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공원을 말할 때
이야기하는 연도들

비축생활 VOL.11 지금은 공원 시대

by 문화비축기지

서울의 공원은 2,859개다. 2019년 서울시 공원 통계에 따르면, 서울 시민 1인당 공원 면적은 16.8m2( 5), 우리는 각자의 주거 공간 외에 서울의 일부를 상상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이 공유지에서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일은 의식하지 못할 만큼 익숙하지만, 공원의 역사는 의외로 길지 않다.


정리 정지민 I 도움 배정한, 김원주




1847


최초의 공원으로 꼽히는 버컨헤드 공원이 영국 리버풀에 문을 열었다. 산업화로 악화된 도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방책으로 시민사회가 주축이 되어 공원 건립을 추진했다. 왕이나 귀족의 사냥터 와 정원을 대중에게 개방해 공원처럼 이용하는 경우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버컨헤드 공원은 공적 자금으로 지어 소유권이 시민에게 돌아간 첫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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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


세계 공원사에서 기념비적인 해다. 탄생과 함께 현대 공원의 전형이 된 센트럴파크의 설계 공 모가 이해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19세기 초반 뉴욕시의 인구는30년 만에 4배 이상 늘어났다. 공해가 증가하고 사람들의 건강이 악화되는 등 각종 도시 문제가 발생하자, 공원을 지어야 한다는 여론이 생겨났다. 이를 바탕으로 기금을 모으고 법을 개정해 1858년 설계 공모를 실시했고, 1878년 첫선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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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


산수를 즐기고 후원을 가꾸는 선비들의 문화가 있었지만, 현대적 의미의 공원은 조선에 없었다.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개항하며 여러 근대 문물과 함께 공원의 개념도 수입 된다. 당시 지식인들이 남긴 서구 견문록에 공원이 등장하며, 조선에 공원을 짓자는 운동도 차차 일어난다.


1899


조선 최초의 도시공원이 어디인지는 관점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나, 파고다공원(현 탑골공원) 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그 이전에 조성된 인천 자유공원(1888), 서울 남산공원 (1897)이 자연을 그대로 활용한 반면, 파고다공원은 도심 한복판에 원래 있던 가옥을 철거하고 계획에 따라 조성했다는 점에서 현대적인 성격을 띤다. 1899년 조성을 시작했고, 1913년 대중에 공개한 후 한동안 서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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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


조선 왕실이 토지신과 곡물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사직단이 공원으로 지정됐다. 일제는 공원을 식민 지배에 교묘하게 이용했다. 장충단과 창경궁, 효창원 모두 일제강점기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훼손 하기 위해 공원으로 지정되었던 곳이다.


1967


해방 이후 분단과 한국 전쟁을 통과하는 1950년대까지 공원은 국가의 관심 밖이었다. 1960년대, 전쟁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도시계획을 시작하며 공원 또한 계획 대상이 된다. 1967년은 도시계획법에 포함되어 있던 공원이 ‘공원법’으로 분리되어 관리된 해다.


1971


박정희 정권기의 공원은 도시민의 휴식과 여가를 위한 편의 시설이라기보다, 민족주의와 반공, 산업화 등 통치 이념을 선전하는 공간으로 이용됐다. 1971년에는 국방력을 과시하기 위해 여의도에 ‘5·16광장’을 만들어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 등을 열었는데, 이는 여의도공원의 전신이다. 1971년은 강남 개발이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도산·신사·학동공원이 이 시기 신시가지 계획과 함께 지어졌다. 1973년에는 서울 최초의 놀이공원인 어린이대공원이 개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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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1600달러로 시작한 1인당 국민소득이 10년 만에 3배가 넘는 5700달러로 뛰었으니 1980년대 한국의 성장 속도는 어마어마했다. 레저, 바캉스 같은 말이 유행할 만큼 높아진 소득을 바탕으로 도시민의 문화적 욕구가 팽창하던 시기다. 88올림픽을 앞둔 1986년, 경기 개최를 위한 공 간으로 사용한 후 시민에게 개방할 목적으로 올림픽공원을 지어 개장했다. 면적이 여의도 절반(145만m2)에 달해 도시공원으로는 전국 최대 규모였다. 1980년대 수립한 한강개발계획에 따라 한강시민공원 역시 같은 해 개장해 서울 시민의 ‘레크리에이션’ 공간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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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_한강공원(1987).jpg


1992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국제회의 사상 최대 규모로 유엔환경개발회의가 열렸다. 날로 파괴 되는 지구환경 보호를 논의하는 자리로, 개발 범위를 스스로 제한하는 ‘지속 가능성’ 개념이 이때 등 장했다. 지속 가능성은 이후 도시계획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도시의 열을 내리고 산소를 배출하 는 공원의 생태적 기능에 주목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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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2020


직선제를 통해 첫 민선 서울시장이 탄생한다. 1995년은 독재 정권하에서 후퇴했던 지방자치제도가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부활한 해다. 경제·정치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된 한국 사회는 공원을 바라보는 관점도 이전과는 달라진다. 공원이 시민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공원을 조성하는 과정에 시민을 참여시키기 시작한다. 대규모 땅이 더 이상 도심에 남아 있지 않자 학교와 옥상, 수변 등 틈새 공간으로 눈을 돌린 것도 변화다. 공장 부지, 쓰레기 매립지, 폐철도 등 버려져 있던 도시의 음지를 공원화한, 장소의 기억을 담은 매력적인 재생 공원 또한 속속 등장하고 있다.






도움 I 김원주 서울연구원 연구위원, 배정한 서울대 조경학 교수

사진 I 서울사진아카이브,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한국관광공사

참고 I <서울시 역사공원에 역사의 색 입히기>(김원주, 서울연구원, 2015), <공원을 읽다: 도시공원을 바라보는 열두 가지 시선들>(조경비평 봄, 나무도시,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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