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자가 면역 질환자의 투병기
연휴 동안 컨디션이 바닥을 찍고 호전되었다.
사랑의 힘은 대단하다고 하는데, 그것은 어쩌면 참말일지도 모른다.
남편은 오롯이 나를 위해주었고,
덕분에 연휴의 끝자락에는 아주 조금 운동을 할 수 있었다.
몸이 회복으로 전환하자 기분도 자연스럽게 올라왔다.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다이어리를 쓰자 나는 또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몸의 컨디션, 마음의 컨디션 두 개가 이렇게 연관이 있는 건지를 경험을 통해 또 배우게 되었다.
오전에는 일정이 있어서 바쁘게 머리를 감고 말리고 단장을 했다.
거울을 보니 전에 빠졌다가 났던 영역의 머리가 빠져있었다.
아무리 그래봐라. 내가 좌절하나 라는 심정으로 머리를 말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밥을 먹던 남편이 나를 보고 울어주었다.
나는 몸의 컨디션이 짱짱해서 그런 남편을 위로해줄 수 있었다.
남편도 지금 화끈한 컨디션의 몸을 갖지 못한다.
그 역시 후두 신경통으로 1년 넘게 만성 통증을 갖고 그것을 조절하기 위해
매일 아침저녁으로 폼롤러를 사용하고 명상을 하고 필라테스를 하며
순간을 버티고 있다.
그런 그가 나를 보며 울어주었을 때의 장면은 앞으로 내 기억에 각인될 것이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단어가 행동이 되어 보여주는 순간이구나로 말이다.
오전에는 아이 학교에서 주최하는 강연에 다녀왔다.
강사님께서 알려주신 민들레는 민들레라는 동화책이 너무 좋았다.
정체성에 관련된 이야기였는데 특별할 것 없는 몇 문장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터져 나왔다는 표현이 옳았다.
좋아하는 이들에게 좋아하게 된 책의 정보를 나눴다.
그들 역시 자신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을 공유해 주었다.
정체성에 대한 그림책이 몇 권이 모아졌다.
와, 이런 주제별 그림책을 모아서 필요한 독자에게 몇 개의 코스로 함께 읽고
소감을 나누고 쓰는 활동을 기획하면 얼마나 재밌을까?
독자를 선정하고 8주의 코스로 책을 선정하고, 소감을 나눌 때의 질문을 결정하고,
글을 에세이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각 주차별로 어떤 단어를 만들어볼까?
순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사정없이 커져갔다.
머리를 긁적이다 맨들 거리는 내 두피를 자각하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하고 싶은데 두려움이 나를 가로막았다.
그 학습된 마음이 서글퍼졌다.
이렇게 자꾸 나이만 먹는 거 아닐까?
하고 싶은 걸 참는 건 당연해지고,
그게 당연해진 나는 이젠 무엇하나 하기가 어려워지는 건 아닐까?
두려움의 실체는 허상이라는 말을 한다.
실제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어느 날을 내가 상상하고
그 상상으로 나는 이미 그 상황에 빠져버려 좌절해 버린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럴 때 마음이 힘을 내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할까?
그래서 나는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한 책 읽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 정도는 별 부담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뭐라도 하고 싶다면 진짜 뭐라도 할 수 있는 걸 해서 나에게 알려주는 방법을 택해 보았다.
나는 아직도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나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한약을 먹고 내 몸이 좋아지도록 만들어 지금의 질병을 이기기로 한 나는
작년과는 다른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작년에는 양약으로 현상을 드라마틱하게 조절했을 것이며,
머리가 몽땅 빠지긴 했지만 머리가 나는 희망과 함께 했기 때문에
마음이 그나마 덜 힘듦을 겪었다.
올해의 나는 머리가 몽땅 빠지고 있지만 머리가 나는 희망을 만나는 시간이 얼마일지 모르겠다.
모르겠다는 그 막막함이 두려움이 되어
하고 싶은 마음을 흔들어낼지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것을 쥐어짜듯 찾아 해 본다.
먹히지 않을 것이다.
내 감정의 두려움에.
내 인생은 오늘하루도 너무 소중하니까,
아프다는 이면에 숨어 오늘 하루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배우고,
나누면서,
나의 오늘을 살아보리라 다짐한다.
오늘도 소중한 내 것이니.
나의 행복을 나는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