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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초 안창훈 Oct 20. 2022

그곳, 크로아티아(1)

왜 크로아티아인가?

크로아티아(Croatia)? 내 인생에 크로아티아는 단지 축구 이미지로만 각인되어 있었다.

2013년 2월 크로아티아와 친선 A매치에서 4:0으로 졌던 패배를, 그 해 9월에 이근호 선수의 역전골로 승리했던 그 경기가 선연했다.

빨간색과 흰색의 체크무늬 유니폼은 미려한 디자인으로 각국의 축구팬들에게 인기가 꽤 많았고, 지금도 그렇다.

아니다, 축구만이. 올림픽에서조차 크로아티아 선수들의 유니폼은 유사한 디자인이 많았는데, 그들 도시를 조망한 듯 한 빨간색 지붕들의 동화 같은 사진을 그대로 프린트한 것처럼 인상 깊어, 누구나 '아! 크로아티아 선수구나!' 싶게 만든다.

달리 말하면 나에게는, 그 이상 이 나라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없었다고 봐야 무방하겠다.


어느덧 우리 부부 결혼 20주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적절한 부사를 찾는다면... '불현듯'.

20년간 유턴 안 되는 고속도로를 과한 속도로 내달린 느낌이다. 지나쳐온 휴게소가 아쉬웠다.

나는 그 세월에, 새삼 훅 끼치듯 내 숨 냄새가 느껴졌다.

잘 살아왔든 아니든 누구나 세월은 훈장처럼 주렁거리며 추억하게 되어있다.

이번 결혼 20주년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주먹을 불끈 쥐는 와이프는 이미 커버린 아이들을 방치하고 부부만의 여행을 제안했다.

사실, 둘만의 여행을 다녀온 건 신혼여행과 집안어른 지방 장례식 정도밖에 없는데... 그게 가능한 일인지를 잠시 생각했다.

어쩌면 살아온 20년보다 더 길게 느껴질 수도 있는 여행일 수도 있기에, 나는 재차 와이프에게 신중하게 생각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저 걱정 말라며 벌써부터 여행을 떠나는 해맑은 표정이었다.

그래? 그래서, 막연히 '결혼 20주년'이라는 단어를 무작정 인터넷에 검색했다.

요즘은 누구나 막연한 의식의 단어나 워딩을 검색창에 쳐대는 게 본능처럼 되어버린 시대가 아닌가?

'도혼식(陶婚式)' 서양 풍속,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부부간의 사고 싶은 선물을 주고받는 의식이란다.

그래 나도 안다. 작정하고 기념해야 할 일이지만 내 역량으론 그 깊이만큼 감동을 줄만한 선물이나 여행지를 찾기는 틀려 보였고, 잠깐 고민 이후로 다시 몇 개월간 그 고속도로를 여전히 내달리고 있었다. 휴게소를 지나쳐가며...


이제는 뭔가를 결정해야 했다. 8월이 코앞이다.

열정적으로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기만 할 뿐 이렇다 할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하는 나에게 와이프는 몇 가지 제안을 했다.

너무 알려져 너덜너덜해진 여행지는 가지 말자며 제안한 곳 중에 그나마 크로아티아가 있었다.

노르웨이 로포텐에서의 백야와 오로라를 보겠다는 나의 오래된 로망보다 더 끌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직은 정적인 것보다 동적인 경로가 이번 여행에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여행에 관한 저술로 기억에 남는 게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 있는데, 거기에서는 여행지마다 보들레르, 훔볼트, 반 고흐 등의 철학가, 예술가 등의 안내자를 두어 그들의 생각과 저자의 생각을 교차시켜 깊이 있는 그 지역의 해설과 그림으로 독자인 나를 몰입시킨 기억이 있었다.

책에서 보통은 "여행은 생각의 산파이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를 찾기는 힘들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한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라고 말한다.

보통의 시선처럼 이번 여행의 신선한 자극을 사진이나 스케치, 내 안의 새로운 질문과 여정을 서투른 여행기로 써보면 재밌겠다는 목표도 갑자기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알려진 여행지이지만, 아름답지만 덜 자본주의적이고 적절한 인프라를 갖춘 곳. 와이프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사계절과 역사를 가졌고, 아직은 덜 붐비고 아름다운 나라일 거 같다고 TV에서 보았던 인상을 설명했다.

그래! 그곳에 가면 뻔하지 않은 여행이 될 거 같았다. 그래서, 크로아티아였다.

보통의 말처럼, 안내책자의 강요된 유적지 찬양에 대한 강압에서 좀 더 자유로울 것 같았다.

'알았어, 생각 좀 해볼게' 심사숙고의 모양새는 갖췄으나, 새삼스럽게 다른 여행지를 찾아볼 열정도 시간도 나 스스로 별로 없어 보였다. 이미 난 항공권을 검색하고 있었다.

생각을 해보기는 무슨... "여보, 싼 항공권 찾았다. 와봐!"


크로아티아 지도


정해진 날짜에 일정을 맞춰놓고, 내가 가는 곳이 최고의 여행지일거라 스스로 가스라이팅을 해가며 그 파라다이스를 일견 살펴보기로 했다.  '크로아티아'에 대한 개괄적인 정보를 위해 몇 권의 책을 골랐다.

그곳도 그리 평탄한 역사를 가진 곳은 아닌듯했으며, 역시 두견새 우는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6세기에 북쪽으로부터 슬라브 인들이 유입되어 정착하기 시작했으나, '크로아티아'라는 이름이 기록에 등장하는 건 925년 트미슬라브공(公)이 왕위에 오르고 크로아티아 왕국이 탄생되면서부터이다.
이곳은 유럽 남동부의 지정학적 위치로나 비옥하고 아름다운 지형 때문에도 잦은 외침의 원인이 되었던 것 같다.

이후 13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 공화국에 일부 영토가 편입되었고, 15세기 오스만튀르크 등의 침입에 굴복하였으나, 러시아-투르크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하자 합스부르크가(家)의 페르디난도 1세가 크로아티아의 왕위를 차지하였고, 1868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일부로 편입된 역사가 있었다.


풀라 원형경기장(Amphitheater or Pula Arena)- 일명: 미니 콜로세움


이후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오스트리아에 벗어나 유고슬라비아 왕국에 편입되었다가, 1980년 유고 독재자 티토의 사망 이후에 80년 말에 불어닥친 자유화 물결을 타고 1991년 6월에야 비로소 '크로아티아 공화국'이 탄생하였다.

그러나, 1991년에 연방체제를 유지하기를 원하는 세르비아계가 세운 '크라이너 공화국'과의 전쟁은 큰 상흔을 남기고 1995년 세르비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 3국 강화협정으로 비로소 내전이 종식되었다.

몇 줄 요약으로 기구한 역사를 갈음하기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우리도 좀 힘들게 살아왔어서 좀 이해할 것 같아'라는 혼잣말이 나왔다.

이곳은 여전히 나라 곳곳에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었고, 그들은 그것을 기억하려 애쓰고 있었다.

해외 관광객을 본격 맞기 시작한 것도 오래되지 않아서, 심지어 이곳의 수도인 자그레브 공항이 VIP 전용터미널과 부대시설을 확장하여 국제공항의 면모를 갖춘 것도 2008년이 되어서였다고 한다.

이곳은 우리와 비슷한 4계절을 가지며 대체로 온화한 날씨와 걸맞은 인심을 갖춘 곳으로, 서유럽 자본주의와 남유럽의 목가적인 정서가 공유되어있고, 아직 이곳엔 순박함이 더 짙어 정감이 가는 곳이라 했다.

어느 곳에 가든 내가 나중에 그곳을 기억하는 인상은 그곳의 날씨와 첫 느낌이었다. 과연 이곳은 어떨까?


벼락치기 공부로 눈에 들어온건 주로 먹거리와 즐길거리였지만, 어째됐건 의미있는 일탈이 시작되었다.

일단 그곳을 향해 육중한 기체가 이륙했다.


자그레브(Zagreb)의 지붕과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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