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묻힌곳에서 인생을 묻다- 시베니크
자다르의 아침은 어느 때보다 상쾌했다.
어느덧 지구는 자전하여 어제와 다른 듯 한 태양이 나와있었고, 그 모습은 저녁의 진중함 대신 환한 표정이다.
아침산책으로 다시 들러본 '태양의 인사' 광장에는 어제저녁의 왁자함을 감안하면 어지러울 거라 생각했는데, 우리네 출근길처럼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게 말끔하게 정리되어있었다.
저 멀리 우리네 아침처럼 물을 뿌려가며 서행 작업하는 청소차와 미화원이 보였다.
아드리아의 푸른색 아침 공기를 맘껏 흡입하여 내부를 쇄신한 후, 간단한 아침을 먹었다.
뭐 별거 없었는데, 겨우 저녁에 사놓은 빵과 숙소 내 제공되는 연한 아메리카노가 전부였다. 감사했다.
다음 이정표인 스플리트전에 아담한 도시의 골목들을 둘러보기로 하고, 시베니크와 트로기르에 가기로 했다.
라벤더의 향연이 펼쳐질 흐바르(Hvar)나 다도해 해상공원 '크로나티(Kornati) 국립공원을 놓고 고민했으나, 이곳들은 마지막 여정의 두브로브니크에서 족히 해결될 정서와 광경이라 생각했다.
사람 사는 골목과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찾기로 하고, 그곳 시베니크(Sibenik)로 향했다.
자다르에서 시베니크는 90여 킬로, 1시간 반 정도의 여정이었다.
시베니크는 달마티아 지방의 유서 깊은 해안도시라고 소개되곤 하지만, 실재로는 소박하고 사람 사는 냄새가 짙은 작은 도시이고 둘러보는데도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여기는 크로아티안 시조인 남 슬라브족 계열의 '크로아츠(Croats)'가 직접 건설한 유일한 도시로 이민족의 침략에 의해 수난받아 생긴 다른 도시들과 다른 분위기가 있고, 자부심도 느껴지는 곳이다.
크르카 강이 도심을 흘러 아드리아해로 빠지고, 가까운 거리에 크르크 국립공원도 있었다.
이곳은 35,000명 정도의 인구를 가진 작은 도시로, 역시 외침의 수난을 지난하게 겪은 세월이 있었다.
11~12세기에 베네치아, 헝가리, 비잔티움 제국 등 지배권자가 여러 번 바뀌었고, 1차 대전 이후엔 이탈리아, 2차 대전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에 점령당하는 숨쉴틈 없는 외세의 지배 아래 있었다.
이곳의 시그니처 야고보 성당은 시베니크 성당이라고도 하는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전되고 있으며, 이 곳에 역사적 유물을 보기 위해 왔다면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라 여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여기저기 공사 중인 곳도 많지만, 역사적 유물인 성당 옆 여염집에서는 이중으로 달린 빨랫줄을 당기고 밀어서 건조된 빨래를 걷고 너는 풍경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다.
옆집이 세계문화유산이라 해서 굳이 긴장하며 살 필요가 있겠냐는 듯 목 떨어져라 빨랫줄을 올려다보는 관광객에게 미소를 보내는 아낙이 여유롭다. 하긴 대대로 살아왔을 터인데.
우리는 멀리 시베니크 버스터미널 근처에 주차를 한 후 강가를 따라 리바 입구로 들어갔다.
초입에 빵집이 있어 그곳에 들러 크로아티아산 Dukat 우유와 크로아티아 페이스트리 부렉(Burek)을 사들고 구시가로 향했다.
성 야고보 대성당(The Cathedral of St.James) 앞은 관광객들이 더러 보였지만, 예의 다른 관광지처럼 붐비는 곳은 아니어서 여유 있게 성당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에선 이 건축물을 국가의 대표 문화재로 생각할 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13세기에서 15세기 200여 년간 달마티안의 유명 건축가들이 모여 최고의 건축기술과 자재를 활용했다고 한다.
오랜 건축기간 탓에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재되어 있으며, 돔 형태의 지붕 역시 당시 최첨단의 건축기술로만 가능했던 작품이라 한다. 그래서, 성당 안을 들어가 봤다.
여느 유럽의 성당처럼 돔 형태의 천장과 창틈, 벽면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는데, 이곳이 뭔가 다르다고 느껴진 건, 스며드는 자연광이 하나님의 후광인 듯 절로 고개를 떨구고 손을 모으게 하는 신비로운 장엄함을 연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통상 주교좌성당(대성당)을 케데드랄(Cathedral), 이탈리아에서는 바실리카(Basilica)로 불리며, 이곳도 수천 명을 수용하는 넓이와 높은 천장 구조를 가진 대성당으로, 밖에서 보이는 모습보다 실내가 더 웅장하다.
수도 자그레브 대성당은 거의 5천 명을 수용한다고 한다. 이런 크기에서 과연 성당 내 성가대의 찬양이 들리기나 할까 싶었는데, 그래서 보통 큰 성당의 경우는 내부가 반원형의 천장 형태를 지녔다고 한다.
원형 천장과 기둥과 벽은 소리를 예배자들에게 반사하고, 울림을 조절하는 탁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최첨단의 건축기술이 들어간 형태라고 한다. 일종의 오페라 하우스인 셈이다.
보통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의 건축기간이 들어가는 이유는 신앙적인 이유뿐 아니라 당시 시간이 걸리더라도 첨단기술울 접목하려는 시간을 인고하는 노력도 그 중 하나다.
성당 외벽은 74개의 두상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고, 그 부조를 통해 인물의 직업, 셩격 등 디테일까지 보일만큼 세심하게 제작되었다는데, 대상은 놀랍게 당시 지역주민들이었다고 한다.
카톨릭(Catholic)이라는 단어가 '보편적, 보통의'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Katholikos'에서 유래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가톨릭 성당으로써 적절하게 그 이념을 실천하고 있는 현장이 아닌가!
무명인 민초들의 얼굴까지 역사에 남기는 배려가 특별해 보였고, 가문의 영광으로 남아있을 민초들을 불러내서 의미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들의 면면을 세심하게 들여다봤다.
아기자기한 골목을 따라 들어가는데 그대로 살림집이 노출된 곳도 간혹 있어서 지나기가 미안했다.
다른 관광지에 비해 개발은 덜되어 있고 더러 공사하는 곳들도 눈에 띈다.
비탈진 골목으로 경차들이 엇갈려 주차되어있고, 우리네 빌라와 유사한 건물 위로는 전깃줄이 건물마다 몇 가닥씩 이어져있어 마치 그것이 생명의 끈처럼 느껴진다.
경차 외에는 골목을 지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길들은 우리의 오래된 도시 뒷골목 동네 같아서, 차들의 교행은 힘들고 차가 지날 때면 사람들은 양쪽 담에 붙어 차가 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담쟁이가 돌담을 따라 빨간 지붕으로 힘차게 오르고 있는 집들이 많이 보였고, 오전의 조용한 동네에 폐가 될까 되도록 조심하며 다녔는데 더운 여름인데도 에어컨 실외기조차 내건 집이 드물었다.
사람 사는 동네에 있을법한 슈퍼 하나 제대로 찾지 못한 건, 드물기도 하지만 가게라고 버젓이 노출된 간판을 찾을 수 없어서이기도 하다.
높아야 3층의 돌과 흑벽의 집들이 빨간 지붕을 이고 있고, 지붕 아래의 집들은 오래되고 거의 비슷해 보인다.
어느 계단 아래에선 부자로 보이는 이들의 소담한 얘기와 웃음소리가 들려 그 뒷모습을 담았다.
골목 중간중간엔 기념품 가게임을 표방하기 위해 걸어놓은 작은 크로아티아 국기가 부끄러운 듯 수줍은 몸짓으로 흔들거린다. 심심한 골목 도보에 변화를 주고자 안에 들어가려다 멈칫했다.
작은 공간에 몇 가지 안 되는 라벤더 방향제, 호박씨 기름, 오래된 인형들과 머그컵, 야고보 성당의 작은 액자그림, 심지어는 유효기간을 알 수 없지만 크로아티아에서만 판다는 파란색 환타 정도가 구비되어 있었다.
우리를 맞은 건 우리네 중학생 나이로, 틈날 때마다 가게를 봐주는 주인집 딸인 듯 보이는 여학생이었다.
모처럼 찾아온 동양 관광객에게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무척 고민스러운 순간이었는데, 그 눈빛에 등 돌리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적절한 아이템을 찾았다. 핸드크림인데 포장도 그럴싸했고 딸아이들에게 주면 좋을듯해서 골라 넣었다.
구겨진 비닐에 물건을 넣으면서 돌아서는데... 부끄럽게 작은 소리가 들린다...놀랍게, '안뇽..히 카..세요'
허, 이곳에서 한국말을. 저 어린 소녀 입으로... 이건 불현듯 찾아오는 작은 행운처럼 맘이 부풀어 오르는 기분이다. 나는 정작 기본 크로아티아 인사말을 'Havla(고마워요)' 를 겨우 끄집어내고 있는데, 그 소녀는 먼저 'Sretan put(좋은 여행되세요)' 라고 인사를 다시 건넨다.
기분 좋은 웃음으로 화답하고 나오면서, 저 아이는 크로아티아를 빛낼 인물이 될 거라고 맘속으로 축복해주었다.
골목들을 돌아나가면 2차선의 큰 도로가 나오고, 밀리진 않지만 오토바이와 차들이 빽빽하다.
골목보다는 좀 세련되고 다채로워진 2~3층의 건물들이 보이고, 좁은 인도는 그래서인지 도로와 블리자드로 구분되어있다. 도로가에는 플라타너스와 가끔 희귀하게 자두나무도 보인다.
큰길과 골목을 번갈아 드나들다 보면 크로아티아 공화국 광장이 나온다.
거기에는 복원된 시베니크 시청사가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고 주변으로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있어서 여기가 그나마 번화가임을 알 수 있었다.
가게 중에 크로아티아 파스타인 푸시(Fuzi) 집에 들어가서 푸시와 크로아티안 대표 레드와인 딘기치(Dingac)를 곁들여 주문했다.
이는 당나귀 그림의 라벨이 붙은 크로아티아 최고 와인이자 가장 보편적인 와인으로 알려졌는데, 설명을 보자니 진한 타닌과 묵직한 바디감을 가진 '플라바츠 말리(Plavac Mali)' 단일 품종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레스토랑에서는 비나리야 딘가치(Vinarja Dingac)를 사용하는데, 이건 슈퍼에서도 구할 수 있는 데일리 와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모르면 라벨의 당나귀를 기억하라고 지인이 일러준 기억이 났다.
그나저나, 지금의 허기라면 밖에 메인 당나귀라도 먹을 수 있을 거 같았다.
푸시는 트러플을 첨가한 크림소스로 먹는 음식인데, 우리는 자그레브 인근의 헤리티지라는 식당에서 맛있게 먹었던 트러플 타파스와 멸치 타파스를 상상하며 주문한 것이었다.
사실 트러플은 우리는 서양 송로라 하고, 땅속에서만 자라는 귀한 버섯인데 후각이 뛰어난 돼지나 개를 이용해야 채취가 가능하고 화이트, 블랙 트러플이 있는데 블랙 트러플은 최상품 1kg에 1억을 홋가하기도 한단다.
특히 발정기의 암퇘지가 트러플 냄새에 심하게 반응하여 정력재나 최음제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동양에서는 일본에 자생지가 있고 그 수요가 천정부지라 블랙 다이아몬드로 불린다고 한다.
우리가 자그레브와 여기서 먹은 트러플은 보다 저렴한 트러플 오일을 사용하는데, 향으로 즐기는 음식이긴 하지만 아로마 향이나 강렬한 송이향, 바닷가의 흙냄새 등이 섞여있는 듯해서 그 맛에는 호불호가 갈린다.
송이처럼 강한 향이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으나, 이후 그 강렬한 향이 묘한 식감을 자극하는 경험을 하게 됐다. 정갈하고 맛도 좋아 와인과 잘 어울렸다.
거나한 늦은 점심 이후 식곤증은 후식처럼 따라왔다.
나른한 햇볕 아래 졸다 다시 골목을 따라 미호 빌라 요새(St.Micheal Foress)로 향했다.
최근에 리뉴얼했다는 이곳은 시베니크 최고의 전망대로 크르카강이 내려다보이는 것이 예전에는 이곳에서 적의 침입을 감시하기에 좋은 위치였겠구나 싶었다.
인간이나 동물 모두 특히 약자에겐 감시 기능의 촉각이 예민한 법으로, 외침이 잦은 크로아티아 성곽들은 강을 끼고 있거나 주변에 해자나 높은 감시대가 있어 그 촉수들을 촘촘하게 뻗치고 있었다.
가끔 자전거를 탄 젊은이들이 요새 주변에 보였고, 수 세기 전의 크르카강은 오늘도 그대로 평화로워 보였다.
벌써, 느리게 거닐었던 작은 도시 여행도 오후 3시를 넘기고 있었다.
아드리아 해안의 리바를 되짚어 주차했던 시베니크 버스터미널로 돌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녔을 퇴색한 도시의 바닥에서 문득 명멸했던 민초들의 삶이 떠올랐다.
지나왔던 성 아나 공동묘지(St.Anne's cemetery)는 당시 번화가였을 미호빌라 근처에 있었는데, 죽음이 곁에 있어 삶과 죽음을 번갈아 목도하며 살았던 환경은 아마도 그들의 삶을 더 경건하게 했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는 혐오시설로 치부하여 묘지와 추모공원들이 도시 밖으로 밖으로 밀어내고, 삶과 죽음을 물리적으로 분리시켜 놓고 있는게 현실이다.
어쩌면 우리가 외면하고 살지만, 죽음도 직관할 수 있어야 우리의 삶이 더 촘촘해지지 않을까?
동전의 양면과 같은 생사의 의미, 길흉화복, 절실한 기쁨과 애절함까지도 포괄할 수 있어야 인생 아닌가?
새삼 나는 그렇게 살고 있나? 자문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