 이곳은 주로 크로아티아어를 사용하는데, 깊이 있는 정치와 철학을 논하기 원하지 않는 한, 여행자의 영어로도 의사소통이 되어서 여행 중에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이곳은 한국과 유사한 여름의 8월 초라 30도 정도의 훈훈한 공기가 낯설지 않았고, 그리 습하지 않아서 여행자가 첫걸음을 떼기는 더없이 기분 좋았다.
공항은 국제공항이라는 호칭과는 달리 한적해서, 마치 잘못내린 시골 버스정류장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아무튼, 여기는 자그레브 공항이 거의 확실했고, 공항이 도시 외곽에 위치했으므로 줄지어있는 택시를 잡아타고 자그레브 시내로 들어갔다.
30여분을 들어가는 동안 좌우의 풍경은 우리 지방도시의 풍경과 유사한 인상이었으나, 시내로 진입하자 계획화된 도로와 청결한 도시 이미지가 들어왔다.
이 순간 마치 잘 꾸미고 올라온 시골 샌님같은, 그래서 외려 정감있고 귀여운 구석이 보이는 도시의 첫인상이 떠올랐다.
이 도시에서 1박을 해야 했는데, 우리는 호텔에 짐을 풀고 고르니 그라드(Gornji Grad) 구시가로 향했다.
이곳 자그레브는 11세기에 로마 주교구가 되어 발칸반도의 주요 도시로 성장하였으나, 17세 말에 대역병과 대화재가 발생한 이후에 초토화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1731년 5월 30일에 자그레브에서 발생한 대화재는 주요 성문 중의 하나인 스톤 게이트까지 소실되어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었는데, 진화 후에 스톤 게이트 잿더미에서 성모 마리아의 그림이 전혀 손상되지 않은 채 원래 모습대로 발견되었단다.
이후 아픔을 통해 거꾸로 희망을 보여주었다고 믿고싶은 이들은 성모 마리아를 자그레브의 수호신으로 숭앙하여, 익일 진화되었던 매년 5월 31일을 자그레브의 날(Zagreb city day)로 기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밝고 미소는 아름다웠다. 호텔 앞 아담한 즈린예바츠 공원(Park Zrinjevac)에는 여느 도시처럼 활기찼고, 뛰노는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은 그들의 하늘처럼 청명했다.
1880년, 자그레브는 대지진의 피해로 자그레브 대성당을 포함한 주요 역사적 건물들이 크게 파손되었는데 오히려 이를 계기로 급격한 현대화를 맞이했다. 이때 멈춰버린 자그레브 대성당 옆의 벽면 시계는 '바로 지금이야!'라고 소리치듯 녹슨 분침이 6시 5분쯤을 여전히 가리키고 있었다.
이후 도시는 신중한 도시계획으로 새로운 랜드마크와 공공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확장되면서 19세기에는 인구가 10배 가깝게 폭발적 증가세를 보이면서 현재 80만의 인구가 거주하는 도시로 성장했다.
어느덧 어스름한 저녁이 되어가고, 일리차(Ilica) 거리에서는 현지인과 각지에서 온 여행 커플들의 행복한 웃음이 즈란바예츠 공원의 분수처럼 흩어졌다.
트램이 활보하는 반 옐라치치 광장(Ban Josip Jelasic Square)은 가장 번화한 곳으로 19세기풍의 고전 건축과 맥도널드의 자본주의 아이콘이 교묘하게 어우러져 있었고, 어느 곳에나 시선 둘 만한 상징이 있어야하 듯 여기도 예외없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총독이었던 옐라치지 기마상이 서있어서 그 곳의 중심을 잡고 있는 듯이 보였다.
반 옐라치치 광장 뒤편으로는 머리에 바구니를 이고 있는 아낙의 동상이 계단 위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자그레브의 또다른 서민중심, 돌라치 시장(Dolac Market)이 있었다.
우리는 귀국 비행기 탑승을 위해 이틀 전 아침에도 자그레브를 돌아보았는데, 이곳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부지런해서 어디를 가든 아침 일찍부터 준비된 좌판이 정연하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시골장터와 비슷한 규모로 그리 크지 않지만, 신선한 과일과 채소, 꽃, 수산물 외에도 액세서리와 간단한 기념품 가게 등이 있었다. 정겨운 인사를 하는 상인들 틈에 팔순은 족히 되어 보이시는 할머니가 외갓집 손주 보듯 함박웃음으로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왜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 표정에서 가슴 뭉클한 뭔가가 속에서 일어 같이 웃었다.
그분은 라벤더, 아카시아 벌꿀을 작은 병에 담아 팔고 계셨는데, 어떤 꿀인지를 묻자 엉뚱하게 두 팔로 비행하는 벌들을 흉내내시며 진짜 크로아티아 벌들이 정성 들여 만든 자연산 벌꿀이라는 퍼포먼스를 해 보이셨다.
무엇보다 설득력있는 세일즈포인트 아닌가? 꿀벌로 빙의 하시다니..
그래 크로아티아는 역시 라벤더의 나라 아닌가? 라벤더 벌꿀 2병을 사서 곱게 인사드리고 나오는데 아까의 함박웃음을 다시 보내주셨다. 나는 아직도 자상하시고 귀여운 돌라치시장 할머니의 웃음과 마임을 잊지 못한다.
신기한 일은 여행 중 기록 노트에 실수로 라벤더 오일을 쏟았는데, 3년이 지난 지금도 그 노트를 열면 진한 라벤더 향이 훅 끼쳐온다. 그 향은 추억을 더듬는 더듬이 같다.
자그레브 어디서나 보이는 108미터, 두 개의 아름다운 첨탑은 시장 뒤 도시의 상징인 자그레브 성당이다.
돌라치 시장을 나오면 정면으로 자그레브 대성당이 보이는데, 13세기 초 타르타르족의 침략으로 완전히 파괴된 것을 14세기에 재건하였고 이후 1880년 대지진으로 다시 종탑과 본당이 파괴되는 수난을 겪은 곳이다.
수난의 역사를 목격하여왔던 바로크 양식의 이 성당은 1990년에 재건축에 들어갔으나, 그 공사의 끝은 성당도 정부도 알 수 없다니, 신이 허락하는 한도의 시간만이 켜켜이 건물을 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자그레브 대성당은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 '성모승천 성당'으로도 불리는데, 통상 유럽의 성당은 순교 시대 이후 성당마다 지명 외에 대표적인 성인의 이름을 차용하는것을 감안하면, 여기는 일종의 성모 마리아 성당인 셈이다.
유럽을 돌아다니면 성당을 지나쳐서는 그 문화를 이해하기 힘든데, 313년 콘스탄티누스가 가톨릭을 국교로 선포한 이후 16세기 종교개혁 전까지 오랫동안 권력과 부가 종교, 카톨릭에 집중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윽고 시차와 상관없이 허기가 밀려왔다. 마침 익히 들었던 크로아티아 국민 빵집이라는 판 펙(PAN PEK)이 메인광장 트램 정류소 앞에 있었는데, 들어가 보니 싼 가격에 다양한 빵이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와 같은 다양한 빵의 향연을 보기 힘든 유럽에서는 보기 드문 라인업이었다.
맛 또한 좋아서 크림빵과 페스츄리는 일품이었다. 허기진 걸인의 식사라 풍미가 그랬을 거라 믿고 싶지 않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음식은 유튜브를 통해 찾아간 인근의 헤리티지라는 식당은 트러플 타파스와 멸치 타파스가 있었는데, 멸치 비린내가 전혀 없고 푹신한 바게트에 적양파를 얹어 오일향 가득 올려진 그 맛이 일품이었다.
국내를 떠나서도 토종 입맛을 자랑하는 와이프조차 미소 머금은 신음소리를 냈다. "음.... 괜찮다~"
곡기후 여유롭게 주변을 돌아보니 반 옐라치치 광장과 그라데츠 언덕을 오르는 라디체바(Radiceva Street)의 좁은 거리가 보인다.
소박한 상점과 카페는 좁은 거리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카페의 탁자들을 내놓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크로아티아의 멋진 선남선녀와 아이를 유모차에 데리고 나온 아낙들이 식은 커피가 올려진 테이블에 앉아 브런치와 수다를 버무려 일광욕 중이었다.
여름이라도 뜨겁지 않은 햇살은 그저 시간을 보내기 좋은 쿠션 같았고, 그들은 더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누구나 자기가 난 곳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다. 심지어 우리 부모세대는 고향땅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곳에서 삶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았다. 길섶에 피어났다 지는지도 몰랐을, 이름 모를 꽃처럼.
어딘가를 동경하여 여행을 떠나지만, 우리는 대체로 돌아올 것을 기약하며 떠난다.
떠나니 좋은데, 돌아오면 더 좋은 마음은 귀소본능에 가까운 정서일 텐데.. 각자가 살아가는 곳에서 행복하고 자족하는 삶이 결국 우리 부모, 우리의 모습이고 그게 오히려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전에 보았는 KBS의 해외기행 프로에서 작은 섬에 살아가는 고기 잡는 준수한 청년의 인터뷰가 생각났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지만, 소원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이 땅에서 평생 고기를 잡으며 이 섬을 지키고 싶다는...
카페가 좌우로 나열된 길을 따라 조금 더 오르면 성 카타린 성당(St. Catherine Church)이 보이는데 바로 이곳이 킵톨의 뷰포인트로 이름이 높은 곳이어서, 이곳의 작은 시내를 조망하기 좋았다.
석양 무렵의 전망이 압권이라는 얘기를 들었으나, 시간이 허락지 않아서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서야 했다.
길을 따라 걷다보면 더없이 예쁜 카페와 공방들이 아기자기한 트칼치체바(Tkalcieva Street) 거리가 나오는데, 자그레브를 소개할 때면 으례 자그레브 성당과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이다.
이곳은 우리의 홍대 거리, 북촌 등에 빗댈만한데, 그와 다르게 상업적, 기술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아름다운 전통이 소박하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게하는 작은 거리로, 빨간색의 지붕아래 옷, 종이, 비누 등의 색동같은 상점들이 정겨웠다.
지금도 사용하는 것 중에서, 크로아티아가 최초로 선보인 문물은 만년필, 낙하산 등이 있는데, 넥타이도 그 중 하나다.
넥타이는 전쟁에 나서는 남자들에게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매어주었던 붉은 천이 시발이었는데, 루이 14세에 의해 하나의 패션으로 발전하게 되었단다.
이들의 기본적인 패션감각은 현지에서 아무렇게나 저녁장보러 나오는 아낙들의 입성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나도 작지만 오래된 넥타이 가게로 유명한 'KARABAT'라는 상점에 들러 크로아티아 체크무늬의 타이 2종을 구입했다.
가게 주인은 자신은 4대째 가업을 잇고 있고, 한국사람들이 많이 다녀간다고 친근한 한국 인사말을 건넨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디자인을 보여줬는데 역시나 크로아티아의 시그니처인 체크무늬 타이였다.
흔쾌히 추천상품을 구입한 후 가게를 나오는데, 어느덧 어스름한 하늘이다.
우리는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콘줌 마트에 들러 샐러드와 몇 가지 음료를 샀다.
이곳은 비싸진 크로아티아 관광물가를 조금 비켜갈 수 있는 크로아티아 국민마트여서 여행 내내 들락거렸다.
좋은 구경과 음식에도 어느덧 기진한 체력이 버티기 힘들어져 가물거리고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맞다! 그래서 옛 어른들이 '젊어서 노세' 경구를 오래간 설파 하셨는지도 모른다.
힘겨운 발을 떼 기다시피 숙소에 들어와서 일정을 재확인했다.
우리는 내일 렌트를 하여 자그레브에서 출발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압도적 석양의 자다르, 아름다운 물의 마을 라스토케, 유서 깊은 시베니크, 달마티아의 유네스코 도시 트로기르와 스플리트를 거쳐 지상낙원이라는 남쪽 두브로브니크까지 9일간의 여행경로를 계획하고있다.
알려진 포스트를 기준으로 중간중간 소도시를 들러 내밀한 그들의 삶을 그저 엿보기로 했다.
삶이 어디가 다를까마는, 주어진 환경은 의식주를 특정하게하고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기도 한다.
여기는 한국의 저녁보다 집으로 깃드는 시간이 빠른 듯 하다. 하긴 우리나라빼고 어디나 그렇긴하지만...
어둠의 자그레브는 붉은 도시의 조명으로 탐스러웠다.
이윽고 누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거 같다. 11시간을 비행기에서 잠을 잤으면서도..
그러ㅎ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