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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초 안창훈 Oct 23. 2022

그곳, 크로아티아(4)

심상의 1위- 석양의 자다르

우리는 자다르를 가기 위해 벨레비트 산맥을 넘기로 했는데, 이곳은 남쪽 도시와 도서들이 달마티아(Dalmatia) 지방에 속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달마시안 강아지의 고향이기도 한 곳이다.

벨레비트(Velebit) 산맥은 1999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에야 외부에 알려진 명소인데, 북부 벨레비트 국립공원(Northern Velebit National Park)은 험준한 암석 지형과 울창한 원시림으로 유네스코 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사실 여기는 어디나 곳곳이 유네스코 문화유산, 생태 보전지 등으로 지정되어있다.

단, 생소한 건 그것들을 보전하고 대하는 그들의 태도인데, '뭐 대단한 거라고 우리 집에도 있는 건데..' 하는.

어! 저기 들어가면 안 될 거 같은 데서 드러눕고 커피를 마시고, 유적의 흔적이 방치에 가깝게 산재된 곳도 만나게 되는데, 사실 역사를 보존하고 아껴서 관리한다는 우리 방식과 사고만이 정답일 리 없다. 

다녀보니 그들은 누구보다 자신들의 자연과 역사에 애착했다. 그들 방식으로.


우리가 지나는 남쪽 산맥 지형은 좀 더 순해 보였고, 하늘과 맞닿은 한적한 도로는 바다 위에 떠있는 하얀색의 파그(Pag) 섬을 바라보며 드라이빙하기에 더없이 아름다운 코스였다.

산 위에 카를로바그(Karlobag)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드리아해는 고스란히 가감 없는 하늘을 담고 있었다.


코레니차(Korenica)와 고스피치(Gospic), 시로카쿨라(Siroka Kula)등의 작은 도시들을 거쳐서 내려오는 길이 정겹고 아름다웠는데, 고스피치나 시로카쿨라는 유고와 전쟁 중 대학살이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크로아티아는 어디서나 동유럽 특유의 시골다운 전경이 펼쳐져있고, 구김 없는 웃음들이 정겨운 곳이다.

해안가에 접해있는 카를로바그 방조제 앞에는 동네 어른, 아이들이 나와 스스럼없이 일광욕과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저러다 아이들은 집에서 밥 먹으라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는 바로 올라갈 수 있을만한 지근거리다.

청명한 일기와 수영하기 더없이 좋은 이곳 바닷가 마을은 어디나 아이들의 다이빙하는 소리가 왁자했고, 수영복 차림으로 마을과 해변 사이 도로를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카를로바그 바닷가 마을


정겨운 풍경에도 오랜만에 막히는 해안도로는 졸음을 불러오고, 나는 그 욕망과 싸워가며 드디어 자다르(Zadar)에 도착했다.

예정되었던 2시간 반 코스는 정체로 인해 3시간 정도 걸렸다. 

자다르 해변에 이르자 말 그대로 에메랄드 빛깔이 쏟아지는 아드리아해는 넉넉하게 우리를 맞았다.

지나쳐온 경로가 있어, 숙소 키를 받기로 한 약속시간보다는 일찍 도착하여 주인을 기다려야 했다.

근처 해안가 앞 카페에서 핸드폰 충전을 부탁하며, 맥주를 시켜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에서 호화로운 요트와 아름다운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저걸 타봐야 하는데 말이야..' 하면서.

이곳 바다는 기원전 이곳을 지배했던 로마제국시대에도 있었던 바다일 텐데, 그때도 저리 푸르렀을까? 

그 당시 사람들은 저 바다를 보고 저 끝에는 뭐가 있을지 나름의 상상과 추론들로 토론을 했을 터다.

물론 격론 끝에 싸우거나, 의미 없는 나름의 추측들이 보태져서 허황한 바다 끝을 상상했을 것이다.

사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그때의 사람들과 비슷하게 우리도 우주라는 바다를 상상한다.

현재 우리도 46년 만에서야 '위대한 향해자'라고 불리는 보이저 2호에 의해 천왕성과 해왕성을 볼 수 있었는데, 거기까지가 우리가 아는 태양계의 끝이었고, 이제 우리가 무한한 우주를 향해 쏘아 올린 그 향해자는 태양계를 벗어나 중력 범위 밖 외우주로 지금도 등속 향해를 하고 있다.

2030년에는 자체 출력이 한계를 맞고, 서서히 지구와의 통신도 두절된 상태로 홀로 그 우주를 유영할 것이다. 이후로는 보이저 2호만이 홀로 외롭게 우주의 신비를 하나씩 알아갈 것이다. 

오래전 옛날, 지구라는 우주에서 초기에 탐험을 했었던 탐험가 또는 위대한 발견을 했을 터이지만 다만 우리에게 알리지 못해서 알려지지 않았을 위대한 무명 탐험가 역시 인류 기원의 실마리를 보았을 수도 있다.

나는 누군가가 부르기 전까지, 혼자 나의 끝 모를 상상의 나래가 보이저 2호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예전 선조들이 몰랐던 지구나 바다처럼 이 우주도 계속 앞으로 나가면 언젠가는 온 세상 어린이들을 다 만나고 원점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때 숙소 주인이 왔다. 내 공상은 시작도 안 했는데.


자그레브-라스토케-플리트비체-자다르 경로


3.5성급 호텔이라 했지만, 숙소는 낡은 건물에 스튜디오(Studio) 형태의 원룸이었으나, 좁은 복도를 지나 방에 들어서자 스플리트에서 그렇듯 크지 않지만 환한 빛과 잘 꾸며진 방이 진심으로 방문객을 환영하는 느낌을 받게 하였다.

이곳에는 민가나 오피스텔, 아파트 등의 민박을 호텔로 명명하여 사용하지만, 나는 크로아티아에서의 모든 숙소가 서유럽 주요 관광지의 호텔보다 항상 더 정겹고 깔끔하다고 느낀다.

마침, 프랑스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 전 관광차 이곳에 들른 젊은 한국 커플과 같이 체크인(계단에서 방열쇠를 인수인계 받는것이었지만)을 했는데, 디자인을 전공했다는 그들도 기대와 에너지가 넘치는 듯했다.

향후 일정을 설명하는 그들을 보며,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자다르는 기원전 48년 로마의 식민지가 된 후에 이미 이때부터 광장, 수도, 도로망이 정비되었고, 16세기 이후에는 달마티아 지방의 행정과 문화, 교통의 중심지였다.

수난의 역사는 이곳에도 있어,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다가 13세기 나폴레옹, 그 이후 2차 대전으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현재의 모습은 1990년쯤 되어서라고 한다.

오늘날에도 이 도시는 역사적으로나 정치, 경제, 교육, 교통의 중심지이며, 자다르 성곽도시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래 많은 관광객이 여기의 문화유산과 자다르의 석양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크로아티아에서 5번째로 큰 도시임에도 구시가를 포함해서 도시 전체를 그저 돌아본다면 반나절이면 된다.

콜로바레(Kolovare) 해안에서 '육지의 문'으로 구시가에 들어서자 수많은 사람들이 오간 대리석 바닥이 반들거렸고, 그들의 역사유산처럼 태양빛에 눈이 부셨다. 

구시가 반대편에는 출구와 비슷한 느낌의 '바다의 문'이 있고, 2~3시간이면 구시가도 둘러볼 수 있었다. 

서울의 여의도처럼 육지로 연결된 섬인데, 사실 구시가 안에서도 낮에는 의미 있는 유적이나 저녁의 석양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며 지내기엔 하루로도 부족한 느낌이다.


우측 계단을 통해 성벽을 따라가면 중세 베네치아 공화국 시절에 사용되었던 다섯 개 우물의 광장(Pet Burana)이 나오고, 나로드니 광장, 시로카 거리로 이어졌다.

이어 성 스토시야 성당(Cathedral of St. Anastsia)이 나오는데, 이 성당은 달마티아 지방에서 가장 큰 성당이고, 자다르의 대표적인 전망대라고 하여 올라가 보았다.

과연, 눈앞에는 코르나티 석회암의 군도가 펼쳐져있고, 전형적인 붉은 지붕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이곳의 지붕이 빨간색인 것은 이 지역의 토질과 관련이 있는데, 이탈리아어로 붉은 흙이라는 의미로 '테라로사'라 불리는 지중해 연안의 석회암지대에서 나타나는 토양을 이용하여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역사와 문화는 오랜 시간을 거쳐 나타난 외면할 수 없는 지형의 산물임이 분명하다.


성 스토시야 성당 조망- 빨간 지붕의 향연


이곳을 지나면 로만포룸(Roman Forum)이 자리하고 있고, 앞에는 성 도나트 성당(St. Donatus Church)이 나오는데, 그 앞에는 오랜 건축물의 주요 석재인 듯 보이는 돌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있었다.

원래 포룸(Forum)은 그리스 아고라와 같은 고대 로마시대의 공공 광장으로 집회장소나 시장으로 이용되었는데, 그래서 주위에 신전이나 목욕탕, 교회, 도서관 등이 있기 마련이다.

로마제국 시절 4세기에 포룸인 이 자리에도 주교의 궁전이나 극장, 시장 등이 만들어졌으나, 9세기 동로마제국에 편입되면서 이 지역의 건축양식이 동방과 서방의 경계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 성당은 9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이지만 시대를 줄타기하는 절묘한 건축양식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평면설계나 형태가 일관적이지 않고 출입구와 기둥은 로마양식으로, 종탑은 정교회의 돔 형태 대신 목제 지붕으로 위를 덮는 형태로 되어있다.

로마시대 포룸 앞에는 죄인을 묶어두던 '수치의 기둥', '제단의 유적' 등이 남아있었다.

질곡의 역사를 살아내는 것은 결국 민초들의 몫인데, 지정학적으로 외침이 잦았던 이곳에도 당시 첨예한 국제정세 속에서 이들이 취한 교묘한 이들의 스탠스가 와닿는다.

               

성 도나트 성당


근처 구시가 중심로는 시로카 거리(Siroka Steeet)가 나오는데, 이곳에는 지루한 유적을 빠르게 지나쳐 모인 젊은 인파로 가득했다. 이곳에는 마트와 카페, 음식점, 기념품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출출하던 차에 우리는 시푸드로 유명한 집을 찾아들어 오징어 리조또와 연어 스테이크를 시켰다.

식전 빵을 참치와 토마토를 갈아 만든 페이스트에 발라 먹는 맛이 메인 요리만큼 맛이 있었다.

인근 바다에서 잡아온 신선한 해산물로 조리된 음식이라 그 신선함에 감탄했고, 이후 우리는 내내 크로아티아의 생선요리를 원 없이 먹었다. 

이때 총 250쿠나(45,000원 정도) 정도였으니, 주요 관광지 맛집치고는 용인할 만한 수준이었다.


숙소에서 잠시 낮잠에 빠졌다. 불가결하게 충전 중이다.

이윽고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여 나가 보니, 해변 산책로 리바(Riva) 끝의 태양의 인사(Greetings to the Sun) 작품 근처로 관광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옆의 계단식 조형물에도 사람들이 앉아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양새들인데, 이곳이 바다 오르간이었다. 

파도가 치면 계단 아래 크고 작은 구멍을 통해 바람이 들고 나면서 내는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었는데, 우리도 쭈그리고 앉아 바다 하모니카의 음악을 경청했다.

밀려와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마치 다른 음원처럼 귀에 닿았고, 저녁노을의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그럴듯했다.

해가 바다 저편 구름 사이로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들뜨고, 흥분은 고조되기 시작한다. 

자연의 루틴을 우리는 간과하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이미 가늠하기 힘든 태곳적 지구시간의 시작에서부터 지금까지 태양은 오랫동안 이렇듯 아름답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것도 매일.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이곳의 일몰이 세상에 가장 아름답다고 했는데, 그 아름다움은 시각적인 것 외에 우리에게 인생은 무엇인지, 우리는 어디에 속해있고, 우리는 얼마나 사소한지에 대한 질문을 경종의 파동으로 풍경과 함께 던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후에 이곳의 낙조를 생각만 해도 그곳의 소회가 오래 남는 것 같다.

자다르 야경


이곳은 저녁이래야 더 밝게 정체성을 드러내는 듯했다.

일몰의 황홀감과 높지 않은 구시가와 빨간 지붕, 바다가 어우러지는 모습은 압권이다.

저녁이 아름답게 창조되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는 백발의 노부부들도 눈에 띄었는데, 화려한 정오의 강렬한 햇살보다 겸손과 휴식, 안정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노을이 오히려 이곳의 하이라이트처럼 보였다. 인생도 그러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쪽에서는 소생하는 젊은 기운도 가득해서, 태양이 수평선 아래로 모습을 감추면 숙연한 시간에 이어 낮에 축적된 태양에너지가 화려한 조명으로 바뀌는 자다르의 명물 '태양의 인사'앞에서 일물과 함께 사진을 찍는 연인들과 친구들의 함성, 버스킹 등의 왁자함으로 가득했다.

스피커를 의자 삼아 장발의 언더 기타리스트가 엘튼 존의 Goodbye Yellow Brick Road, That's what friends are for, 에릭클립톤의 Tears in Heaven 등의 음악을 기가 막히게 연주해내고 있었다.

심지어, 숙소로 들어갔다가 그의 연주를 다시 듣기 위해 다시 광장으로 나갔다. 

의외로 관객은 많지 않았고, 얼마간의 돈을 모자에 넣은 후 마음의 짐을 벗고 본격적인 유료관객의 자세로 그의 음악을 듣고 있는데, 그는 모자의 동전 사이의 지폐를 확인했는지 틈틈이 내게 미소를 보냈다. 

전자기타의 음색이 현재와 잘 어우러졌고, 내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장소에서 적절한 시간에 마치 선사하듯 내 귀에 꽂혔다. 순간 이보다 완벽한 순간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헝클어진 머리와 추레한 옷차림을 가장한 에릭 클립톤이 나를 위해 연주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던 건 한참을 듣다 보니 주변에 나와 어떤 여성 둘만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지칠 줄 모르는 연주에 연신 박수를 보내고 있었지만, 어느덧 그 여성과 나는 볼모가 된 느낌이었다.

여기서 먼저 등을 보이면, 누군가 배신자라 소리칠 것 같은..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기지를 먼저 발휘한 건 그녀였던 거 같다. 울리지 않은 것 같은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다 대고 매몰차게 돌아섰다. 

돌연 혼자가 됐고, 드넓은 광장에 지칠 줄 모르는 예술혼을 불사르는 연주자가 드디어 나만을 위한 다음 곡을 쉴 틈 없이 연주하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래드 제플린 곡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라이오넬 리치의 Endless Love 같이 들렸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나 젊음에 회의가 들기 시작한 건 내 인생에 그때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연주가 끝나자 나는 재빨리 그에게 다가가 연주가 훌륭하다는 칭찬을 늘어놓고 대답도 나오기 전에 등을 보였다.

고개도 돌리지 않고 숙소를 향했지만, 그의 이름이라도 물어볼걸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야심한 밤이 깊어갈수록 광장은 무르익는 듯했고, 모두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지금에 몰입해있었다.

다만, 우리에겐 자다르의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고, 그러나 그 여운은 우리를 잠 못 들게 했다. 

내가 다시 크로아티아를 찾는다면, 그건 자다르의 석양을 보기 위한 것이라 확신한다.

더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살아있는 유구한 유물과 건축물 등이 건네는 속삭임도 들을 수 있고, 매일 반복되지만 확실히 다른 일몰의 경이로움은 그 자체로 우리를 겸손하게 하는 말없는 스승처럼 느껴져서다.

자다르의 일몰처럼 인생이 저물어가는 건 축복이라는 생각과 함께, 누군가에게 낙조를 통해 인생의 이야기를 마음의 소리로 이처럼 남겨놓고 간다면 그 마무리는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이런 희망으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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