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적인 일상에서 벗어나봅니다
ADHD 아이를 키우면서 '도파민'에 대해 알게 됐다. 간단히 말하면 즐거움, 보상, 동기 부여의 호르몬. 특정 행동을 했을 때 도파민이 나오면, 그 즐거움을 위해 우리는 계속 그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것.
계속 자극적인 간에 맞춰진 혀는 그 정도 짠기가 없으면 밍밍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자극적인 도파민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계속 그만큼의 자극과 쾌락을 좇게 된다. 그만큼의 짠기가 없으면 다른 싱거운 것들에는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에겐 한국에서의 생활이
마치 아주 짭짤한 소금 간이었던 것 같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도 않았던 시절, 남들이 다 가기 때문에 인스타그램에 사진이라도 남기고 싶어 해외여행을 열심히 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똑같은 일상이 지겹게 느껴졌다. 또다시 다음 여행지를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이 친구 부모들을 만나면 몇 살에 수학을 이 만큼은 시켜야 하고, 이 학원을 가야 진로에 도움이 된다는 정보들을 실컷 듣고, 휴대폰으로 한참 교육 정보를 검색했었다. 옆에서 나와 놀고 싶어 하는 아이의 그 어린 시절의 모습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좋은 학원을 알게 되고 아이에게 이것저것 시켜보고 아이가 잘 해낼 때, 나에겐 그 짭짤한 도파민이 나왔던 것 같다.
이런 경험은 독이 됐다.
아이와 시시콜콜한 대화보다 비는 시간도 꽉 채워 뭐라도 더 시켜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기는 말할 것도 없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뒤로, '좋아요' 횟수와 댓글을 달아주는 것에 내 도파민이 뿜뿜 터지는 것을 느낀다. 그럴 때면 자꾸 푸시 알림을 의식적으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날 바라보는 아이의 하트 뿜뿜 눈빛을 마주 보고 웃음을 나누기보다 빨리 답글을 달아야 한다는 동기부여가 더 커지곤 했다.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캐나다에 오고 나니 배달할 식당이 없다보니 매주 장을 보고 직접 만들어 먹어야 했다. 아이들 역시 급식이 아닌, 내가 만든 음식으로 도시락을 싸가는 일상을 보낸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맵고 짠 음식들에게서 멀어졌다.
캐나다에서 지낸 지 1년.
내 일상의 짠기를 모두 빼는 중이다.
싱거운 일상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아이들도 함께.
대자연이 주는 힐링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내 뇌에 절여진 짠기를 모두 씻어내는 느낌이다. 하늘만 봐도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니.
자연은 나에게 다가오지도 않고 늘 그 자리에서 고요히 제 할 일을 다 한다. 그 안정감이 분명 나를 치유하고 있다.
30대 후반에 들어서며 나는 노력하기로 했다.
내 일상을 아주 '싱겁게' 유지해 가기로.
내 입맛을 조절하는 건 누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일상도 그런 것 같다.
스스로 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쓸데없다'라고 느껴지는 것들
'지겹다'라고 느껴지는 것들을
더 힘을 주어 마음을 담아 하기로 했다.
싱거워보이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훌렁 벗어둔 옷들, 휙 흐트러놓은 이불을 마음을 담아 정리한다. '나'를 손님처럼 대하는 일들이었다.
괜히 내가 나 자신을 대접해 주는 것 같이 기분이 좋았다.
아이가 '엄마!' 하고 여러 번 부를 때도 귀찮게 느껴지지만 마음을 다해 본다. 언제 또 이 어린 목소리로 '나'를 애타게 불러줄까.
귀찮은 밥 하기도 괜히 쌀을 몇 번 더 씻어본다. 채소 하나를 썰어도 정성을 다해 본다. 천천히 하나하나 애호박을 썰어본다. '이것도 꽤 재밌네?'
오늘은 아이의 그네를 열심히 밀어주었다.
아이의 등을 미는데 아직도 가볍다.
내 손바닥을 가득 채우는 등이네.
꺄르륵 넘어가는 웃음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네 하나에 웃는 아이.
다시 오지 않을 시간임을 기억한다.
눈, 코, 입이 활짝 다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
누군가를 보고 따라 웃는 떼 묻은 웃음이 아닌,
순수 그 자체다.
오늘 나는 31번 아이의 그네를 밀었다.
지겨워서 빨리 집에 가고 싶었던 적이 많았는데 이 시간에 깊이 몰입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나는 요즘 '삶'이라는 거대한 단어보다
'행복'이라는 이상향보다
'일상'이라는 단어를 사랑하고 있다.
일상의 짠기를 빼고,
싱거운 일상에 익숙해지는 중이다.
그런 일상을 사랑하기로 했다.
온 마음 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