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계를 내고 아이들과 1년 간의 해외살이를 하러 캐나다에 왔다. 캐나다에 온 지 1년이 지났다. 아이들은 어느새 영어로 대화를 하고 둘째는 혼잣말도 잠꼬대도 영어로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언어 발달은 정말 신기하다. 그저 부러운 아이들. 내 영어는 딱 대학생 수준에 멈춰있다.
캐나다 1년 살이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아이들의 영어뿐만이 아니다. 바로 온 가족이 마주 앉아 식사를 하는 시간들이다. 한국에 있을 때 급히 퇴근하여 반찬 가게에서 아이들이 불평 없이 먹어줄 반찬을 후다닥 골라 뚜껑만 열어 식탁에 둔 적이 많았다. 그렇게 아이 둘을 앉혀 밥에 반찬 얹어 입에 급하게 넣어주던 저녁 시간. 그 시간 남편은 대부분 회사에 있었다.
"오늘 몇 시에 와?"
"글쎄. 아직 좀 더 해야 할 것 같아. 먼저 밥 먹어."
남편은 나름 우리를 배려한다고 먼저 먹으라고 하지만, 아이 둘을 혼자 챙기고 먹일 생각에 늘 피로감이 있었다. 그 순간에는 너무나도 익숙해 피로한 감정이 들었는지도 몰랐다. 다음 날 또 출근하고 아이 둘을 등교, 등원시킬 생각에 마음은 늘 급했고, 저녁 식사는 말 그대로 살기 위해 먹는 하나의 과제 같은 것이었다.
캐나다에 오고 남편도 나도 출근도 퇴근도 없는 일상을 살게 되었다. 부모가 집에 있는 일상은 보이지 않았던 소소한 행복들을 깨닫게 했다.
아이들을 픽업 갈 때 남편과 저녁 메뉴를 상의한다. 함께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일상. 아이들을 데려오고 남편은 분주하게 요리를 시작한다. 나는 그동안 아이들을 보고, 테이블 세팅을 담당한다. 그렇게 한식 한 번, 양식 한 번 여러 밥상을 차려오며 어느새 아이 둘과 엄마, 아빠가 모여 앉은 그림 같은 식사 자리가 익숙해져 갔다.
식탁엔 각자의 자리도 생겼다. 가운데는 늘 주목받기 좋아하는 둘째 딸이 앉는다. 함께 식사를 하며 물컵을 들고 짠! 도 해보고, 이 고기는 좀 질기네 저번에 구운 고기가 맛있네 하며 아빠의 요리를 평가도 해본다. 엄마와 아빠가 먹는 매운 음식부터 평소 좋아하지 않던 채소들까지 관심을 갖는 아이들. 용기 있게(?) 구운 양파, 콩나물 무침을 먹어보는 아이. 그렇게 아이는 점점 먹을 수 있는 식재료도 많아졌다.
가족에게 저녁이 있다는 것은
어릴 적, 할머니와 할아버지, 고모, 삼촌과 함께 살며 저녁에 큰 상 두 개를 펼쳐두고 할머니가 만든 반찬이 쫙 깔려있던 매일의 저녁 식사가 기억난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아이들은 그런 상차림을 매일 경험해 본다는 호사는 누리지 못하겠구나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니 비교적 일찍 오는 직업인데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반찬과 요리 대신 쉽게 배달을 시킬 수 있었던 문화에 익숙해진 나는 늘 퇴근 전 어플로 클릭 몇 번에 아이들 저녁 식사 준비를 마쳤다.
편리한 것들에 익숙해지다 보면 불편한 일은 점점 동기가 떨어진다. 도파민이 하는 일이다. 책 보다 영상, 영화보다 숏츠인 것처럼 요리보다 배달에 익숙해지면 다시 아날로그적인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참 어렵다. 캐나다에 오고 나서 많은 것들이 불편해지면서 어쩔 수 없이 열심히 해 먹고 가족의 식사에 더 시간을 들이게 되었다. 이렇게 다시 애써야 하는 것들에 나를 적응시키고 나니 내가 잊었던, 아니 잃어버렸던 것들을 보게 되었다.
'그동안 아이들 얼굴 보고, 남편의 얼굴을 보고 마주 앉아 국, 밥, 메인 요리, 반찬을 나눠먹는 시간이 정말 없었구나.'
출근하고 아이들 학교를 보내고, 저녁에는 또 오자마자 배를 채우고, 또 정신없이 다음 날을 준비했던 날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어느새 아이는 훌쩍 자라고 있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에 '나' 자신을 꾹꾹 눌러 담으면 같은 시간이어도 농도가 다르다. 의식하지 않으면 놓치는 것들이 있다. 내가 얼마나 이 가정을 애틋하게 여기는지, 아이들의 크는 시간이 얼마나 아쉬웠는지. 이제야 보인다.
10살 세모의 가을, 5살 네모의 가을, 절대 다시 오지 않을 시간. 나를 그 시간에 꾹꾹 눌러 담아본다. 이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는 방법은 서로 눈을 맞추고 말을 걸고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캐나다에 오고 나서 365일, 온 가족이 마주 앉은 저녁 식사를 누렸다.
긴 시간 줄을 서 기다려서 먹는 맛집이 행복이 아니었다.
매일 함께 있지만 서로를 잘 알지 못했던 우리 가족.
저녁이 있는 하루를 함께 하며 친해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